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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wo, three 보다 때론 ‘임기응변’

신중히 생각하되 나서야 한다면 담대하게 행동하자!

by 윤모닝










책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으로 배운 지식






실제로 내가 응급실에서 일했을 때의 일이다. 그날따라 응급실은 full bed였고, 대기하는 환자가 많아서 어느 때보다 접수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할 때라 열이 나는 환자는 응급실 안에 몇 안 되는 음압격리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그 때문에 열이 나는 환자를 진료하는 데는 대기가 더 길었다. 답답한 4종 보호구를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다가도 접수처 문 너머로 줄어들지 않는 대기줄을 보면 그렇게 힘이 쭉 빠질 수가 없었다.


나는 격리실 안에 있던 환자의 퇴원준비를 돕고 있었고 문을 열어주며 귀가하도록 안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원무부 직원이 다급히 의료진을 찾더니 나에게 환자가 이상한 거 같다고 와달라고 했다. 느낌이 쎄하던 나는 가운을 채 갈아입기도 전에 대기실을 향해 달려갔고 이미 의식을 잃고 부르르 몸을 떨고 있는 한 환자를 발견했다. 함께 있던 보호자의 말로는 환자가 열이 나서 응급실 진료를 위해 접수하고 기다리는 중에 이미 seizure(발작)를 3번이나 했고 원무과 직원이 나에게 알렸을 땐 이미 입안에 혀가 말리고 cyanosis(청색증)가 깔려있던 채로 seizure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나는 응급상황임을 직감하고 열이 있는 환자가 음압격리실로 입원하는 모든 단계를 무시하고 발작을 하던 그 환자를 휠체어에 태워서 바로 음압격리실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어떤 간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침대로 옮기자마자 바로 Intubation(기도 내 삽관)을 준비하여 assist 하고 중환자실로 보냈다.


발작하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안전을 잘 지키며 관찰하는 것이다. 부르르 떠는 환자를 억지로 막으려고 하거나 입으로 거품을 문다고 입안으로 bite block(입을 벌리기 위한 도구)을 넣는 것이 아니라 발작이 멈출 때까지 머리나 다른 곳에 외상이 없도록 주변 물건을 치우고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위의 환자의 경우 이러한 모든 간호를 떠나서 발작하는 과정에서 혀가 안으로 말리면서 Airway(기도)에 문제가 생겼고 조금만 늦으면 뇌손상,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발작이 아닌 호흡기계 응급상황으로 생각해야 했고 (Respiration hold) 바로 기도 삽관을 통해 인공기도를 확보해야 했다. 차근차근 정해진 단계가 아닌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심장질환을 가진 어느 90대 환자가 입원하고 있었다. 의식이 불분명하고 말을 걸어도 계속 졸려하는 상태의 환자였다. 환자는 눈을 뜨다가도 계속 졸려했고 구강으로 식이를 섭취하는 것조차 불안정하여 비위관(코 안에 튜브를 삽입하여 위장으로 바로 음식이 가게 하는 기구)을 삽입하여 영양식이를 주입하게 되었다. 처음엔 적은 용량으로 식이를 주입하다가 점차 환자의 체격에 맞는 kcal로 용량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던 환자는 어느 날 저녁, 갑자기 구토를 하기 시작하였고 담당간호사가 라운딩을 갔을 땐 이미 산소포화도가 측정되지 않을 만큼 손발이 매우 차가워졌다. 이런 경우 책에서 배운 지식대로라면 환자가 저산소증이라고 파악하여 코나 마스크로 산소를 주입하고 구토하는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항구토제를 투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다른 간호사는 구토물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이 환자가 비위관을 통해 위장으로 주입된 식이가 소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구토를 하면서 폐로 흡인되어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진 것임을 추측하여 구강 내 suction(흡인)을 시행했다. 흡인기를 통해 빨아들여지는 내용물은 간호사의 추측대로 영양식이었고, 식이가 폐로 흡인된 상태로 아주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후 환자는 기관 내 삽관을 시행하여 정상 범위 내의 산소포화도를 유지할 수 있었고 중환자실로 무사히 보내졌다. 이는 간호사의 경험에서 비롯된 지식이 환자에게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도록 빛을 발했던 것이다.




