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발처럼 한번에 하나 말고 여러개!
“저 입원하러 왔는데요.”
보통 한 환자가 입원하면 병동 간호사는 입원안내서 종이를 받아서 환자를 간호사실 안으로 안내한다.
키와 몸무게,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체온을 측정하고 환자가 입원하러 온 계기라던지, 현재 제일 힘들어하는 증상은 무엇인지, 기저질환들은 어떤 게 있는지, 복용하는 약은 어떻게 되는지 등 환자 상태를 물어보는 면담을 하게 된다. 이렇게 기본적인 환자에 대한 면담 (History taking)이 끝나면 병원 규칙 및 입원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담당간호사의 소개를 덧붙인 후 환자를 병실로 안내하게 되고, 여기까지가 ‘간호정보조사 및 입원생활 안내’라는 과정이다. 보통 이 과정까지 한 환자당 10-20분 정도 소요된다. 물론 병원에 따라 입원생활을 안내하는 과정을 따로 도맡아 하는 팀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한 환자당 대게 이런 과정들을 거친다. 대게 신규간호사들은 환자에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history taking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입원생활을 설명하는 것도 낯설기 때문에 시간이 더 소요되곤 한다.
병원의 등급에 따라 한 간호사당 배정되는 환자수가 달라지는데, 내가 일하고 있는 병원은 2차 종합병원으로
병동 간호사 한 명당 8-10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이는 즉, 입원 환자가 생기면 내가 이미 맡고 있는 환자들을 보면서 저 기나긴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원환자 한 명을 받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다. 새로온 환자와 면담하는 와중에도 담당간호사를 요청하는 각종 전화와 콜벨들, 환자의 상태를 물어보는 의사와 간호사실 옆을 지나가다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응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일하는 심장내과 병동은 간호사실에서 실시간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심전도 전광판이 있어서 응급상황 발생 시 하던 일도 제쳐두고 바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마치 하나의 산 정상에 오르는데 각종 장애물들이 곳곳에 깔려있는 느낌이랄까..
이는 비록 입원환자 한 명을 받는 일에서만 장애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호사가 한 근무조당 해야 하는 Routine 일에서 항상 있기 때문에 간호사는 한 가지 일을 하면서도 다양하게 다른 일들을 쳐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처음 신규간호사가 프리셉터(사수)의 백업을 떠나 독립을 하면서 겪게 되는 멘붕의 원인 중에 하나인데, 신규간호사가 독립하기 전에는 프리셉터가 이런 부차적인 일들을 해결해 주다가 독립하는 순간, 정해진 자신의 일도 하면서 프리셉터 없이 혼자서 언제 닥칠지 모를 이 일들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입원환자는 새벽이나 오전 일찍 입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게 *이브닝 듀티의 간호사들이 출근하는 시간인 1-2시 사이에 많이 몰리게 된다. 외래에서 입원환자를 배정하는 경우, 응급실에서 치료 후 입원이 결정 난 경우 등 많은 경우가 이른 오전에 결정되어 늦은 오전이나 오후에 기존 환자가 퇴원 및 전실을 하고 난 뒤에라야 입원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보통 검사나 시술, 수술이 이루어지는 평일에 입원이 이루어지며 주로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가 입원환자를 집중적으로 받는다. 병동의 특성에 따라 입원환자 수가 판이하게 차이가 나지만, 회전율이 높은 우리 심장내과 병동 기준으로 하루에 적으면 5-8명, 많으면 19-20명까지도 받게 된다.
* Evening duty. 병원마다 다르지만 우리 병원의 경우, 오후 2시-밤 10시까지 일하는 근무번을 말한다.
어느 날은 입원이 하루에 19명인 적이 있었다. 이브닝 근무조는 출근하자마자, 오늘의 입원 및 퇴원, 전실 및 전동, 수술 환자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24시간 보고서’로 병동 상황을 파악하는데, 입원환자를 적을 수 있는 칸들을 뚫고 빈자리에 적혀있는 환자들의 이름을 보고 경악했다. 무려 19명이라고?!
