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월 Sep 20. 2023

여유 없는 확신

요즘 내가 쓰는 서평들을 읽어보면 확신에 목말라 있다는 게 느껴진다. 에세이던 자기계발서든 경제 서적이든, 심지어 철학서던. '이 책을 읽으면 반드시 이런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라는 말을 장황한 문장 뒤에 깔아놓은 게 느껴진다. 사실은 책을 읽더라도 똑같은 내용이지만 어떤 사람은 삶에 대한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단순한 안정감만을 얻어갈 수도 있으며, 어떤 이는 '이게 뭔 배부른 소리야' 싶어 얼마 읽지 않고 덮어버릴 수 있는 게 책이고 글인데 어떻게든 서평을 읽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지 못해서 안달이다. 글을 쓰는 나뿐만 아니라 서평을 읽는 사람들이라던가, 조금 더 넓게 보아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확신을 얻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아 보이긴 한다. 하나의 물건을 살 때도 아무리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이미지와 카피라이팅을 보더라도 자신의 안목이, 선택이 최선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리뷰를 뒤져보고,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떤 물건을 샀으며 추천하는지 계속 뒤적거리게 된다. 우연히 마주한 상품이 정말 마음에 들고, 실제로 구매한다면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을 아득히 넘어선 행복감,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라도 리뷰 하나 없고 등록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판매 수도 낮은 상품이라면 장바구니에 채 담지도 않게 된다.

내가 하는 서평가의 일은 이 물건을 '책'으로 한정시켜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는 일이다. 이 책이 다른 사람들도 구매해서 읽어볼 정도로 가치 있는 책이라는 확신, 읽어본 사람은 좋은 생각거리를 가져갈 수 있고 삶을 더욱 좋게 발전시킬 수 있을 거란 확신, 내 돈이 쓸데없는 텍스트가 찌그러진 도움도 안 되는 종이 다발에 쓰이는 게 아니라 단순히 활자가 적힌 종이라는 것을 넘어서 딱 지금 내 상황에 도움이 되는 책이 될 것이란 확신. 어디까지나 확률의 문제인데 말이다. 물론 책 하나하나가 어느 사람이 자기 삶에서 감명받았던 일이나 유익한 경험을 축적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듬어 낸 결과물이지만 그것이 무작위의 독자들 모두에게 반드시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른다. 여행을 통해 여유를 갖고, 새로운 경험으로 더욱 넓은 관점을 얻게 되는 이야기가 당장 정해져 있는 내일을 버텨낼 에너지가 필요한 이에겐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듯이. 그럼에도 나는 어떤 이들에게 이 책이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도움이 될 수 있다.',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따위가 아니라 100% 유익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나 하나라도 이렇게 확신에 찬 말을 해야 서평을 읽는 예비 독자가 이 책을 찾아보고 장바구니에 담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길 수 있으니.

결국 여유의 문제다. 절대 선택이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이, 기대치를 반드시 충족시켜야만 한다는 압박감의 문제다. 사람들이 여유만 충분하다면 이번 선택이 실패할 수 있더라도 혹시나 성공할지도 모르니 한번 시도해 보자는 생각을 품을 수 있을 텐데. 근데 그렇게 선택에 있어서는 어떻게든 실패하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면서도 로또 같은 것들은 성공할 가능성이 까마득히 낮음에도 별 고민 없이 사는 것을 보면 어떻게 다가가느냐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책이 별 유익한 내용이 없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읽어본 베스트셀러이고, 정말 유식한 사람들이 선택하고 칭송하는 책이라면 굳이 내용이 도움이 안 되더라도 인테리어 소품 삼아 책장에 꽂아두기만 해도 가격의 가치는 충분히 할 수도 있으니.

그럼 난 책의 진짜 가치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욱 있어 보기에 만들어 주는 포장지가 되어주어야 하나 싶지만 마음에 안 드는 건 내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더라도 엿같으면 엿같다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반골의 피가 흐르는 인간이라 차마 하진 못하겠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