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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Jul 23. 2022

그래도 내가 뒤끝은 없잖아?

없긴 뭐가 없어요

나는 남한테 쉽게 판단당하기를 싫어한다. 내가 싫은 건 남도 싫을 테니, 나도 남한테 되도록 안 그러고 싶다. 내가 본 한두 가지 단면을 가지고 섣불리 '그 사람은 어떻다' 이러지 않으려 한다. 늘 이런 식이니 사람 판단이 느려 터졌다. 뛰는 거 하나 빼고 뭐든 느리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이 한 마디의 말만. 누군가가 이 말을 하는 순간 그 사람한테는 바로 마음이 닫혀 버린다. 열어 둔 문이 강풍에 쾅 닫히듯.


그래도 내가 뒤끝은 없잖아


듣는 순간 뇌 정지가 오고 소름이 끼친다. 자기 입으로 뒤끝 없다는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들에겐 신기하리만치 똑같은 점들이 있었다.


첫째, 성정이 공격적이다. 누구나 마음에 분노가 있고 그걸 다루는 나름의 방법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그게 공격형 분노 관리방식(타인에게 쏟아버리기)이다. 할 말, 못할 말 다 터뜨리고 쏟아내야 직성이 풀린다. 오로지 자기의 화난 감정만이 중요할 뿐, 자그마치 상대방의 감정씩이나 헤아릴 여력 따위는 없다.


둘째, 감정에 기복이 심하다. 확 끓어오르고 확 식는다. 조금 전만 해도 때려죽일 것처럼 폭주하더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확 식어버리곤 무슨 짓을 했는지 까맣게 잊어버린다.


셋째, 내로남불이 심하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데 타인에겐 한없이 비판적이다. 타인의 결점이나 민감한 부분을 기가 막히게 집어내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내가 원래 좀 솔직해"하면서. 하지만 자기 얘기를 누군가가 그렇게 했다간 난리가 난다. 너는 매너가 없다는 둥, 사람 간에 존중해야 할 영역이 있다는 둥... 하지만 정작 타인의 영역은 그 정도로 존중하지 않는다.


넷째,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잘못은 없다. 어쩌다 마지못해 사과해도 진정성이 없다. 그나마도 '그런데 말이야...' 이게 붙는다(결국 이 말을 하려는 것이다). 내가 말 심하게 한 건 미안한데 원인제공을 한 건 너라는 둥, 그래도 나니까 이 정도로 넘어가는 거라는 둥 찜찜한 결론으로 끌고 가 버린다. 정작 자신은 "난 찜찜한 거 질색이야, 뒤끝 없이 바로 해결해야 해." 이 말을 달고 살면서. 그리고 그 찜찜한 결론을 최종 결론으로 해 주지 않으면 도로 발작 모드이다. 너 뒤끝 작렬이라는 둥, 넌 성격을 고쳐야 한다는 둥, 사회생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둥... 그는 선생, 나는 학생. 에구에구 저 그냥 빵점 받고 조퇴하면 안 될까요?


다섯째(★★★ 엄청 중요해서 별 3개). 뒤끝이 작렬한다. 근데 잠깐만. 나의 애독자 작가님들은 다 아시지만, 난 한 번도 나 자신의 글에 밑줄을 그어 뭔가 강조한 적이 없다. 잘 쓰시는 분들이 읽기도 잘하시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한 번만 해 보고 싶다. 뒤끝 없다는 건 자기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곤 바로 홀랑 까먹는다는 걸 그럴싸하게 미화한 것일 뿐이다. 자기 입으로 뒤끝 없다는 사람들은 정작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자기를 섭섭하게 했는지에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기억력을 보인다. 이름하여 '뒤끝의 역설(The Paradox of 뒤끝)'.  


