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가본드 Jul 29. 2022

모두가 가족 같은 직장은 개뿔

가족 같은 직장 말고, 가족을 위한 직장을 원해요

어느 직장에, 입만 열면 '가족 같은 직장' 노래를 부르는 상사가 있었다. 그의 직속 부하들은 격주 토요일마다 동료들과 함께 등산을 하러 나와야 했다. 왜? 모두 서로 가족 같아야 하니까!


땅만 보며 줄지어 털레털레 산을 올라가는 모습이 그야말로 패잔병 소대이다. 아무도 말이 없다. 영혼도 없다. 한 명의 사람과 수많은 해골들이 줄지어 걸어간다. 해골 하나, 해골 둘, 해골 셋... 얼마나 갔을까? 산 중턱에서 쉬려고 자리를 잡았다. 돗자리를 깐다. 막걸리 잔이 한 바퀴 돈다. 가족 같은 상사는 입을 연다.


"어이 A!"

"네."


A는 신입직원이다. 들어오자마자 연수원에서 동기와 눈 맞아서 열애 중이다. 그날은 사귄 지 1년 되는 날인데, 원래는 여자 친구와 어디서 조용히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야 할 테지만 무슨 놈의 단합이니 소통이니 하며 이건 업무니까 특별한 이유 없으면 전원 필참이고 불참자는 개별적으로 직접 얘기하라니 1주년 기념일 얘기 따위는 꺼내 볼 꿈도 못 꾼다.


"얼마나 됐지?"

"1년 됐습니다."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

"......"

"말해 봐, 우린 다 가족이잖아."

"......"

"허, 이 친구 술 좀 더 줘야겠군. 오늘은 안 만나나?"

"이따 저녁에..."

"아니, 이따 다 같이 저녁 먹는데 자네도 갈 거잖아? 그냥 이리 오라고 해서 저녁 같이 먹자고 그래."


A는 돗자리의 무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어이 B!"

"네."


B 결혼 5  워킹맘이다. S전자 연구원인 남편은 연구원 특성상 주말도 휴일도 없다. 하는  없이 3살 배기 아이는 친정엄마한테 맡겨 놓고 나왔다. 안절부절못하며 휴대폰만 흘끔거린다.


"애가 몇 살이지?"

"3살입니다."

"애는 오늘 아빠랑 있나?"

"아뇨 그게..."

"저런. 괜찮아, 괜찮아. 옛날엔 갓난쟁이들이 마당에서 닭똥을 주워 먹으면서도 잘만 컸다잖아. 그런데 요새는 시대가 바뀌어서 남자들도 육아도 좀 돕고 그래야 되는데 말이야. 가사에 남녀가 따로 있나? 그게 당연한 거지..."


B는 돗자리의 무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어이 C!"

"네."


C는 워킹대디다. 워킹맘인 B보다 훨씬 일찍 결혼했는데, 가족 같은 상사는 C에게도 육아에서 역할이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초등학생인 아이의 교내 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아니, 엄마는 어디가고?"라며 의아해하는 가족 같은 상사를 어떻게든 설득해야 한다.


"어때, 나오니까 좋지? 집에 있어 봐, 집 청소해야지, 애 봐야지... 주말에 집에 같이 있으면 말이야, 서로 네가 해라, 네가 해라, 사소한 걸로 툭탁툭탁 싸운다고. 이유 만들어서 이렇게 나와 버려야 돼. 난 결혼생활 초반에 와이프 길을 잘 들여놔서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주말에 나가도 타박 안 해. 어디 가냐고 묻지도 않아. 서로 쿨하잖아. 왜, 이런 말도 있지? 배우자는 내가 하기 나름이다..."


C는 돗자리의 무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photo by : Vagabond

아하,

이제야 알겠다.

가족 같은 상사의 말속에

그간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의 답이 숨어 있었구나.


아하,

나는 그전까지 가족 같다는 말을 서로 속맘을 다 보여주고 하하 호호하는 그런 걸로 알고 있었는데, 가족 같은 상사가 언제나 목이 터져라 외치는 가족이라는 건 그가 하는 얘기들을 가지고 추정해 보면 어째 서로 좀 데면데면하고, 일 떠넘기기와, 때로는 기만과, 지능적인 삐대기가 난무하는 그런 거구나.


아하,

그래서 그분이 집에도 안 가고 남아 있고, 그 밑의 사람들은 가족 같은 상사님 저녁 식사 챙기느라 퇴근도 못하고, 어쩌다 술이라도 드시면 따라가서 술자리 모셔야 하고, 주말까지도 이렇게 되면 가족한테 그런 것까지 차마 말하지 못해서 밀린 일 핑계 대고 나와야 했던 거구나. 고통 분담한답시고 직원들끼리 그거 순번 돌리다 대판 싸움 나고 개판오분전 됐던 것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직장은 가족 같아야 하니까. 그런 거니까.


그분께서 늘 외치는 가족이란 게

실제로는 그런 거였으니,

가족 같은 직장에 세세연년 참으로 퍽도

화목한 웃음꽃이 찬란하게 만발하시겠다.



<※ 타이틀 사진 : 카카오프렌즈 공식홈>

이전 06화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의 함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