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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Mar 27. 2023

내가 먹은 게 뭔지 궁금하지 않아

외국에 갔다. 평소 먹는 데 엄청 진심이라곤 보기 어려운데 외국만 나오면 완전 다른 놈이 된다. 일명 외가본드.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현가본드와 글가본드는 사라지고 외가본드가 탄생한다.


외가본드는 조식 뷔페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외가본드는 뭔가 맛을 예측할 수 없거나 아예 처음 듣는 이름을 가진 것을 우선 집는다. 좋은 음식이라도 무슨 맛일지 짐작되면 일단 후순위로 밀린다.



첫날. 외가본드의 발이 멈춘 곳은 빵 코너였다. 클레코레이션 빵(clecoration bread)! 처음 들어보는 그 이름 덕분에 맛을 보기도 전에 벌써 맛있다. 외가본드의 취향이 저격당했다.


그중 바게트를 닮은 것을 집어 들었다. 칼을 들고 삑삑 잘랐다. 으윽. 안 썰린다. 어찌어찌 낑낑 자르긴 했다. 발사믹식초와 올리브기름을 반반씩 섞어 소스를 만들고 흠뻑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다! 보통의 빵보다는 질긴 느낌이고 떫은맛이 강했지만, 회가 초장맛이면 바게트는 소스맛 아니랴? 질겅질겅 오래 씹어 넘기며 뭔가 해냈다는 야릇한 성취감도 느껴졌다.


현가본드나 글가본드와는 달리 외가본드는 뭔가 진기한 걸 먹으면 그 정체를 알려하지 않는다. 국내면 재료를 구해서 나중에 따라 해 보고 싶으니 궁금하지만 외국이면 어차피 나중에 재료도 못 구할 테니 한 번의 환상적인 기억을 미지의 영역에 박제하는 쪽을 택한다. 맛있으면 그걸로 된 거고, 신비감을 고이 모셔다 가두려 한다.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고 그냥 느끼고 싶다.


둘째 날. 클레코레이션 빵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전날 먹은 만큼, 딱 그만큼만 짧아져 있었다. 잘린 면도 그대로다. 안 잘려서 죽을힘을 다해 낑낑 자르느라 애먹다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던 그 단면을 기억한다. 첫날 느꼈던 빵의 색다른 맛과 그 질긴 걸 먹어 냈다는 성취감에, 이젠 이 빵을 지속적으로 독차지하고 있다는 묘한 정복감까지 더해지니 어제보다 더 맛있었다.


셋째 날. 외가본드는 슬슬 궁금해졌다. 왜 아무도 안 먹지? 여전히 그 전날 내가 자른 단면 그대로군. 이 맛을 아는 이는 나뿐인가? 아무리 맛없어도 다들 이 정도로 일관되게 외면하는 게 어째 좀 비현실적인 건 아닌가? 어느 사전에도 없는 이 말은 무슨 뜻일까?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게 잘못된 거라면 웬 외국인 남자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빵에 달라붙어 삐질삐질 안간힘을 다하며 끙끙 야한 소리를 내고 있으면 직원이든 투숙객이든 최소한 한마디라도 해 줬을 것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한 번도 안 궁금할 순 없나 보다

넷째 날. 외가본드는 궁금증을 접었다. 난 그냥 3일 동안 이름 모를 빵을 발사믹식초 + 올리브기름에 찍어서 맛있게 먹었을 뿐이고, 이미 불가역성이 발생한 그 모든 일들을 이제 와서 굳이 재해석할 까닭은 어디에도 없으니.




일본의 어떤 오락 프로그램에서, 요즘 뜨는 맛있는 쇠고기라며 연예인한테 시식을 시키니 얼굴이 밝아지면서 '맛이쓰무니다' 하니까 이건 육류 생산하다 생기는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인분으로 만든 친환경 미래식품이라고 진실을 알려주니 그 연예인은 사색이 되어 손으로 입을 막고 무대 뒤로 뛰어가 버렸다. 그냥 '맛이쓰무니다'에서 끝냈으면 어땠을까. 제작진이 뭔가 심오한 걸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쇠고기를 볼 때마다 그걸 떠올릴 저 사람은 뭐가 된담. 아무리 환경에 좋고 맛있어도 그렇지, 처음부터 알고 먹는 거랑 먹을 땐 몰랐다가 나중에 아는 거랑 어떻게 같나.


알아서 나아질 게 없으면 물을 이유도 없음을 안다. 산타클로스의 정체는 뭔지, 동료가 퇴근 후에 뭘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날 만나기 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오래전 아무런 설명 없이 날 떠난 사람의 진짜 이유는 뭐였는지 알려는 건 무슨 도움이 될까. 아무 의미도 없는 걸 물을 때 보통 '그냥 궁금해서...'라고들 하지만 궁금한 건 '그냥'으로는 너무 불충분하다.


'아는 게 힘인가, 모르는 게 약인가?'가 토론 주제로 주어진 적이 있다. 하기 싫었다. 이걸 토론한다는 그 자체가 잘못 아닐까. 이런 식의 양자택일 강요가 싫다. 마치 '완전 천사지만 너무나 못생긴 사람, 인성 최악이지만 최고의 미인. 누구랑 살래?' 이거 같다. 지금 내 옆에 놓인 아령처럼 양끝만 있고 중간은 함몰하고 없다. 애초에 토론이란 생각을 유연하게 하려는 걸 텐데 이런 식의 주제는 도리어 아집과 독선을 유도하는 게 아닐까.


생각의 관절이 유연해진다면 그냥 모르고 넘어갈지 자세하게 짚어 볼지 상황에 맞게 판단할 수 있겠지. 아는 게 힘인지 모르는 게 약인지 어느 쪽이 맞고 틀리다고 할 게 아니라 경우마다 판단이 다를 테니. 어느 개그맨이 말한 '그때그때 달라요'처럼.


고로 나는 클레코레이션 빵이 뭔지 모른다. 나에게 중요한 건 해외여행 중에 이름 모를 빵을 발사믹식초와 올리브기름에 듬뿍 찍어서 4일 내내 아주아주 맛있게 먹었고 그건 내 인생빵이었다는 그 하나의 사실뿐이니까. 그러니 빵에 진심인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맛있게 먹은 빵이 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게, 2023년 봄에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의 리조트에 있는 동안 매일 먹었던 클레코레이션 빵이 최고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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