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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집사 Sep 01. 2022

요즘 음식을 나누는 이웃이 있나요

이게 다 빚이다, 빚

"선생님, 집에서 농사지은 감자 좀 가져왔어요."

"오늘 퇴촌 갔다가 토마토를 많이 샀는데 집 가는 길에 잠깐 들려도 돼요?"

"엄청 좋은 국산 꿀이 집에 선물로 들어왔는데 선생님 좀 드셔 봐요."

"집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시는데 몇 박스 좀 택배로 부칠게요, 선생님"

"제가 새싹보리를 너무 많이 샀는데, 몇 박스 좀 보내드릴게요."

"작업하시다가 출출하면 드시라고, 포도랑 아오리 사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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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우리 단골 수강생님들의 말씀들. 2년째, 1년째, 6개월 이상 등등 꾸준히 요리수업으로 찾아주시는 수강생님들은 어느새 한 분 한 분 모두 소중한 단골들이 되어, 꼭 수업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감사한 나눔을 위해 종종 연락을 주신다.


세상에, 지금은 아파트 옆집과 음식을 나눠먹기는 커녕, 이웃지간에 누가 사는지 얼굴도 모르는 시대 아닌가. 더 이상 이사 떡도 돌리지 않을뿐더러, 남이 주는 음식엔 뭐가 들은 지 모르니 함부로 먹는 게 아니라 가르친다는 시대인데. 이렇게 귀한 식재료를 기꺼이 나누고자 하는 분들의 아량이라니. 게다가 모두 값진 국내산 아닌가.


엄마는 수강생님들의 이런 마음을 감사히 여기면서도, 이렇게 내가 넙쭉넙쭉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게 다 빚이다, 빚. 하면서 매번 손사래를 치지만 오히려 수강생분들이 그런 걱정일랑 마시라 한다. 그러면서도 농약 안 친 유기농 감자들이니 수업 재료에 쓰지 말고, 선생님 가족분들 드셔라 하는 말씀까지 덧붙이실 정도.


그중엔 특히 우리가 '정자동 선생님'이라 부르는 손 큰 수강생님이 계시는데, 몸도 약하신 분이 수업 오실 때마다 각종 농수산 꾸러미를 양손 가득 무겁게 들고 오신다. 심지어 어떨 땐 카트에 박스째 싣고 오실 때도. 워낙 집에 선물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라 어차피 본인 부부 내외가 다 감당할 수 없다며 그렇게 바리바리 친정 오가듯 들고 오시는데 가히 못 말릴 정도. 전국 각지에서 보내주는 귀한 농수산물을 아낌없이 나눠주신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우리는 그 보답을 맛있는 음식으로, 새로운 실험조리로 선보인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제주도에 거주하는 한 인플루언서 고객님은 한 번도 얼굴 뵌 적 없이 인스타그램으로만 소통하는 인친님이었는데, 어느 날 한창 수업 중이던 우리 스튜디오 앞에 떡하니 단호박 1 상자를 직접 가져다 놓고 사라지셨다. 제주 단호박 판매 유통을 앞두고, 모처럼 서울 올라오신 김에 한번 드셔 보시라며 직접 들리신 것. 엄마는 그날 바로 단호박을 모두 손질해서 과육을 맛보고 평가하여 인플루언서 고객님께 조목조목 말씀드렸다. 바로 판매하셔도 좋은 아주 달고 맛있는 단호박이라며. 그리고 우린 제주 단호박으로 2가지 버전의 맛있는 단호박 머핀을 만들어 sns에 소개했다. 그리고 고객님께는 다시 한번 우리 스튜디오에 정식으로 초대했고, 함께 티타임을 가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 수강생님과 떡 수업을 하는 도중 요즘 염증이 자꾸 올라 몸이 아프다는 말씀을 듣고 이전에 선물 받았던 새싹보리가루가 생각나 즉석에서 새싹보리 녹두 설기를 만든 적도 있다. 새싹보리가루를 선물로 보내주신 수강생님께 이걸로 나중에 떡 한번 만들어 sns에 업로드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마침 그게 딱 생각이 난거지. 새싹보리는 염증 완화에 큰 효능이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출장 다녀오는 길에 소소한 선물이라며 매번 잊지 않고 뭔가를 자꾸 챙겨 오시는 분, 본인이 좋아하는 과자인데 선생님도 드셔 보시라고 들고 오시는 분, 회사에서 최근에 나온 신제품 모둠 견과류 상품인데 드셔 보시라고 들고 오시는 분, 집에서 써 봤는데 날파리 퇴치에 아주 좋았다며 여름에 두고 써보시라고 아예 쿠팡 배송을 우리 스튜디오로 부치신 분, 이른 새벽부터 먼길 오시면서도 미니 단호박을 10개나 이고 지고 배낭에 메고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오신 분, 등등... 감히 헤아릴 수 없이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한번 생각해본다. 나도 어딘가에 내 돈 내고 배우러 다니면서, 혹은 누군가를 만나러 가면서 이렇게 마음을 담은 선물을 자주 하는가. 가족에게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호의를 담은 선물을 해봤는가. 선물이 크건 작건 그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것, 그게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엄마 말마따나 진짜 다 빚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의 빚. 우리는 그저 좋은 식재료, 맛있는 레시피와 정직한 음식으로 그 마음들에 보답할 수밖에. 그리고 그분들을 다시 만날 땐, 콕 집어 말씀드린다. 피드백을 잊지 않고 전하는 것도 예의라고 생각하기에.


"그때 주신 사과즙 너무 맛있게 잘 먹고 있어요."

"복숭아가 너무 달고 맛있어요."

"그 많던 날파리가 진짜 신기하게 한 마리도 안 보여요! 너무 잘 쓰고 있어요."

"선생님 덕분에 전국 땅부자가 된 것 같아요. 귀한 식재료가 너무 많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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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음식이 나오고 음식을 전하는 공간답게, 상황은 달라도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늘 같은 흐름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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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맛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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