이렇듯 때론 책에서 배웠던 모든 지식보다 그 당시의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임기응변이 간호사에겐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언제 어디서든 응급상황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것이 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임기응변은 책에서 배울 수 없다. 과정이 쉽진 않지만 임상에 있어야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처치와 간호를 배우고 경험하며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임기응변은 책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더욱 단단해진다. 그러므로 책에서의 지식과 경험에서 나오는 지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열이 나는 발작환자를 CT실로 데리고 온 뒤 밖에서 대기하면서 찍은 사진.










위기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임기응변




응급실 소생실에서 구급차가 이송해 온 심정지 환자에게 CPR(심폐소생술)이 이어지고 3분마다 심장의 수축기능을 끌어올리는 에피네프린 주사가 투여된다. 그러고는 2분마다 심전도 리듬을 확인하고 CPR을 이어간다. 그렇게 다급하게 소생실에서의 촉각을 다투는 긴장감과 의료진의 땀방울들이 흐르고 있다.


그러던 중 응급실에 한 젊은 중년 남자환자가 실려왔다. 오심, 구토와 명치 쪽 통증을 호소하던 그 남성은 응급실 구석에서 계속 명치를 부여잡으며 끙끙대고 있었다. 그렇게 환자가 진통제와 수액을 맞으며 증상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심전도 모니터에서 알람이 울리더니 V-tac (Ventricle tarchycardia 심실세동)이 뜨면서 환자는 의식을 잃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우리는 바로 응급카트와 D.C shock (제세동기)를 꺼내와 환자 앞에서 부착한 후 환자의 심전도 리듬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Shock을 치며 CPR과 Intubation (기도 내 삽관) 준비를 했다. 이 모든 처치는 소생실에 들어가 있던 다른 멤버들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해 몇 안 되는 2명의 동료들과 함께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주변은 내동댕이 쳐진 의료기구 봉지와 비닐, 장갑과 도구들로 널려있었다. 소생실에서도 CPR이, 응급실 진료구역에서도 CPR을 치고 있는 그야말로 양쪽 다 전쟁터였던 것이다.



이날 스스로가 너무 대견해서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사진.




심장내과 병동에 고요한 밤이 찾아왔다. 동료와 나이트 근무를 하면서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 에 안심하며 간호사실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간호사실 바로 앞 준중환자실에서 "윽"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 안에 들어가 있던 담당간호사가 소리가 난 환자 쪽으로 갔다. 그러더니 다급하게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하여 우리도 부리나케 그 환자 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환자는 침상에서 누워있다가 벌떡벌떡 상체를 일으켜 일어나더니 갑자기 털썩 누위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심전도 모니터에서는 V- fib(심실세동) 리듬이 지나가고 있었다.


내 앞에 있던 간호사는 급하게 환자의 경동맥을 촉지 하여 맥박이 없음을 우리에게 알렸고, 담당간호사가 '코드블루'(심폐소생술이 필요함을 병원에 알리는 방송)를 띄우러 간사이, 나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에 필요한 처치를 하려면 병실 밖 처치실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환자를 준중환자실에서 빼자고 했다. 함께 있던 동료와 눈 맞춤으로 서로의 뜻을 확인하고 CPR을 하면서 환자를 빼려고 했는데, 두 가지를 동시에 하려니 가슴압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슴압박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순간 나는 남들이 보든 말든 모르겠다며 환자 침대에 올라탔고, 환자 위에 올라서 가슴압박을 시행했다. 그 사이 동료들은 침대 채로 나와 환자를 끌고 처치실로 나갔고 나는 처치실로 옮겨지는 도중에 CPR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후 환자는 의료진에 의해 응급처치를 한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우리를 항상 긴장하게 만드는 중앙 심전도 모니터




과마다 상황은 다를 수 있지만 이렇게 응급상황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병원 임상현장이다. 응급상황이 되면 one, two, three step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보다는 그 상황에 맞는 즉각적인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즉각적인 대처는 결코 책에 적어놓는다고 해도 직접 자신의 것으로 경험하지 않으면 그저 떠다니는 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간호사로서 성장하려면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부딫히면서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더라도 꼭 필요한 과정이다.










