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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모닝 Jan 19. 2024

2-3. 내 속에 끊임없이 지적하는 사람이 살아요.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은 뭐였을까?







소리 없는 아우성.



 내 속에는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 목소리는 무언가 실수를 하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을 하면 어김없이 따가운 지적을 한다.


‘넌 도대체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길래 그걸 까먹니? 너 바보니?’

‘이렇게 실수를 반복하면 앞으로 일은 어떻게 할래?‘

‘너 이제 이런 실수할 시기 지났는데. 멍청하긴.’


내 안에 이런 목소리가 들릴 때면 작은 실수 하나도 크게 눈덩이처럼 부풀리기 마련이었고 멀쩡한 나 하나도 주눅 들게 하기 십상이었다. 이런 목소리를 듣고 하루를 살아가는데 행복할 리가 없었다.

집을 나와서 혼자 살고 있는 와중에도 이 목소리는 어김없이 나를 따라다녔고 아무리 시끄럽다며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다른 목소리로 떠올리려고 해도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그건 가만히 있어도 지적하고 비판했던 가족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이제 저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아직 원가족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도처에 나를 지적하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거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가족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지내면 다 끝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모든 아픔과 상처들로부터 해방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내 도처에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내 주변을 맴도는 그 목소리.




 어느 날은 새벽근무를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하던 길이었다. 출근하는 길에 핸드폰을 집에 놔두고 온 것을 깨닫고는

‘너 이런 정신으로 어떻게 일할래? 아직 새파랗게 젊은데 이렇게 깜빡해 가지고는.. 쯧쯧’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도중 멍하게 있다가 내가 누른 층수에서 내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누른 층수를 보고 뒤늦게 사태를 깨달았다.

‘너 뭐 하냐 멍청하게. 다른 사람이 보면 웃겠어.’


병원에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와중에 어느 환자가 환의를 새 걸로 교환해 달라고 부탁했다. 알겠다고 한 뒤 내가 맡은 일을 끝내고 한참 뒤에야 환자가 부탁한 것이 생각났다.

‘너 정신머리 어디다가 두고 일하냐? 아직 한참 젊은데 지금부터 이러면 어떡할래? 정말 위험하다 너.’


일을 하다가 봐야 할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담당의에게 전화를 걸었고 담당의는 메시지 안 봤냐며 되물었다. 속으로 나는,

‘이런 것도 못 보냐? 여기 버젓이 나와있잖아. 이런 실수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런가 하면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현재의 실수가 과게의 실수와 비슷해 보이면 나는

‘너 이거 5년 전에도 이랬었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네 너 왜 그러니? 정말 답이 없네 어떡할래? 앞으로도 똑같겠네 너는’


설거지를 하다가 컵이나 그릇을 깨뜨리고 말았다.

‘덜렁대기는. 어이구. 오늘 재수 없는 일이 생기겠네’



 우리 가족 중에서도 가장 나를 많이 지적했던 사람은 아빠였다. 내가 숨만 쉬고 있어도 지적을 한다고 느낄 만큼 직접 면전에서도, 내방을 타고 넘어오는 벽에서도, 방문 바로 밖에서도 나를 향한 지적은 끊임없었다. 나의 한 가지 면만 보고 나머지를 잔인하게 평가하고 낙인찍어버리는 사람이 바로 우리 아빠였다. 어느샌가 그런 아빠의 모습이 내 안에 심겨 이제는 아빠와 함께 살지 않아도 그 목소리가 내 안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 5살 정도 됐을 무렵, 1층 주택에 살고 있을 때 우리 집 현관문 앞에는 작은 계단과 함께 철제 대문이 있었다. 그 철제 대문이 있는 곳은 움푹 들어간 공간이 있었는데, 자칫 잘못하면 발에 걸려 넘어질 수 있는 작은 턱도 있었다. 나는 오후 늦게 아빠가 집 앞에 차를 대고 집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마치 강아지처럼 퇴근하고 오는 아빠를 향해 달려갔다. “아빠~!!”


 두 눈에는 아빠 밖에 보이지 않았던 나는 밑을 보지 않고 뛰어간 나머지 대문 앞에 움푹 팬 그 공간에서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고꾸라져 턱을 바닥에 찧었고 결국 턱밑을 7 바늘이나 꿰매는 시술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일주일을 턱에 거즈와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채로 유치원을 다녔던 나는 집에서도 덜렁대는 아이라며 놀림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때도 아빠는 내가 다친 것만을 보고 덜렁거린다며 지적을 했고 아빠를 향해 달려가 품에 안기고 싶었던 작은 꼬마 아이의 마음은 읽히지 못한 채 오랜 세월 아래로 묻히게 되었다.



 22살이 되었을 무렵, 수능을 끝내고 대학 입학을 앞뒀을 무렵 집안에 도움이 되고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학원 아르바이트였는데 공부하는 초, 중, 고 학생들 옆에서 주도적으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1:1 과외처럼 가르치던 학원이었다. 그 당시 나는 이런 학원 아르바이트 말고도 교회에서 떠나는 해외선교를 준비했었는데, 그 덕분에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아주 바쁘게 집과 교회를 오가며 일을 했다.


 어느 날은 학원에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갑자기 가슴에 뜨거운 것이 확 솟구치는 느낌이 들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주변의 도움으로 119에 신고되어 처음으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갔고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으며 엄마 옆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중간에 엄마의 전화를 받고 병원에 들른 아빠. 응급실에 누워서 수액을 맞고 있는 나를 보자마자 하는 말,  “너는 담력이 약해가지고 어떡하니. 네가 도대체 뭘 했길래 이렇게 쓰러지는데? 내가 쟤 때문에 일도 못하고 이렇게 회사 근무 중간에 왔다이가.”