물론 내가 담당한 파트의 입원환자가 5명이었지만, 한 병동에 입원이 19명이라는 것은 실로 앞서 설명했던 환자 입원안내과정을 19번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출근해서 환자 차트를 보며 빠르게 기존 환자들을 파악한 후, 앞 듀티에 근무했던 간호사에게서 간단한 구두 인계를 받았다. 이후 차근차근 입원 환자들을 한 명씩 받아내는데 입원생활에 대한 말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하는 나 자신을 보며 마치 로봇인 줄 알았다. 게다가 입원 환자를 받는 와중에도 기존 환자들의 요청과 각종 전화, 콜벨들도 장난이 아닌 하루여서 내가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날 녹초가 된 나머지, 퇴근 후 집에 들어가서 씻고 바로 잠들어서 다음 날 오전 늦게까지 뻗어있었다는 사실..!
다시봐도 어마무시하게 고생했다 나 자신..!!
병원에는 다양한 진료과들이 있다. 크게는 약물로 치료하는 내과와 수술로써 환자를 치료하는 외과로 나뉘고 내과 안에서도 부위에 따라 심장, 신장, 호흡기, 내분비, 소화기 등으로 구성되며 외과도 일반, 유방, 대장, 항문, 혈관, 정형외과, 성형외과 등으로 나뉜다.
우리 병동은 심장내과 환자뿐만 아니라 소화기내과, 신장내과, 혈액종양내과, 내분비내과, 류머티즘내과 등의 내과환자들을 비롯한 수술과 관련된 외과 환자들도 입원을 한다. 안 그래도 스터디 (검사나 시술을 일컫는 간호사들의 용어)를 많이 보내는 심장내과, 소화기내과 환자를 주로 맡고 있는 우리 병동에 수술하는 외과 환자들까지 입원하기 때문에 각종 스터디 준비사항뿐만 아니라 수술에 필요한 준비사항들도 정확하게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대게 수술환자들은 수술 후 해당 외과병동으로 전동을 가게 되지만, 그 병동에 자리가 없는 경우 기존에 입원하던 병동에서 그 환자를 맡게 되는데 생소한 타 부서인지라 여간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수술 전 환자 준비사항으로는 환자의 수술명 및 수술스케줄 확인, 수술동의서와 마취동의서를 비롯한 각종 동의서 확인, 수술부위 피부 상태 및 op site marking, 금식상태 설명, 20G 이상의 주사, 수술 전 필요한 혈액검사들, 심전도 검사 이력, 흉부 X-ray 검사 이력, 수술방에 가지고 가야 할 약물과 준비물품, 동반하는 보호자 확인 등이 있다.
수술 후 환자 간호(post op care)에는 환자 의식사정 및 vital sign 측정*, 수술 부위 확인, 배액관 확인, 통증 확인, 투여 중인 약물들, 수술 후 처방에 따라 환자에게 투여해야 할 약물 투여와 처치 등 한 명의 수술 환자에게 신경 써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한 환자가 수술예정이라고 한다면 익숙지 않은 내과병동에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혈압, 맥박, 체온, 산소포화도 등 환자상태를 파악하는 것
스터디는 간호사들끼리 검사나 시술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병원에 따라 다르게 부를 수도 있다. 우리 병동의 경우 주로 심장내과와 소화기내과 환자들이 많아서 스터디 준비부터 post care까지 다방면으로 꿰뚫고 있어야 한다. 심장내과에서 주로 시행하는 시술은 관상동맥조영술 CAG, 관상동맥중재시술 PCI & PTCA, 전기생리학검사 EP, 고주파시술 RFCA, 냉각결찰술 Cryoablation, 영구적 심박동기 삽입술 PPM insertion, 인공심장제세동기 ICD insertion, 심장율동전환 Cardioversion, 심장 말초동맥중재시술 PTA 등이 있고, 소화기내과는 각종 내시경 시술인 위 내시경 EGDS, 대장 내시경 CFS, 점막절제술 EMR, 점막하 절제술 ESD, 내시경적 간담도역행시술 ERCP, 내시경적 정맥류결찰술 EVL, 간동맥화학색전술 TACE 등이 있다. 이외에도 검사실을 가지 않고 병동에서 시행하는 시술도 있다. 흉수천자 Thoracentesis, 복수천자 Paracentesis, 요추천자 Spinal tapping, 중심정맥관삽입술 등.. 이 모든 시술들의 준비사항뿐만이 아니라 post care도 다 다르기 때문에 간호사는 시술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뿐만 아니라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증상 및 처치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병동에는 입원과 퇴원 말고도 다른 병동으로 가야 하는 전동 및 전실을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진료과마다 해당병동이 따로 있기 때문에 타과로 입원을 해도 메인 병동으로 전동을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고 격리가 필요한 환자는 독실이나 격리병실로 전실을 가야 한다. 또한 환자 상태가 악화되거나 중요한 수술 및 시술 이후 더 집중해서 관찰하기 위해 준중환자실로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병동에는 다양한 환자의 움직임들이 있다.
