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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도 Oct 28. 2022

주문을 걸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보들이와 함께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이제 보들이는 완전히 약을 끊었고, 계절은 매년 짧아지는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자 하늘길이 열리며 하나둘 임시보호견들의 해외 입양 소식이 들려왔다. 임시보호를 하다 보면 비슷한 시기에 구조되거나 비슷한 사연, 특성을 가진 개들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얼굴 한번 본 적도 없는 임보자들은 서로의 입양 홍보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모든 개들의 해피엔딩을 기원한다. 


“얘도 입양 가네?”


입양 소식은 늘 반가운 것이지만 동시에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더 늦게 구조되었는데도 훌쩍 입양을 가버리는 개들을 보며 언제쯤 보들이의 차례가 올지 애가 탄 적도 많았다. 사실 입양은 선착순이 아닌데도 말이다. 


정성스럽게 만든 프로필을 올렸다. 다양한 사진을 찍기 위해 휴일이면 펫파크, 한강공원, 캠핑장 등을 돌아다녔다. 어떤 각도가 예쁠지 따져가며 찍고, 어떤 사진이 매력적일지 고민하며 올렸다. 이따금 구조자님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요청할 때면 좋은 소식이 있을까 싶어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들이가 입양을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린 적이 없다. 그 모든 불리한 조건과 문의조차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국내 입양은 힘들더라도 해외 입양은 가능할 것만 같았다.


나는 종종 보들이가 가게 될 집을 그려봤다. 숲이나 호수가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 뒷마당이 넓은 곳이면 더욱 좋겠다. 자연과 아웃도어 활동을 좋아하는 가족과 함께라면 보들이도 더욱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왠지 미국보다 캐나다가 어울릴 것 같은데?


그리고 이런 얘기들을 보들이에게 해줬다. 마치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금만 기다려. 너네 가족이 캐나다에서 기다리고 있어. 마당도 넓고 풀도 많은 곳이야.”


이건 우리 자신에게, 보들이에게 거는 희망의 주문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는 왜 우리가 입양하지 않는 거냐고 물을 것이다. 실제로 임시보호를 하다가 입양한 사례도 많다. 임시보호가 길어지면서 동생과 나도 입양 문제에 대해 의논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임시보호를 하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을 정했다. 어떤 사람들에게 임시보호와 입양은 연장선상에 있는 개념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볼 때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임시보호는 봉사를 하는 것이지만 입양은 ‘평생’ 책임지는 것이니까.


사실 우리의 진짜 고민거리는 보들이의 입양 여부가 아니 여름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더위가 아니라 장마였다. 올여름에 몇 개쯤 지나가게 될 태풍도 문제였다. 그냥 산책이라면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가면 되지만, 배변을 무작정 참으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비바람을 뚫고라도 무조건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실내 배변 교육을 다시 시작할까 등등.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보들이와 장마를 맞이하지 않았다. 

5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 구조자님에게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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