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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Apr 13. 2023

어떻게 매일매일 새롭기만 하니

'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롭다)

이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살아왔다. 어제는 그저께에 비해 새롭고, 오늘은 어제에 비해 새롭고, 내일은 오늘에 비해 새롭고, 그렇게 항상 새로워야 한다고 자기 계발서들은 입을 모아 외친다.


이날까지 일신우일신하려고 오랫동안 무진 애를 써 왔지만 실제 나에게 일신우일신은 딱 한 번 있었다. 학창시절에 2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암만 외워도 책 덮고 돌아서자마자 빠그작 까처먹고 날마다 새로워서 매일 뒈지도록 창조적으로 뚜드려 맞는 게 일이니 그야말로 완벽한 일신우일신이다.


암만 새로워도 이런 식으로 새로운 건 싫어서 이왕 일신우일신 하려면 좀 폼 나고 그럴듯하게 하려고 그 후로도 한동안 노력했지만, 이젠 일신우일신 하려고 애를 쓰는 게 싫어졌다. 하루라는 미소 단위로 잘라서 전날보다 나아야 한다는 사고는 그 성격상 필연적으로 내가 못한 순간만 찾아내어 점수를 깎는 감점평가법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런 식의 생각 구조에서는 운동이든 공부든 취미든 의욕에 넘치는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기는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는 걸 뚜렷하게 느낀 뒤로는.




세세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은 멋있다. 나는 건물 엘리베이터가 눈앞에 있는데도 일부러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고, 양치질을 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한발 서기를 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그런 행동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준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걸 넘어 아예 시간을 짧은 단위로 잘라 관리할수록 뭔가 비범하다고 보는 트렌드까지 있는 듯하다. 실제로 분단위 시간관리를 넘어 아예 초단위 시간관리까지 나오는 판이니 머지않아 아예 '분신우분신‘이나 '초신우초신’까지 나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 가슴이 뛴다. 어디가 부족했는지 알 것도 같고, 따라 하면 뭔가 될 것 같다. 열심히 따라 해 본다. 하지만 며칠 후엔 그대로다. 그러다 일신우일신을 외치는 또 다른 책을 만나면 부푼 마음으로 "그래! 새로운 내가 되어 보는 거야!"하고 시작한다. 또 실망한다. 무한루프를 뱅뱅 돈다. 2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 암만 외워도 매일 새롭고 매일 다른 부위를 뚜드려 맞으니 또 새로워 일신우일신하는 거랑 이게 도대체 어디가 달라?


그리고 그게 진짜 가능할까? 연인과 둘만의 시간도 가져야 하고, 가족도 챙겨야 하고, 사회적 대인관계 유지하는 데에도 시간을 써야 하고, 어떨 땐 번아웃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어떨 땐 진짜로 아프고... 그렇게 저마다의 삶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 속에서 하루하루 오르락내리락하며 완만하게 상승일 텐데, 하루 단위로 잘라서 전날보다 더 낫고 다음날은 더더 낫고 그다음 날은 더더더 낫고 이게 정말 될까? 인생선배를 자처하며 일신우일신을 강변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그랬을까? 아예 집을 떠나와서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학문에만 전념했던 공자의 문하생들이라면 몰라도, 무엇 하나에 온전히 전념하며 살 수 없는 우리네 삶에서 일신우일신은 좀 많이 비현실적이고 형해화된 정언명령은 아닐까?


나 궁금한 거 또 있다. 사람이 그렇게 노력에 정확히 비례해서 자라는 걸까? 꾸준히 노력하면 오늘은 30, 내일은 31, 모레는 32일까? 실제로는 죽어라 노력해도 한동안 정체되어 있다가(보통 이 기간을 참아내지 못하고 대부분 아웃), 막대해진 누적 시간이 얼마를 넘기는 시점에서 탁 터지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매일매일 직전날보다 낫고 낫고 또 나으면 그게 인간이냐? 콩나물이지.


(... 일신우일신에 매몰되면 잘되고 있는 중에도 반은 자책일 텐데...)


그러므로 나는 일신우일신 말고 월신우월신 하련다. 일신우일신이 뭐냐 일신우일신이. 내가 아는 한 인간의 매뉴얼 자체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알파고가 이세돌을 팍팍 때려잡고 나중엔 인공지능이 네놈의 직장도 팍팍 때려잡을지 모르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지 않으면 삽시간에 도태된다고들 말하지만, 난 발전해도 현실성 있게 발전하고 싶을 따름이다.


하루에 한 장씩 쓰는 종이 29장과 30장은 차이가 없지만 1장과 30장은 2D와 3D의 차이니까. 한 달 전의 나를 생각했을 때 확실히 나아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비록 그 한 달 중 전날보다 낫지 않았던 날이 여럿 있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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