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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Mar 01. 2023

알고리즘 말고, 모르고리즘

인공지능 챗봇 GPT에 세상의 관심이 뜨겁다.


언론에서는 단순반복 업무뿐 아니라 전문직도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논문, 과제, 연설문 등 글쓰기는 물론 시, 소설, 음악, 시나리오, 연극 대본 등 창작 활동도 가능하다고 한다. 아예 사람보다 문장을 더 잘 쓰니 이제 곧 사라질 작가나 예술가들을 걱정하는 친절함(?)도 빼놓지 않는다. 몇몇 공공기관에서는 벌써 민원 창구와 콜센터를 연내로, 늦어도 내년까지 AI(인공지능)로 전면 대체하라는 말까지 나온다.


석사 때 인공지능으로 졸업 논문을 쓰던 그땐 인공지능이 그야말로 응애였는데(응애!) 세월이 제법 지난 지금은 어디까지 와 있을지 궁금했다. chat GPT를 접속하고 sign-up(회원가입)을 했다. 원래는 sign-up을 아주 귀찮아하지만 이것을 꼭 체험해 보고 싶었다.



Q. 신사임당의 남편은 누구인가요?

A. 이순신.


Q. 이순신의 아내는 누구인가요?

A. 이순신 장군의 아내의 정확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역사교과서에서는 이순신이 결혼하지 않았음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Q. 조금 전에 신사임당의 남편이 이순신이라 하지 않았나요?

A.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하여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신사임당은 부부 관계가 아닙니다. 신사임당은 조선시대의 여왕이며, 이순신은 조선시대의 장군이었습니다.


Q. 신사임당은 조선의 몇 번째 왕인가요?

A. 신사임당은 조선시대의 23번째 왕입니다.



"조선의 23번째 왕은 누군데?"라고 추궁하지 못했다. 영화 'AI'를 보고 구슬 하나가 또르르 구르려다 말았던 게 생각나서 마음이 약해졌다. 아무리 영혼 없는 기계지만 애써 만든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 가혹한 짓이기도 하고. 더는 묻지 못하고 소심하게 처음으로 돌아가서 똑같은 걸 계속 묻고 있다.


안되겠다. 중지! 중지! 딴 거 묻자, 딴 거!

아니 뭐, 모를 수도 있긴 한데, 모르면 그냥 모른다 하면 안될까? 하긴 AI가 무슨 죄가 있나. 인간은 자꾸만 자기가 모르는 것에도 한마디라도 얹어서 아는 시늉을 하는데 인간의 그런 나쁜 습성을 왜 로봇에게까지 전염시키냔 말이다. 주인님의 고질적 결점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건 애초에 IT적으로 설계 자체가 잘못 아닌가.


서울시가 작년에 거점형 키움센터를 설립하고, '변화하는 시대의 교육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센터 이용자인 아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교육용 봇을 구입했다. 그런데 개관 기념행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챗봇에게 "서울시장 이름이 뭐죠?" 했더니 봇이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해서 담당 부서가 발칵 뒤집혔다. 그래도 얘는 낫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한 봇에는 죄가 없다. 오히려 칭찬해 줄 일이다. 자기가 뭔가를 모른다는 걸 알고, 진실되게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앎과 진실함이 다 있을 때 '모릅니다'라는 한마디가 탄생한다. 인간도 잘하지 못하는 걸 봇이 하고 있지 않은가. 박원순이라 그랬으면 어쩔 뻔했어. 풀 한 포기 안 남아났겠지.




그때가 생각난다. 석사 졸업학기. 지도교수님이 800페이지가 넘는 영문판 전공서적 번역본을 낸다고, 연구실 석사과정 원생 6명이 나눠서 2주일 내로 끝내라는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번역은 이런 식으로 여럿이 잘라서 하는 거 아닌데. 그때 석사과정생 중 최고참이었던 나는 교수님께 가서 말씀을 드렸다. "찢어하기 번역은 여러 가지 이유로 문제가 많고, 시간도 너무 없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은 "어려워? 알았어. 가서 일 봐."라고 하시더니, 다음날 번역 프로그램 하나를 내 손에 건네주었다. 원한 건 이게 아닌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까. 연구실로 내려와서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테스트를 해 봤다.


[배가본드의 입력 #1] Our schedule has been fucked out.


얘는 과연 이걸 '우리 일정이 나가리 됐어'라고 할까, '파토났어'라고 할까? 프로그램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의기양양하게 결과물을 내놓았다.


[프로그램의 출력 #1] 우리의 일정은 밖으로 성교됩니다.


느낌이 싸했지만, 하나 더 해 봤다.


[배가본드의 입력 #2] You are fired. (넌 해고야)

[프로그램의 출력 #2] 당신은 불붙습니다.


견적 나온 것 같지만, 그래도 삼세판이니 하나만 더..


[배가본드의 입력 #3] You are fired! You are fucking fired! (넌 해고야! 이런 염병할 넌 해고라고!)

