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가 근육이긴 한지 그 질기고 강한 탄력을 턱힘으로 단번에 잘라내지 못했다. 실수로 씹을 댄 그렇게 쉽게 잘렸는데도. 훈련하면서 혀를 깨무는 건 여러 번 해봤지만, 역시 실전은 다른지 더럽게 아팠다. 연습할 땐 조금 더 앞쪽을 씹었던 것 같은데, 긴장감과 급박함에 너무 안쪽을 씹은 것인지 두꺼운 혀가 한 번에 잘리긴커녕 앞니가 조금 파고들다 뻣뻣해진 혀와 통증에 막혀 멈춰버렸다. 그리고 덜렁거리는 혀의 틈새 사이로 침보다 훨씬 뜨거운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A-1602 레드, A-1602 레드"
고통 속에서도 닫혀있는 두꺼운 문 밖으로 희미하게 방송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갇혀있던 곳 하고도 천 개를 훌쩍 넘는 공간이 더 있는 건가. 혀를 씹은 고통에 찌푸린 표정 때문인지 막힌 배수구가 뚫린 듯 터져 나오는 피를 입 안에 머금은 겉모습 때문인지는 몰라도 왼쪽 위의 저 카메라 너머의 Ai가 하필 내 표정을 읽어냈나 보다. 염병할 말단 놈들은 수다를 떨거나 다른 방을 본다고 반응이 늦던데 저건 내가 혀를 깨물자마자 방송을 시작하니 인공지능이 이렇게 원망스러운 적은 3번째 인 것 같다. 같은 팀원들을 눈 깜빡할 새에 죽여버리던 드론 놈들도 그렇게 원망스러웠는데. 상대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를 데이터 쪼가리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보니 그걸 사람처럼 갈기갈기 찢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상대는 이렇게 완벽한 폭력을 가할 수 있지만 나는 당연히 손조차 댈 수 없는 건 물론, 해커팀 놈들도 몇 년 전부턴 인공지능들의 보안 기술과 침투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꼬리를 내리며 점차 인터넷이란 영역에서 도망치는 걸 최선으로 하고 있었다. 이번엔 드디어 저놈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메인 데이터 베이스와 서버를 찾았다고 생각하고 폭파시키러 왔는데 그것도 착각이었다. 기껏 10년간 생사를 넘나들면서도 살아남던 인원 100명이 목숨까지 바치고 나 하나만 겨우 살아남았는데. 기껏 폭파시켜도 털 끝이나 겨우 태운 수준이었다.
"캉 캉 캉 캉 캉"
전투화를 신고 달려오는,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들이 점차 가까워진다. 저놈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다시 내 목에 주사를 꽂아버리면, 앞으로는 영영 기회가 없을 것이다. 망설일 틈이 없다. 당장 혀를 잘라내야 한다. 그렇게 죽는 게 지금 내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뿌드득"
"쾅!"
혀에 있던 상처에 다시 이를 맞추고, 이를 악물어 잘라낸 순간 문이 열림과 동시에 새까만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주사를 들고 달려들었다. 여태 여유롭고 기세등등한 모습을 하던 놈들한테, 이렇게라도 엿을 먹여 표정이 일그러질 수 있게 할 수 있다니. 목숨씩이나 버린 건 아깝지만 조금의 즐거움은 갖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늦었어 새꺄'
목에 주사가 거칠게 꽂혔지만 이미 파르르 떨리는 혀의 단면에서 흘러넘치는 피와 통증으로 정신이 흐려지고 있다. 어쨌건, 열심히 날 생포해 온 놈들에게 아무런 정보도 넘겨주지 않고 죽을 수 있게 되다니 천만다행이다. 이후의 일은, 살아남은 동료들이 해줄 것이다.
"청소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도 전에 유리 조각 들고 날뛸 때 보단 훨씬 낫잖아. 난 아직도 그때 눈앞에 스쳐 지나가던 유리가 아른거리는 것 같은데. 그 이후로 묶어놓은 덕분에 그때처럼 목숨 걸 필요 없이 닦기만 하면 되는걸 뭐. 아직 보호화는 신고 다니래서 발아프긴 하지만."
"지금 네놈이 안 치운다고 말 편하게 한다? 매일같이 바닥에 피로 칠을 하는 데다 옷도 다 갈아입혀야 하는데. 그것도 말이 쉽지 침대에서 환자 들어다가 하나하나 벗겨내고, 다시 입히고 있으면 진짜 중노동이라고. 체중도 그리 안 나가는 양반들이 왜 그렇게 무거운지 진짜. 이 일 시작하고 계속 헬스까지 다니고 있다니까? 허리 하나 나갈 것 같아서?"
"뭐, 그렇지만 전보다 나아진 건 맞잖아. 아까 같은 상황에도 저 표정 인식 Ai가 더 좋아져서 쑥대밭 되고 과다출혈 오기 전에 얼른 처치도 할 수 있고."
"그 처치도 일이다. 넌 환자들 입에서 악취가 얼마나 진동하는지 알아? 외국인들 암내도 이거에 비하면 훨씬 나을 정도라고. 늙을 대로 늙은 데다 양치도 안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입 안에선 말 그대로 죽음의 냄새가 나는 느낌이라니까. 이 양반 피 많이도 났네. 어차피 혀 깨물어봐야 죽지도 않는데 골고루도 뿌려놨다 진짜."
"치매 환자들 케어하는 일이 그렇지 뭐... 그래도 이제 3년째 되니까 당황하는 일도 없다야. 난 이제 환자들이 어떤 시나리오로 이야기할지 궁금하기까지 하다니까? 어르신들이 옛날 기억에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도 뒤섞어서 이야기하는 거 보면 SF소설인가 싶을 정돈데. 환자가 다친 거 보고 보호자들이 뭐라 할지 걱정되던 것도 잘 찾아오지도 않는다는 것도 알아버렸고. 그 사람들도 직접 케어하다 지칠 대로 지쳐서 이런 데에 맡기는 거니까."
"그렇지. 거기에 죄책감이나 책임감도 같이 맡겨버리는 건지 돈도 많이 줘서 좋긴 하다만 그럼에도 이 일 하는 사람들이 적은 거 보면 그만큼 힘들긴 하다는 게 느껴지고."
"덕분에 우리 자리 없어질까 걱정할 필욘 없잖냐. 노인네들은 늘어만 가고, 이런 일 할 사람들은 줄어드는데 몇 없는 사람들도 편하고 좋은 일 찾아가니까."
"난 돈이고 나발이고 업무 강도나 좀 줄었으면 좋겠다. 당직도 이번달에 몇 번을 했는지를 모르겠는데 원장은 여기 확장공사에 별관까지 지어서 수용인원 더 늘린다고 난리라니까? Ai가 있어서 더 많은 환자들을 케어할 수 있다나 뭐라나. 들어오고 싶은 사람들이나 노인 복지에 표 걸려있는 정치인들은 이런 꿀발린 소리에 좋다고 박수 치고 있는데, 환자들 상대하고 옷 갈아입히는 일은 우리가 다 하는데 뭔 Ai야. 허구한 날 뛰어다니는 건 우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