 응급실 담당의사가 나의 상태를 아빠에게 설명하기 시작했고 결국 나이가 젊으니 심장 쪽이 아니라 스트레스나 과로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자, 아빠의 지적에는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뭐? 스트레스? 과로? 네가 뭐 대단한 일을 하길래 과로라고 하노, 참내. 몸이 이렇게 약한 거는 니 정신이 약해서 그런 거다. 정신머리가 약해서 그런 거다. 니 그래가지고 앞으로 일은 어떻게 할래? 이런 걸로 내가 회사에서 나와야 하나.”



 결국 나는 아파서 누워있는 와중에도 옆에서 듣고만 있던 엄마에게 아빠를 왜 불렀냐며 인상을 쓰는 걸로 화를 냈고 제발 아빠 좀 다시 내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슬프게도 이런 일은 내가 성인이 되고도 계속되었다. 직장에서 억울하게 부서이동을 당해야만 했을 때 아빠는 나에게 사정을 들어보기도 전에 “네가 뭔가 잘못한 게 있을 거다. 다른 사람도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거다. 네가 어렸을 때부터 이해력이 느리고 고지식해서 딱 봐도 어떻게 했을지 알 거 같다.”라고 말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가족상담을 신청하고 따로 아빠와 상담선생님과의 상담을 한차례 진행했을 때는 “저 아이가 뭔가 잘못되었어요. 저 아이만 고쳐지면 우리 가족 다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데, 저 아이의 도대체 병명이 뭔가요? 문제가 뭔지 좀 밝혀주십시오.”라고 말하던 아빠였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



“그 당시 아이의 입장에서 아빠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아마도 아빠 왜 내가 아빠에게 달려가고 싶어 했던 마음을 바라봐주지 않고 내가 넘어진 것만 보는 거야? 내가 얼마나 아플지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거야? 아빠의 눈에는 내가 덜렁거려서 넘어진 것으로 밖에 안 보이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어느샌가 얼굴이 빨개지더니 억울하고 슬픈 마음에 5살 아이의 입장이 되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하염없이 아빠를 향해 원망과 분노를 쏟아냈다. 그렇게 한참을 쏟아내고 나니,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인형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인형이 나라고 생각하고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해보세요. 그 상황에서 아빠에게 어떤 말이 듣고 싶었나요?”


‘아이고 윤아 네가 그렇게 아빠를 보고 싶어 했구나, 그런데 나는 사랑하는 네가 다치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단다. 많이 아프진 않았니? 다음부터는 천천히 걸어와도 돼. 나는 늘 우리 윤이를 꼭 안아줄 준비가 되어있으니. 아빠는 윤이를 너무너무 사랑한단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갑자기 더 눈물이 나네요.. "


“잘했어요. 이제 그 아이를 꼭 안아주세요.”


 참 신기하게도 이렇게 나의 내면 아이를 감싸 안고 나니 마음 한편에 묵혀있던 오랜 감정덩어리가 가벼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성인이 되어 나의 앞길과 주어진 현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래전에 느꼈던 감정덩어리도 나의 마음 한편에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라웠고 신기했다.


“선생님 이렇게 안아주기 전보다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어요. 너무 신기해요.”


“사람들은 이렇게 다 잊은 줄 아는데, 어렸을 때 해결되지 않은 미해결 감정들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남아서 지금 현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되면 불쑥불쑥 솟아올라요.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뭐 하러 지나간 과거를 들쑤시며 들춰내려고 하냐라며 자신을 억누르거나 더 외면하곤 하는데, 미해결 감정이 계속 남아있다면 이는 결코 사라지지 않죠. 그 아이가 바로 지금의 나거든요.”







 이렇게 과거의 나를 안아주는 경험을 하고 나서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 나는 내 속에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올 때면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나의 마음을 먼저 보고 읽어주려고 노력해보고 싶어졌다. 깜빡하고 가져와야 할 물건을 안 가지고 집을 나섰을 때는


‘그래 윤이가 외출하기 전에 생각이 많아서 그래. 혼자 살다 보면 가족들이랑 살 때에 비해서 집을 나설 때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보니 중요한 걸 놓칠 수 있어. 앞으로는 여유롭게 30분 전부터 외출을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


일을 하다가 실수를 했을 때는,


‘괜찮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다 보면 눈앞에 있는 일도 잘 안될 때가 많잖아. 멀티태스킹이 뇌에도 안 좋다고 하는 연구 결과도 있는데 8년 동안 이런 일을 해오다 보면 다 그럴 수 있어. 그러면 앞으로는 놓치지 않도록 한 번에 여러 개가 주어져도 하나하나씩 천천히 더 주의 깊게 보도록 노력해 보자.’


설거지로 컵을 깨뜨렸을 때는,


‘아이고 컵이 깨졌구나. 어디 다친 데는 없니? 네가 안 다쳐서 다행이다. 거품 때문에 미끄러져서 깨졌던 거구나. 괜찮아. 컵이 깨진 일과 오늘 너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은 별개의 일이야. 그릇이 깨졌다고 앞으로 운이 안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재밌는 생각이지 않니?’



 이런 식으로 내 안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에 내 마음을 먼저 읽어주려고 하다 보니 날카롭던 그놈 목소리가 하나씩 소거되는 기분을 느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하게 되진 않았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10번 들리던 목소리가 9번이 되고 9번이 8번이 되고 8번이 5번이 되면서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샌가 그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내 마음을 읽어주는 목소리가 먼저 들리기 시작했다. 내 귀에 들리던 그놈 목소리가 사라지고 차가운 눈도 녹여버리는 따뜻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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