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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집사 Sep 30. 2022

된장찌개를 누가 배우러 와

Basic is the best, 클래식은 영원하다

쿠킹스튜디오를 막 시작하던 초창기, 매달 쿠킹클래스 시간표를 기획하면서 어떤 메뉴들을 넣을까 고민할 때면 엄마랑 늘 의견이 충돌했다.


"... 된장찌개? 너무 평범한데. 누가 배우러 와"

"일상에서 쉽고 자주 할 수 있는 요리들을 알려줘야지"


여타 다른 쿠킹클래스들을 살펴보면 메뉴 라인업들이 화려하다. 레스토랑에 온 듯한 긴 메뉴명, 유명 맛집의 대표 메뉴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음식들, 독특해서 연상이 잘 안 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메뉴들도 많다.


처음엔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았다. 욕심은 많고 경험은 없는 나는 그랬다. 그런데 엄마의 생각과 기준은 확고했다.


"요리는 쉬워야 돼. 엄마가 집에서 언제 어렵고 시간 오래 걸리는 요리들 한 적 있니?"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우리는 수강생들이 직접 실습하는 쿠킹클래스를 운영하다 보니, 그들이 배운 요리들은 다 집에서 잘 활용할 수 있길 바랐다. 그래야 수강생들에게, 우리에게도 보람이 있을 거라 했다. 레시피가 길고 복잡하면 가독성이 떨어져 나부터도 읽기 싫어지니 레시피는 간결하고 핵심만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나머지 부연설명은 엄마가 수업에서 다 설명으로 풀어낸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만의 스타일을 고수하기로 했다.


우리 수업은 타이틀이 모두 '가정식'이다. 한식가정식, 이태리가정식, 프랑스가정식, 스페인가정식, 아시안푸드, 등. 말 그대로 집에서 차려먹으면 한상차림 집밥 구성으로, 수업 1회당 메뉴 4가지를 배워가시며 각각 독립적으로 차려내도 어떤 음식과 곁들여도 가족들이 맛있게 드실 메뉴들이다.


된장찌개, 소고기 장조림, 김치찌개, 우엉조림, 돼지고기 김치찜, 닭볶음탕, 닭강정, 영양떡갈비, 두부조림, 멸치 아몬드 볶음, 진미채무침, 돈까스, 소고기 잡채, 등등


누구나 다 알고 수없이 먹어본 익숙한 음식들. 패션으로 따지면, 청바지나 슬랙스처럼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 아이템인 셈이다. 된장찌개를 누가 배우러 와, 하며 불신했던 초창기의 나를 거울로 비추며 말하듯 최근에 다녀간 한 단골 수강생님이 말씀하신 한 마디가 뇌리에 박혔다. 심지어 이 분은 가족사업으로 대대로 식당을 운영하는 분.


"선생님, 원래 된장찌개, 김치찌개 맛있게 끓이는 게 제일 어려워요"


그렇다. 뭐든 Basic is the best. 기초탄탄이 최고시다.  그렇다면 된장찌개, 김치찌개는 요리 입문자들만 배우고자 하실까.


절대 아니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고등학생 자녀들이 있는 중년의 주부는 본인만의 굳혀진 조리 스타일을 탈피해 전문가의 레시피와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오너는 자신들의 오래된 레시피와 비교하며 수정하고 싶은 마음에, 조미료를 쓰지 않는 우리 레시피와 수업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연로한 부모님 생신날 맛있는 식사를 차리고 싶어서, 평생 외식을 하며 엄마 밥에 추억이 없는 하나뿐인 외동아들이 곧 군대에서 전역하면 맛있는 집밥을 먹이고 싶어서, 최근에 자녀가 결혼해 사위를 봤는데 식구들이 집에 모일 때 맛있는 한상을 차려 장모의 솜씨를 보여주고 싶어서, 등등.


처음 오시는 분들이면 초면에 꼭 여쭤본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러면 10에 8은 집밥 한식을 좀 배우고 싶은데 한식을 제대로 알려주는 곳이 없었다고 말씀들 하신다. 크고 작고 유명한 쿠킹클래스들 자체는 되게 많은데 생각보다 또 되게 없다고도 하시며, 각잡고 다니는 전문 요리학원이 아니라 그냥 무겁지 않게 취미로 배우며 다니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곳이 참 없더라는 어려움을 토로하시기도 한다.


어떤 의미인 줄은 알겠다. 왜냐하면 대다수 쿠킹클래스들이 강사 혼자 요리를 시연하고 그 음식들로 식사를 하고 끝나는 방식으로 진행되곤 한다. 요리를 배우러 갔는데 요리는 안 하고 모르는 사람들이랑 먹고만 온다, 그래서 직접 실습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더 열심히 서치했다고들 말씀하신다. 하물며 어떤 분은 이렇게 물어보시기도 했다. '혹시 레시피가 제공되나요?'


그럼 우리도 갸우뚱... 그럼요, 당연하지요!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요즘은 밀키트도 잘 나오고 외식산업이 워낙 발달했기에 바쁜 현대인들이 점점 집에서 요리들을 안 할 거라곤 하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집밥에 손을 든다.


엄마는 요리에 진입장벽을 낮춰서 누구나 주방에 들어가는 데 거리낌이 없어야 하며, 뭔가 먹고 싶을 때 집에서 뚝딱 만들어서 함께 있는 사람과 맛있는 시간을 나누는 행복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별도로 1:1개인특강을 희망하는 수강생분들과 상담하다 보면 가끔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선생님, 달걀말이도 배울 수 있을까요...?"

"과일 깎기 수업은 제가 처음이지요?"


전혀 어려워하실 이유가 없다. 그럼요, 당연히 배울 수 있지요. 그럴려고 오신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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