뒤끝 없으면 좋긴 한데, 문제는 혼자만 뒤끝 없다는 거죠. 그게 제일 무서워요.  [※그림 출처 :ㅍㅍㅅㅅ on Twitter]


"그래도, 내가 뒤끝은 없어"


이건 쿨병이다. 이 세상의 모든 쿨병 바이러스를 단 10글자로 압축한 그야말로 쿨병의 정수와도 같다. 진동하는 쿨내는 온누리를 뒤덮는다. 그래, 나는 쿨하니깐 이젠 더는 폭주하면 안 되는 거다. 어흠 어흠. 다 쏟았으니 이제는 다시 쿨해질 시간이지. 난 뒤끝이 없는 사람이니깐. 그지?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눈알이 홰까닥 뒤집혀서 90도→180도→270도→360도를 거쳐 한 바퀴 뱅글 돌아 제자리가 되면 누구나 그 정도는 뒤끝 없을 수 있다. 다 쏟고 텅 빈 것일 뿐이고, 폭주 직후의 쿨타임일 뿐이다. 24시간 폭주 모드면 그게 인간인가? 그렇게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는 나중에 "아이고 또 시작이구나" 싶을 땐 대체 어디다가 녹화라도 해 둔 건지 옛날 얘기도 죄다 털어 내는 걸 보면, 진짜로 뒤끝이 없다는 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대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의 감정선을 살피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그런데 상대방이 왜 저런 말을 하며, 왜 저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따위는 생각하기 귀찮으니 "그래도, 내가 뒤끝은 없잖아"라고 뭉개 버린다. 이쯤 되면 쿨병은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공공의 안녕을 해치는 심각한 질병이다.


쿨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저는 잘 안되네요.


여기, 뒤끝 없는 P와 뒤끝 많은 Q가 있다. 뒤끝 없는 P는 '지나가는 말'이라며 속사포를 쏘아 댄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네 남자 친구 말이야. 네가 너무 아깝다." "나니까 이런 말도 해 주는 건데, 너 살만 빼면 진짜 예쁠 텐데.” 그리고는 "내가 원래 솔직하잖아"라는 깨알 같은 말도 빼놓지 않는다.


뒤끝 많은 Q는, '내가 왜 이 사람한테 그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거지?' 고심하고 또 고심한다. 잊으려 하지만 사람의 뇌로 제일 하기 어려운 게 잊기 아닌가. 며칠 후, 뒤끝 많은 Q는 생각다 못해 뒤끝 없는 P에게 그때 왜 나한테 그런 얘기를 했었느냐고 묻는다. 뒤끝 없는 P가 하는 대답은 이 셋 중 하나다.

[1] "응? 내가 언제 그랬다고? 정말 뒤끝 쩐다. 근데 너 있지, 성격 좀 바꿔라."
[2] "아 그거? 그냥 별 뜻 없는 말이야. 왜 그렇게 예민해? 참 피곤하게도 산다."
[3] "내가 원래 성격이 이러니깐 맘에 담지 마라. 그래도 내가 뒤끝은 없잖아."

뒤끝 많은 Q는 졸지에 쓸데없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넣고 살아온 맹꽁이가 됐다. P 입장에선 내키는 대로 다 퍼부어 버렸으니까 당연히 뒤끝이 없지만, Q의 입장에선 그 지점부터 시작 아닌가.


'뒤끝이 없는 사람'은 험한 소리를 들어도 강한 마음의 힘으로 털어내는 사람을 가리켜야 하는 게 아닐까. 정작 자기가 질러 놓고는 언짢아하는 상대한테 "끝난 얘긴데, 넌 왜 구질구질하게 뒤끝이 많냐?" 하는 사람은, 사실은 뒤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터뜨리고 뒤끝 없는 게 나름 자랑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터지고 뒤끝 없는 건 엽총도 수류탄도 똑같다. 한 방 터지고 끝이니까. 그 한 방으로 타깃은 갈가리 찢어지는 것까지 완벽히 똑같다. 차이점? 없는 것 같다.


뒤끝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나 뒤끝 없어"라고 외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뒤끝 심한 사람일수록 자기는 뒤끝이 없다고 한다. 쿨병 걸려 쿨내를 한껏 풍기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의 잘못에만 쿨할 뿐이다. 그런데 아까 그 P랑 Q 중 진정한 뒤끝러는 누구였을까? 공고한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뭔가 4차원적으로 물컹물컹해지는 이 띵한 느낌, 그것은 바로 참을 수 없는 뒤끝의 무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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