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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모닝 Jan 20. 2024

2-6. 늘 두꺼운 갑옷을 입고 날이 서있어요.

갑옷을 얼마나 두껍게 입었느냐가 아니라 이미 자신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내가 쓰고 있던 인공호흡기.




 집단상담은 상담자 1명이 4-5명의 사람들과 (혹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 함께 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함으로써 집단으로 정신분석 과정을 해나가는 시간인데, 상담자와 내담자가 단 둘이 있을 때는 내담자가 말하는 본인에 대해서 깊이 탐구하는 시간이라면 집단상담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자신을 빗대어 봄으로서 스스로 자극을 받기도 하고 상대에 대해서 느끼는 바를 나눔으로써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이 시간을 통해 사람들 속에서 보이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도 하다.


 작년에 집단상담을 할 때였다. 나를 비롯해서 4명의 사람들이 집단에 참여했었다. 아는 얼굴도 있었지만 모르는 얼굴도 있어서 어색한 모습으로 서로 목례만 하고 상담실 자리에 앉아 상담선생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내 상담선생님이 들어오고 각자 집단상담에서 사용할 자기 닉네임을 정하고 그 이름을 정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기소개를 해보자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 여기는 저랑 같이 상담을 오래 해온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데, 오래 해온 사람은 이런 집단상담이 익숙할 테지만, 아닌 사람은 처음에 아마 많이 어색할 거예요~. 하지만 개인 상담하듯이 똑같이 편하게 얘기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시작해 봅시다.”


 그러고 한 명씩 자기 닉네임과 자신의 상황을 소개를 하는데, 사실 상담을 4-5년 동안 해오고 마음을 살피는 일을 누구보다 애써서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 한마디로도 저 사람이 상담을 얼마나 해왔는지 어느 정도 판단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도 속으로 이 집단에서는 상담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말 한마디나 생각을 이야기할 때도 상담을 오래 해온 티가 나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들 속에서 솔직한 척하면서도 그런 계산을 머릿속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를 상담선생님은 간파하고 계셨다. 그러고는 집단 상담이 끝나고 며칠이 지난 다음 이어진 개인상담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셨다.


“사실 이제는 이 말을 해도 직면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꺼내는데요. 저번 집단 상담에 대해서 한 번은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 어떤 부분이요?”


“지난번에 집단상담을 할 때, 본인 스스로가 상담을 오래 해온 사람임을 겉으로 드러내려 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어요.”


“아…”


 마음속 깊이 감춰둔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간파하셨다는 사실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맞닥뜨리지 않으면 결국 같은 문제 앞에 다시 돌아오게 될 거라는 걸 알고서 선생님 앞에 솔직하게 시인했다.


“맞아요, 선생님. 저 속으로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상담해 왔는데, 그런 경력이 있는 사람인 걸 티를 내야지, 적어도 아마추어 같은 말은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 했어요.”


“왜 그런 생각을 한 거 같나요?”


“적어도 이 정도 상담했으면 아마추어 같은 말은 하면 안 될 거 같고, 한 단계 위의 모습을 보여야 할 거 같았거든요. 그런 말을 안 하면 다른 사람이 실망할 거 같고.”


“이래야만 사랑받을 거 같고, 그런 모습이어야만 남들이 인정할 거 같고 하는 생각들은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는 사랑받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아요. 지금 그 인공호흡기를 떼어내야 해요. 인공호흡기 없이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해요.”



 맞다. 나는 정말 혼자 있을 때에 보이는 진짜 나의 모습을 감추고 더 지혜로운 척, 더 능력 있는 척, 더 사회성이 좋은 척, 더 성숙한 척, 혼자 있어도 괜찮은 척, 상처 안 받은 척, 아프지 않은 척.. ‘척’을 많이 해왔었다. 그래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척’은 진짜 나의 모습을 가리는 두꺼운 갑옷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갑옷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진짜 나의 모습을 알기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선생님 저는 왜 차갑고 센 말투를 쓰거나 누군가가 저의 일에 대해서 지적하는 할 때 그 사람을 나쁘게 볼까요? 일에 대해서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마음이 아파요.”


“물론 지적에 대해서는 앞서 가족들에게서 칭찬보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오면서 생긴 상처가 깊기 때문에 더 아플 수 있어요. 하지만 스스로가 힘이 있다면, 자신의 가치에 대해 확실한 사람이라면 센 말투를 쓰거나 차갑게 말하거나 나의 일에 대해 지적하고 비판하는 말을 들어도 그것을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말로 듣지 않죠. 그저 들리는 말일뿐 자신의 중심까지 꽂히지 않죠.”


