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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모닝 Jan 18. 2024

2-1. 저는 정말 괜찮은 사람일까요?

내가 바라보는 ‘나’가 아닌 남이 보는 ‘나’로 살고 있던 나.







내가 바라보는 ‘나’가 아닌

남이 보는 ‘나’로 살고 있던 나.





“본인은 스스로가 몇 점이라고 생각하나요?”


“어… 어.. 한 30점이요..?”


 초기에 상담선생님이 자주 물으셨던 이 질문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내가 30점이라고 대답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적어도 80점인 척하면서 혼자 있을 때는 30점 정도라니.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대답을 한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놀라웠다.



“자신을 왜 30점이라고 생각했나요?”


“저는 열심히 살지만 그렇게 뛰어나게 주목받은 일이 없어요. 항상 뭔가 열심히 해도 성과가 그만큼 나오지 않아요. 공부든 일이든 뭐든요.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요. 마음을 나눌 친한 친구들이 몇몇 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항상 착한 마음만 갖는 것도 아니고요, 선한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집에서도 온갖 일까지 겪었으니 제가 높은 점수를 받을 일이 없죠.”



말하면서도 기가 죽은 듯이 움츠러드는 나. 그런 나를 향해 상담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지금 얘기했던 것들 모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군요.”


“아 그런 거예요? 그럼 자신에게 100점을 주는 사람이 있어요?”


“그럼요. 본인과 똑같은 상황을 겪고도 스스로를 100점, 아니 120점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이 바로 자존감이죠. 남이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


“그럼 자신이 시험에 떨어지고 어떤 공들인 일에 실패를 해도 스스로를 100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요?”


“네. 자신은 스스로에게 항상 100점 200점이라고 말할 수 있죠. 자기 자신은 어떤 모습이어도 다 받아줄 수 있죠. 마치 어머니가 자녀가 어떤 모습을 해도 다 받아주는 것처럼요. 실제로 그런 건강한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요.”









내가 바라보던 세상은





“너는 나의 소중한 자녀란다.”

“아이고 사랑스러워라. 예뻐라.”

“어쩜 우리에게 와서 이렇게 기쁨을 주니?”


라는 말은 마음 아프지만 단연코 내 기억 속에 없다. 그 대신 나는 집에서 자주 듣던 말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남들이 흉본디~”

“이렇게 하면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니?”

“그러면 남들이 안 좋게 본다?”


 항상 어떠한 행동에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보다 보이는 결과로 나를 판단하곤 하셨다. 밖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집에 들어와 배가 고파서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꺼내고 있으면 혼자 밥 먹을 생각만 하고 부모에게는 묻지도 않는다며 이기적인 아이라고 하는가 하면, 7살의 내가 자신의 손바닥보다 큰 동전지갑에 하루 용돈 300원씩 모아 만 원짜리 꽃다발을 사서 엄마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내밀었지만 엄마는 ‘그래 고마워.’라는 단 한마디로 꽃다발을 치워버렸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집에 들어와 방에서 쉬고 있으면 가족은 왜 저러고 쉬고 있냐며 벽 너머로 내 흉을 봤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도 그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보다는 울고 있는 것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여 나에게 이상한 아이라며 손가락질을 하던 가족.


 이런 환경에서 자라온 나는 당연히 세상도 이렇게 나를 볼 거라고 생각했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도 이렇게 따갑기만 할 거라고 믿었다. 적어도 나를 온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말 못 하는 신생아 시절부터 공부에만 매달려야 했던 고등학생 때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세상에는 있는 그대로의 진짜의 나로 있어도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사실보다 진짜의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갑옷을 두껍게 만들까를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진짜 세상을 아주 표면적이었지만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면서 나의 우주였던 가족이라는 세상이 결코 다가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감사하게도 사랑이 가득한 어느 한 교회 공동체를 만나면서 내가 존재하는 것 만으로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또한 결과적으로 영적 존재나 사람을 의지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결코 나 스스로가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나의 삶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저 정말 괜찮은 사람이에요?





“거울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괜찮다고 느낄 때까지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반복해서 말해보세요.”


상담선생님이 나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치 나 자신을 세뇌시키는 것 같아서 처음에 이런 제안을 하셨을 때 마음이 불편했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잘 아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는 나의 생각과 주장을 낮추고 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날 집으로 돌아가서 바로 실행에 옮겼다. 외출하기 전에 내 모습이 단정한지 보기 위했던 거울이 아니라 나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거울 앞에 서니, 처음엔 너무 어색하고 이상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괜히 초라해 보이기만 하고 눈을 마주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일단 며칠만이라도 해보고 그만두자 싶어서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서서히 떠서 나 자신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명하게 빛나는 내 눈동자, 조그마한 코, 다문 입술, 남들과 다르게 생긴 두 귀, 얼굴이 하나하나 들어오더니 다시 내 검은 눈동자에 초점이 맞춰졌다. 마치 눈으로 대화하고 싶다는 것처럼 북받쳐 오르는 감정과 함께 내 눈시울은 붉어졌다.


‘넌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

‘넌 괜찮은 사람이야.’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이런 게 효과가 있을까 하며 시작했던 위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을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을 담아 천천히 10번쯤 했을 무렵, 스스로에게 하는 말들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 깊숙이에 와닿더니 마치 내 머리를 쓰담쓰담해 주는 것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다음부터는 ‘생각보다 내가 이렇게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싶었을 정도로 내 마음속에서는 많은 위로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구나. 고생 많았어.’

‘넌 너무 사랑스럽구나.’



 흙탕물을 온몸에 뒤집어쓰며 넘어져있어도, 공들인 일을 실패해도, 남들이 박수 쳐주지 않아도, 좋은 옷과 좋은 집에 살지 않아도,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무언가를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니라 그저 나라서 다 괜찮은 괜찮음. 그것이 바로 자존감이 아닐까? 그래, 난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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