환자 한 명을 옮기는 것인데도 옮겨가는 병동에 환자에 대한 전반적인 상태를 공유할 수 있도록 기록으로 정리하고 함께 동반해야 할 약물과 주사들을 챙겨주며 모니터 정리 및 짐정리도 도와줘야 하기에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담당 간호사는 자기가 맡은 파트에 이러한 수술, 시술, 퇴원, 전동 등의 환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환자를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필수이다.
간호사는 생각해보면 정말 ADHD 만큼이나 주의집중력이 낮도록 만드는 직업일 것이다. 하나의 일을 하면서도 각종 전화들과 콜벨, 모니터 알람소리, 각종 의료기구 알람소리를 듣고 반응해야하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환자들에게 추가처방이 나면 처방을 거르고 수행하면서도 각종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하니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하면서도 머릿 속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하곤 한다. 원래 한가지 일에 집중하면 다른 소리를 잘 못 듣는 체질이었는데 이 일을 7년동안 하다보니 어느샌가 내 시선과 몸이 향하는 곳 외에도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는 초능력이 생겼다.
어느 날은 나의 담당환자와 관련해서 검사실에서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전화를 받으면서 컴퓨터로 환자 차트를 열어 환자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데 차트가 화면에 로딩이 되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다른 전화를 받아서 양쪽 귀에 수화기를 대고 말한 적이 있었다. 두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상대방의 요청사항을 다 해결해주고나서 수화기를 놓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고 있는 자신에게 놀라기도 했고 간호사는 참 바쁜 사람이라는 걸 또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간호사가 바쁜 직업중에 하나라는 걸 깨달은 또 하나의 일이 있었는데, 어느 여름 날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수술환자가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서 병동으로 돌아왔는데 수술 이후에 환자 상태를 사정하고 환자에게 5가지의 약물을 투여하고 수액을 2개나 교체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땀을 뻘뻘흘리며 수술환자에 대한 처치를 시작하려는데 약물을 가지고 환자에게 가려는 순간 내시경 시술이 끝나고 눕는차로 병실로 돌아오는 환자를 발견했다. 그와 동시에 항암약물이 다 들어갔다는 Infusion pump (약물이 정확한 속도로 들어가게 조절하는 기구) 알람소리가 들리고 그로부터 5분도 지나지 않아서 검사실에서 환자와 관련해서 물어볼 것이 있다는 전화가 왔다. 주변에 다른 동료도 때마침 자기 환자들을 보느라 정신 없던 순간이었다. 정말 내 눈과 몸은 한 환자에게 있는데 내 귀는 다른 곳을 향해 열어둬야하는 정신 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바쁠 수록 중요한 것 안 중요한 것을 가려내고
우선순위를 잘 세우는 것이 간호사에게 꼭 필요한 능력 중에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