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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집사 Sep 23. 2022

사치스러운 소꿉놀이

그릇을 고르는 기준

"사치스러운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아"


쿠킹스튜디오 운영 초반에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이 제법 맘에 들었다. 아기자기한 소꿉놀이를 사치스럽게 하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한 말은 아니었다. 이 말을 꺼내게 된 배경은 아래와 같다.


우리 쿠킹클래스는 제일 먼저 그날 다룰 메뉴들에 대한 레시피 설명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리를 이동해서 엄마가 시연을 먼저 보인다. 코로나 이전부터 원래 우리는 식사를 제공하진 않았고, 갓 요리한 따끈따끈한 음식의 맛이 궁금하니 엄마의 시연작으로 수강생들은 간단한 시식을 한다.


한 입거리 정도로 부담 없이, 맛만 테스트할 수 있는 정도로 작은 그릇에 담아드리는데 언젠가부터 수강생분들이 그 시식 그릇에 담긴 음식까지도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시식용 그릇들에도 신경을 쓰게 됐다. 그 후엔 그릇 쇼핑을 다닐 때면 손바닥보다도 훨씬 작은 그릇들을 한참 찾아보곤 한다. 더 예쁜 그릇 없나, 좀 특이한 디자인은 없나 하고. 그리고 눈에 띄는 그릇들은 무조건 세트로 구입한다. 우리는 수강생 정원이 4명까지이니 같은 그릇은 무조건 4개씩.

 

그래서 쇼핑 후 구입한 그릇들을 쭉 진열하면 올망졸망 아기자기함의 끝을 달린다. 사치스러운 소꿉놀이 같아, 그때쯤 내가 했던 말이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명품 옷이나 가방, 주얼리를 즐기지 않는 엄마는 일평생 요리와 그릇에 관심을 쏟았다. 사치품과 같은 값이면 그릇을, 좋고 희귀한 식재료를,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식사를,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으로 선택해 온 삶이었다. 그래서 쿠킹스튜디오를 오픈하기 전부터도 우리 집에 그릇이란 그릇들은 종류별로 브랜드별로 무척이나 다양했다. 미니멀리스트가 다 뭐람. 그릇은 너무 많고 수납장이 부족하니 베란다, 창고, 침대 아래 바닥에까지 포장을 뜯지 않은 그릇들이 자리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집에 있던 수많은 그릇들을 이고 지고 나와서 쿠킹스튜디오에 풀어놓았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껏 주기적으로 그릇 쇼핑을 나선다.


때로는 빈티지 그릇을, 때로는 명품 브랜드 그릇을, 이천 도예촌에서 작가들의 손때 묻은 전시 작품을, 가끔은 당근마켓에서 중고품을, 혹은 인스타그램에서, 퇴근길에 들린 다이소에서 등등 쇼핑의 범주는 다양하고 사 모으는 그릇들의 가격대도 상이하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단순히 음식을 담아내는 것 이상으로, 수강생들에겐 기본 플레이팅에 대한 이해를 전하고, 다양한 재질의 그릇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그릇의 용도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이 그릇엔 한식만 담아야 해', '이건 스프볼이니 스프만 담아야 해', 이런 선입견 말이다. 나무도마에 스테이크를 담을 수도 있고, 전통 떡 접시에는 스페인의 타파스를 올릴 수도 있다. 유리잔에는 푸딩 디저트를 담기도 하고, 파스타 그릇엔 낙지 비빔밥을, 브런치 그릇엔 김밥을 줄지어 놓아도 예쁘다. 음식만 담을 뿐인가. 일상에서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전시용 대형 면기 그릇은 다육이 화분으로 응용할 수 있다.


치즈 듬뿍 올려 노랗게 그을린 양파스프는 까만 그릇에도 잘 어울리고, 와인에 조린 보랏빛 감자는 어두운 청록색 그릇과도 멋스럽다. 그릇은 음식을 품어내는 공간을 넘어 비주얼과 색감, 느낌까지 우리에게 다채로운 방식으로 전해준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우리가 그릇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특별하달 건 없지만 대체로 무광 재질로 고르려 한다. 주로 음식을 담아 사진 촬영을 하기 때문에 유광 재질은 그릇이 빛에 반사되기 때문이다. 한식은 무늬가 없는 깨끗한 접시가 음식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에 비해 양식은 그릇에 요란한 무늬와 색감이 있어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 것이 재미있는 비교점이 된다. 아시안푸드는 테이블 러너로 배경에 노랑과 초록색이 있으면 어쩐지 전체적인 느낌이 잘 어우러진다. 투박한 도자기 그릇은 한식을 더욱 단정한 느낌으로 전하며, 아무리 먹는 양이 적다고 하여도 반찬 그릇은 품이 좀 여유 있는 게 좋다.


음식을 접시에 담을 땐 소복하게 담는 게 먹음직스러워 보이며, 그 음식에 들어간 식재료들이 가능한 모두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플레이팅 하면 더욱 좋다. 완성된 음식에 산뜻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에는 초록색만 한 것이 없는데, 그것이 보통 한식에서는 부추나 쪽파, 대파의 푸른 부분이, 양식에서는 바질이 일당백 역할을 한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선생님, 그릇은 어디서 사야 돼요?' 수강생분들이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 요리를 자꾸 하다 보면 자연히 그릇과 주방도구들에 관심이 가는 법. 엄마는 꼭 백화점 명품 그릇만이 아닌 다양한 루트의 그릇들을 많이 접해보셔라 조언한다.


가벼운 인터넷 쇼핑도 좋고 아울렛도 좋고 빈티지 마켓도 좋다. 고급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가서도 어떤 그릇에 음식이 플레이팅 되어 나오는지 살펴보고, 길거리의 리빙 소품샵도 드나들면서 요즘 유행하는 그릇은 어떤 스타일인지 캐치해보면 재미있다. 그릇도 도자기, 일본풍, 프랑스 느낌, 유리, 사각, 오발 등 재질부터 디자인까지 너무나 광범위하기에 많이 찾아보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그릇 취향도 점차 확고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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