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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집사 Aug 28. 2022

요리하는 사람이 유럽에서 한 달을 살면

다시 또 떠나야 할 때

2020년 1월 한 달간 서유럽을 돌며 여행을 했었다. 프랑스 빠리에서 시작해, 남프랑스 찍고 스위스로 건너가 지낸 다음 이탈리아로 내려가 지내다가 로마에서 인천공항으로 귀국하던 그날, 이탈리아 로마에서 코로나 확진자 최초 1명이 나왔다는 속보를 들었다. 그리고 그 후 2년 넘도록 발이 묶여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고 있다. 이제는 코시국이 많이 풀어져서 우리 수강생들은 물론 주위 지인들도 다시금 해외로 떠나는 걸 보며 여권 챙길 때가 다시 찾아왔구나 싶어, 그 자체로도 마음이 설렌다.


2020년 연초 우리 스튜디오는 한 달간 클로징하고, 온 가족이 다 함께 유럽여행을 떠났다. 아빠는 정년퇴직, 엄마랑 나는 자영업, 남동생은 대학원생. 어쩌다 보니 가족 모두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됐다. 우리는 비교적 가족여행을 곧잘 즐겨 다니는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몇 년 전만 해도 아빠랑 나는 직장인이라서, 동생은 학생이라서, 엄마는 엄마 나름의 스케줄이 있다는 이유로 가족 모두가 동시에 이렇게 장기간 시간을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어딘가에 메여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훌쩍 떠날 수 있는 여유들이 생겼다. 특히나 아빠에게 유럽은 비즈니스 출장 아닌 여행으로는 평생 처음 찾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여, 엄마의 로망이었던 '가족 모두와 유럽 한 달 살기' 실현하는데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이 여행의 토대는 내가 준비했다. 비행기 편, 숙소, 이동수단, 볼거리, 먹거리 등등의 모든 자잘한 것들은 여행 떠나기 6개월 전부터 꼼꼼히 조사했다. 요리하는 사람이 여행을 떠난다는 건, 모든 여행의 포커스가 음식에 맞춰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도 식도락가인 우리 가족은 평소 먹는 걸 참 좋아하고 식문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이 여행에 있어서도 머무는 각 도시마다 새벽시장, 빈티지장터, 유명 미슐랭 레스토랑, 동네 숨은 맛집 등등을 이 잡듯 뒤져 리스트업을 준비했다. 재래시장이 열리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고, 숙소는 언제나 대형마트가 근접해 있어야 하며, 외식도 물론 하지만 숙소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매일 하루의 마무리는 마트에서 양손 가득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와 양껏 요리해 먹는 것이 하루의 끝이니까.


프랑스에서 2주, 스위스에서 1주, 이탈리아에서 2주 정도 차례차례 머물며 한 달을 보냈는데 기억을 되짚어보면 각 나라마다 인상 깊은 포인트들도 모두 음식에 집중돼 있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프랑스 빠리에서는 엄마와 둘이서 현지 프랑스인 셰프에게 쿠킹클래스를 받아봤고, 예정에 없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며 한화 약 100만원 가까이 아찔하지만 기분 좋은 지출을 하기도 했다. 남프랑스로 내려와서는 새벽마다 낭만적인 숙소 앞에서 열리는 시장에서 장을 봐서 요리를 해 먹었고, 모나코에서는 세상 비싼 편의점 간식들로 가볍게 끼니를 때워도 봤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스위스는 확실히 여느 지역보다 물가가 비싸서 외식을 자제했는데 퐁듀를 사 먹은 식당에서 우리 가족이 떠난 자리에 웬 멀쩡히 생긴 젊은 영국인 남자가 쓱 찾아와 우리가 먹고 남긴 빵과 퐁듀를 거리낌 없이 주워 먹는 걸 보고 종업원이 그를 비둘기처럼 쫓아내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스위스 루체른에서 그린델발트로 넘어왔을 땐, 숙소 코앞에 아이거 산이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어 깜깜한 겨울밤에는 그 서늘한 웅장함에 완전히 압도됐었다. 추워 죽겠는데도 굳이 잠옷바람에 패딩을 껴 입고 마당에 나와 삶은 계란과 커피를 먹으며 아이거 산을 코앞에서 감상하던 겨울 아침은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이탈리아로 넘어와서는 어느 식당엘 들어가도 파스타, 피자, 커피는 영원 불변의 법칙마냥 맛있었고, 하루 삼시 세 끼를 파스타와 피자로 먹어도 신기하게 물리지 않았다. 이것의 정점은 남부 이탈리아로 넘어가 나폴리에서 마르게리따 피자를 먹었을 때. 단순히 피자를 먹기 위해 들렸던 나폴리에서는 모두가 거뜬히 1인 1피자를 해치울 수밖에 없는 원조 이탈리안 마르게리따 피자의 기막힌 풍미에 감탄했다. 도시 치안이 안 좋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충분히 피자 하나로도 나폴리는 다녀올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해본다.


지난 유럽여행을 돌아보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엊그제 엄마와 우연히 티비 채널을 돌리다 <텐트 밖은 유럽>을 보았기 때문이다.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캠핑을 하며 삼겹살을 구워 먹고 김치전을 부쳐먹는 장면들을 보니, 아 다시 여행을 떠날 때가 됐구나 싶다. 안 떠날 이유 없다. 그 언제일지 모를 설렘을 위해 우리 가족은 또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상을 보내며 마음의 준비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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