“저는 저에게 오기 전에 바닥에 떨어진 말인데도 그 말을 가져와서 제 마음에 비수를 꽂는 거 같아요. 이런 저도 나아질 수 있을까요?”


“그럼요. 이건 갑옷을 얼마나 더 두껍게 입는 문제가 아니라 갑옷을 입지 않아도, 진짜 자신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아야 해요. 인공호흡기를 의지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앞서 상담선생님이 나의 정곡을 찌른 그 말을 듣고 나서, 그동안 내가 갑옷을 많이 입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기존에 다니고 있던 직장을 3년 동안 다니다가 그만두고 다른 여러 병원들을 거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더 많이 아는 척, 두렵지 않은 척, 상처 입지 않은 척들을 많이 했었고 사람들 앞에서도 외롭지 않은 척, 서운하지 않은 척하며 괜찮은 척을 많이 했었다. 모두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존중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 사람을 향해 날을 세우곤 했다. 이런 척들은 과연 어디서부터 왔을까?







 물론 나도 어렸을 때는 슬픈 일이 있을 때 울고, 억울한 일이 있을 때 부모에게 도움도 요청해 보고, 무서울 땐 그 품에 안기고자 달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전 글에서도 소개했듯이 나는 숨 쉬는 것만으로도 지적을 받을 만큼 숨 막히는 가족의 공기를 느끼면서 어린 시절을 자라왔다. 솔직하게 나의 감정에 대해 부모님의 이해를 받아보기도 전에,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적을 피해서 더 강한 척하는 법부터 배웠다. 그 당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가족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린 내가 선택한 방어기제였다. 그렇게 갑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이런 솔직한 내 모습은 나조차도 잊어버렸을 만큼 내 시야 저 너머로 던져놓고 갑옷을 입은 내가 진짜인 양 현실을 살아오고 있었다. 나에게 말을 차갑게 하는 사람을 향해 상처받지 않은 척하며 오히려 상대방을 더 위해주고 따뜻하게 해주려고 했던 것도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하게 하기 위한 방어기제였고, 남들에게 나의 상처를 꺼내면서도 감정 없이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내가 상처받을 것 같은 상황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방어기제였다. 모르는 게 없는 척, 알고 있었던 척, 경험 많은 척, 마음 아프지 않은 척하며 진짜 나의 모습을 억압하는 것도 다 사람들에게서 존중받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괜찮아.




“인공호흡기를 의지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숨 쉴 수 있어요.”


“그렇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요?”


“그럼요. 힘주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어요. 원래 작은 강아지들은 옆에 있는 큰 강아지들이 가만히 있는데도 그 앞에서 더 크게 짓는다고 하잖아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표시하며 살아가지 않아도 돼요. 자신이 당당하면 굳이 표시를 하지 않아도, 힘을 주지 않아도, 힘이 느껴지거든요. 자신이 존중받고 싶다고 느낀다면 스스로를 먼저 존중해 주세요. 스스로가 존중받는 사람이라고 느끼면 주변에서도 본인을 그렇게 대할 겁니다.”



 그렇게 남에게 존중받고 싶어 하던 나는 그동안 나를 얼마나 존중해 줬을까? 내가 마음속에 이는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존중해 줬을까? 내가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나를 존중해 줬을까? 열심히 공들인 일이 실패로 끝나서 사람들의 실망이 예상될 때 나는 그런 나를 존중해 줬을까? 나는 이런 질문들에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나 자신조차도 불편하고 통제되지 않을 것만 같은 감정이 들 때면 ‘너 왜 이래?’라며 날을 세우기 일쑤였고,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나를 향해 ‘너 이거밖에 안되니?’라며 소리쳤다. 열심히 노력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갈 때도 내 노력을 읽어주기보다 ‘사람들이 나 능력 없는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스스로도 나라는 사람을 존중해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의 감정에 대해서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말에 상처받지 않을 것이고, 내가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도 존중한다면 나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의 말이 아프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일을 못한다고 구박을 해도 나 스스로가 이만큼 성장한 것에 대해 뿌듯하게 느끼고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그런 구박쯤은 가슴에 비수로 날아와 꽂히지 않을 것이다. 이를 깨닫고 나서 감정과 마음을 읽어주지 않았던 원가족을 원망하던 것에서 벗어나 이젠 내가 먼저 나의 마음을 읽어주고 감정을 받아주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내가 나의 가족이 되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감정을 읽어주는 것.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다음 챕터에서 자세하게 다뤄보고자 한다.







이전 12화 2-5. 항상 뭔가 성취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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