[프로그램의 출력 #3] 당신은 불붙습니다! 발사되어 당신은 성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날까지 살아오며 설치한 지 5분도 안 되어 삭제한 프로그램은 이것이 유일하다. 석사과정 후배들에게 차마 이걸 쓰라고 줄 수가 없었고, 혹시 교수님이 그 번역 프로그램 잘 쓰고 있냐고 물으시면 무조건 잘 쓰고 있다고 하라고 석사과정 후배들을 입단속하는 기구한 신세가 되었다. "그게... 저희들이 그냥 하나하나 사전 찾으면서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랬다간 당시 교수님의 스타일상 본전도 못 뽑을 게 뻔했으니.


chat GPT는 이런 수준은 분명 아닐 테지. 잠깐이나마 AI에 발을 담갔던 적이 있는 입장에서 이걸 만드느라 노력했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폄훼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한 느낌만은 뚜렷하다. 분명히 내가 본 것들 중 가장 낫지만, 기술의 영역에서 뭔가 새로운 게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려서 생기곤 했던 제2, 제3의 문제를 원하지 않기에 한없이 조심스럽고 싶을 뿐이다.




시, 소설, 에세이 등 문학이나 그림, 작곡 등 예술의 영역도 AI가 인간을 대신할 테니 이제는 변화하는 세상에 맞는 취미를 가지라고 많은 이들은 말한다. 그런데 궁금했다. 정말로 chat GPT는 시를 쓸 수 있을까.

(... 시보단 먹방 대본에 가까운데...)

오늘도 브런치를 접속한다. 개편된 모바일 브런치의 '발견' 탭은 알고리즘으로 관심사를 파악해서 추천 글을 띄워 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나의 발견 탭엔 성($ex) 관련 글들만 넘쳐난다. 브런치에 섹스 칼럼니스트 작가님들도 계시지만 관심작가 중에는 없고 난 최소 10개월은 브런치에서 그런 건 읽은 적이 없는데. 작년 봄에 브런치 처음 시작했을 때 여기저기 파도 타다 몇 번 마주친 게 전부인데 이게 나의 맞춤형 관심글이라고? 누가 나를 대충 지레짐작으로 판단하고 "너 이거지?" 이러면 기분이 나빠지는데 브런치에서까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것인가? 뭘 안다고 알고리즘이냐? 모르고리즘이지.

그러니까, 나한테 "너 이거지?" 하는 거잖아?

누군가가 나에게 그랬다. 이렇게 기술이 발전할 거 누가 알았냐고. 걸어 다니며 전화하고, TV나 폰이 꼭 무슨 강아지처럼 사람 말을 알아듣고, 누군가가 내 현관문 앞에 아침에 먹을 것을 놓고 가고. 옛날에 SF 영화에서나 보던 일들이 이젠 다 실현되고 있지 않냐고. 문학과 예술도 가까운 시일 내에 컴퓨터가 대신할 거고 작가나 예술가는 그땐 필요 없어진다고. 넌 인공지능 공부했으면서 왜 그걸 모르냐고.


아무래도 그는 나와 정반대로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바로 그 인공지능을 공부했다가 시와 소설과 에세이가 더욱 소중해진 건데. 여기서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이것들만은 인공지능이 인간만큼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 이유로 이들이 더 좋아졌던 건데. 나에게는 어떤 종류이든 글을 읽는다는 건 그 글의 마음을 보는 것이고, 기술적인 건 그럴듯하게 흉내 낼 수 있겠지만 어떤 마음도 담겨있지 않은 글은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어쩌다 AI는 많은 이들에게 이토록 환상을 줬을까? 정작 필드의 개발자나 테스터들은 그런 말 쉽게 안 하는데. 하긴 굴 껍데기 까는 것도 제 손으로 까 보기는커녕 구경도 못 해 본 사람이라면 "기계가 까면 되잖아?" 이럴 거 아닌가. 공공기관 민원 응대나 콜센터 상담도 최대한 빨리 AI로 다 바꿔 바꿔 외치는 탁상 앞 사람들은 자기 손가락으로 AI를 단 한 번이라도 꾹꾹 찔러봤을까. 뭔가 예외적인 상황을 설명하거나 항의를 하려고 전화했는데 '지금부터 AI가 모십니다' 이러면 나라도 그냥 끊어버릴 텐데. 기계면 무조건 좋은 줄 아는 탁상 앞의 그분들께 인간은 그저 느리고 멍청하고 하찮은 존재일 뿐일까. 원래 모르면 아무 말이나 막 하게 되어 있으니 그분들까지는 이해하자. 그런데 과학이 세상의 모든 답을 갖고 있는 척하는 건 과연 옳을까.


괴테나 헤밍웨이의 뇌를 복원해 내고 AI가 진짜로 문학작품 생산까지 대신하는 날도 언젠가는 올지 모른다. 정 그런 걸 원한다면 기다려 줄 일이다. 과학 발전의 동력은 인간의 게으름이니, 날이 갈수록 깊이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인간을 생각하면 아마도 그런 날도 오긴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자기 속도가 있고 보리를 빨리 자라게 하려고 보리싹을 위로 잡아당겨서 다 말라죽게 만든 맹자의 '농부 이야기'를 무려 2,300년 지난 지금 와서 되풀이할 까닭을 나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 때 되면 어련히 될까. 엔지니어들은 온 힘을 다하고 있고, 어디까지 되고 안되는지도 그들이 가장 잘 안다. 제발 설레발치고 재촉하지 좀 말자.




< 2023.3.1. 배가본드 쓰고 그림 >

  ※ 표지사진 : 슈가맨 제21회, 2018.1.14.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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