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랑 같이 길을 가고 있었다. 지하도를 통해 길을 건너는데, 바로 앞에서 한 아저씨가 목발을 짚고 힘들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저씨의 무릎 밑이 잘려 나가고 없었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본 나는 깜짝 놀랐고, 지하도 전체에 쩌렁쩌렁 울릴 만한 목소리로 그 아저씨의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소리치고 말았다.
집까지 오는 30분 넘도록 아버지한테 계속 혼나면서 왔다. 아니 이놈아, 다리 다쳐서 밖에 나가는 것도 싫을 사람 바로 뒤에서 귀청이 날아가도록 발 없다가 뭐냐? 저 사람이 얼마나 화나겠느냐? 그 30분 넘게 이어진 얘기는 지금도 아주 그냥 외우다시피 할 정도다. 어린애가 어디서 모르는 사람한테 폐를 끼칠 것 같으면 보통은 "아저씨가 '이놈!!' 한다"라며 보호자가 주의 주기로 끝나는데, 30분을 길에서 계속 혼나면서 집에 온 걸 보면 잘은 몰라도 내가 엄청 큰 잘못을 한 건 맞나 보다.
그 일이 있고 긴 세월이 지난 며칠 전. 내가 자세가 안 좋았는지 그만 거북목이 왔다. 무슨 플라스틱으로 테를 둘러 목을 고정시키는 신세가 됐다. 그러고서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오는데 바로 뒤에서 난데없이 어떤 꼬마가 내 뒤통수에 대고 진짜로 고막이 터져 나가도록 외치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이거, 아마 어릴 때 그 사건의 업보를 똑같이 치르는 거겠지만 그 꼬마도 훗날 언젠가는 똑같이 당할 거다. 흥 그래, 아자쒸한테 상처를 줬다 이거지? 나중에 어디서 똑같이 한번 당해 보라고. 뭐 어쨌든 업보를 털어 가져가 준 건 고마워. 아자쒸는 이제 자유야. :P
오늘밤을 닮았던 그날밤. 1월의 비 내리는 밤. 군대에서의 마지막 밤. 모든 마지막은 그 뒤에 이어질 뭔가의 시작이다. 마무리와 시작은 그렇게 맞닿고, 마지막을 맞이하는 마음은 그래서 경건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밖에 나가 보았다. 복도의 화이트보드에는 '오늘의 메뉴'가 씌어 있었다. 조식, 중식, 석식...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메뉴는 늘 그러려니 하며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 순간만은 나의 마지막 식사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영양곰탕.
거기 적혀 있는 이름들만 보면 마치 대장금 수라상 같다. 대궐김치(실제로 김치는 궁중에서나 볼 수 있었다고 하니 틀린 건 아니구나), 이베리코 흑돼지 돈가스(때려잡아 껍질 벗겨 놓으면 흰둥이인지 검둥이인지 알게 뭐란 말이냐?), 거제도식 대구탕(그런데 대구는 어디? 하긴 붕어빵에도 붕어는 없지) 등등...
영양곰탕? 에이, 아무리 예쁘게 순화해도 콩을 팥이라 할 순 없잖아. 보드 마커를 집어 들었다. 뾱! 뚜껑 뽑는 소리가 청아하다. 어차피 영양곰탕도 후까시를 잡을 요량일 테니 이왕 후까시를 잡을 거면 확실히 잡아야 하는 것 아니랴? 화이트보드의 '영양곰탕'을 손으로 샥샥샥 지우고, 대신 이걸 써 놨다. 최대한 있어 보이게 아예 한자로, 그것도 흘림체로. 호이!
'누를 황(黃)' + '소 우(牛)' + '건널 도(渡)' + '큰 물 강(江)' + '끓일 탕(湯)'. 그러니까 이건 소가 장화를 신고 풍덩 밟고 지나간 물을 떠다 끓인 찌개다. 이 황우도강탕(黃牛渡江湯)은 군내 뿌리 깊은 악습인 일부 간부의 보급물자 빼돌리기와 깊은 관계가 있다. 쇠고기가 여러 사람 손을 거치며 어디론가 사라지고 부대 취사장에 도착할 때는 기름덩어리만 남아 있는데 이걸 솥에 넣고 소금과 무를 넣어 펄펄 끓이면 이것이 바로 황우도강탕 되시것따.
그런데 날이 밝자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높은 분이 보시고 극대노해서는 어느 놈이 군을 모독했는지 색출해서 영창에 잡아 넣는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겨울비는 주룩주룩 내리는데 모두 속옷만 입은 채로 집합하란다. 이크! 영하의 추위에 비를 맞으며 속옷 바람으로 진흙탕을 뒹구는 140여 명의 전우들을 뒤로하고 재빨리 제대 신고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 내빼버렸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 황우도강탕 파동은 미제사건이다. 용인에 있던 그 부대는 지금은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젠 그 자리에 다른 부대가 있으니, 감히 신성한 군을 욕되게 한 역적놈이 누구인지는 그야말로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게 된 것이다.
아저씨의 뒤통수에 대고 '앗! 발 없다!' 했다가 세월 지나 똑같이 당해 보니 이 황우도강탕 소동도 영원한 미제사건 되었다고 헤헤거릴 일이 아니다. 잘못은커녕 영문도 모르는 140여 명의 전우들이 한겨울에 속옷 바람으로 비를 맞으며 뒹굴게 해 놓고 튀어 버리면 땡일 줄로만 알았지. 이것도 언젠가는 업보를 치를 텐데?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런 게 한두 가지가 아닌 듯해서 이 겨울밤의 사색이 살짝 무서워진다. 과연 나는 앞으로 어떤 업보를 치를 것인가? 그러게 좀 착하게 살지 그랬느냔 말이다. 그 꼬마 때문에(덕분에?) 이거 아무래도 되게 잘못 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