경험에서 나오는 지식은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신규간호사 시절 일하던 병동은 보호자나 간병인이 없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이 막 오픈할 때였다. 보호자가 없는 병동이기에 중증도가 높지 않은 정형외과, 혈액종양내과, 일반외과, 유방외과 환자 위주로 입원을 받았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환자에 대한 부담감이 덜하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그 병동에서 일하는 것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도 볼 수 있어야 하고 응급상황도 잘 대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책에서 배운 지식은 있어도 그 상황에 적용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었다.




나의 첫 병원을 퇴사하면서 마지막 근무때 찍은 사진.





그래서 3년 차 때쯤 중증도가 높은 중환자실에서 더 많이 경험하고 환자를 보는 시야를 넓히고 싶어서 트랜스퍼를 신청했으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고 결국 나는 나의 임상경력을 탄탄하게 다져가기 위해 나에게 익숙한 그 병원을 떠났다. 그렇게 다른 병원을 거치고 거치면서 들어간 응급실. 병동에서만 있었던 나의 임상경력에 응급실 근무는 정말 큰 모험의 시작이었다. 입원부터 퇴원까지의 환자 상태를 돌보는 병동 간호사와 초기상태에서 입원까지의 환자상태를 돌보는 응급실 간호사의 요구되는 역할은 판이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물론 마주하는 환자의 케이스와 중증도에서도 차이 난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면서 제일 많이 봤던 케이스는 단연 심정지 환자였다. 하루에 많으면 3-4명, 듀티당 1명씩은 볼 수 있는 케이스였다.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심정지가 발생한 환자를 구급차로 싣고 오면 소생실로 옮겨서 사망직전 환자의 심폐소생을 위한 다양한 처치가 이루어지는데, 1분 1초가 촉각을 다투는 긴장감과 그 긴장감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신속하게 응급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 당시 그런 응급상황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처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하고 손과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판단하는 게 맞을까?‘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내가 틀리면 어떡하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대처를 잘할까?’



심정지 상황에서는 크게 심전도 모니터링 및 제세동 준비, 가슴압박, 기도 삽관 보조 및 흡인 준비, 정맥 주사 확보, 약물 및 수액 투여, 기록의 역할이 필요하다. 여기서 내가 맡은 파트는 심전도 모니터링 및 제세동 준비와 기도 삽관보조 및 흡인 준비였다. 처음 그 역할을 수행해야 했을 때 적절한 타이밍에 해내지 못해서 함께 일하는 의료진에게 혼이 나곤 했었다. 나 스스로는 당연히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니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지만 그들은 손발이 맞지 않는 나를 앞에 두고 다른 간호사를 데려오라며 나를 더 힘들게 하곤 했다. 안 그래도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그런 상황은 나를 더욱 기죽게 하였다.


그러나 나는 낯선 상황에서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견뎌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엔 더 잘 해내겠다며 열심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상상하며 내가 해내야 할 역할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밥먹듯이 심정지 환자를 받다 보니, 어느샌가 촉각을 다투는 심정지 환자의 심폐소생 과정이 나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익숙한 상황으로 다가왔고 현재 해야 할 역할에 집중하고 있던 나의 손과 발은 이미 다음 스텝을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게 나는 한 뼘 한 뼘 성장했고 심정지 환자뿐만 아니라 다른 응급상황에서도 현재 필요한 처치와 그 다음 스텝을 생각하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임기응변은 형편에 따라 알맞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다. 이는 책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임상에서 눈으로 보고 느끼고 경험하며 키워지는 능력이기도 하다. 눈으로 보이지 않고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기에, 그리고 정해진 방법이 없기에 더욱 난감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임상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버티다 보면 시간이 지나 어느샌가 다음 스텝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성장의 기쁨을 누리는 순간도 반드시 있을 테니 임상 현장에서 열심히 견뎌내고 있는 모든 간호사들에게 이 기회를 빌어 힘내라고 응원하고 싶다.




응급실에서 견뎌냈던 다이나믹한 1년은 훗날 나의 임상 경력에 크나큰 힘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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