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름 모를 독자님.
책을 첫 장부터 읽으시네요. 신기해요. 저는 보통 중간쯤부터 읽기 시작하거든요. 머리말은 아예 보지도 않고요. 책을 읽는 것에도 이렇게 서투른 제가 글을 쓰고 모아서 브런치북을 엮는다는 건 놀랍고도 기특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독자님께서 지금 당장 저를 좀 칭찬해 주셔야겠습니다.
사실 처음엔 그림책을 내고 싶었어요. 글쓰기 실패담을 그린 만화죠. 그런데 못했어요. 그림이란 언어의 바다를 건너야 닿을 수 있는 섬과도 같아서요(나름 포장했지만, 네. 실은 그림을 지지리도 못 그려서 그렇답니다).
이 브런치북 <나이롱 작가의 실패담>은,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신 분이든 글쓰기를 오래 하신 분이든 누구라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독자님께서 언제 어디를 펼쳐 읽어도 괜찮은 브런치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가운데부터 읽으셔도 좋습니다. 한심한 실패 이야기에 한껏 비웃으셔도 괜찮고요.
글을 쓰고 오래 지나서 그 글을 다시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묘합니다. 항상 오그라들고 부끄럽고 '지금 봐도 정말 잘 썼네' 이런 생각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오늘도 어딘가에 3년 전 써 둔 글을 우연히 만납니다. 충격적입니다.
○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걸 평소엔 무심코 지나치다 어느 순간 퍼뜩 깨달음이 찾아올 때가 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도 사과가 떨어지는 걸 그날 처음 본 건 아니었을 거야.
○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물로서의 돼지보다는 만화의 돼지나 그림책의 돼지를 먼저 접한다. '돼지(a pig)'라는 것의 스키마는 실물을 보기도 전에 뇌에 고착되어 버린다.
○ 그런데,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는데 바로 앞에 큰 트럭이 돼지를 엄청 많이 싣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면서 퍼뜩 깨달았다.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깨달은 아르키메데스의 기분이 이랬을까. 유레카 유레카를 외치며 몸에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뛰어가던 그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당시엔 풍기문란이 죄가 되지 않았거나 아르키메데스가 굉장히 빨리 뛰었거나 둘 중 하나였겠지. 어찌 됐든 그는 체포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흠냐 흠냐, 각설하고 말이다. 돼지는 당연히 흰색이라고 믿어 왔던 나에게는 이 발견이 큰 충격이었는데, 성격상 뭔가 알아도 좀처럼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 나지만, 이 하나의 사실만은 온누리에 외쳐서 당장 모두와 나누지 않고선 입이 근질거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아이고 엄마야 어쩜 좋니, 이걸 글이라고... 네. 제가 이랬습니다. 이러고 놀았습니다. 이때는 제가 뭔가 대단한 걸 발견했다고 믿었는데, 나중에 보니 소품 가게에서 파는 돼지 캐릭터는 대부분 분홍색인 걸 알았습니다. 돼지저금통도 그렇고요. 많은 사람들이 아는 걸 저 혼자 아는 걸로 착각한 거죠.
저는 이런 식으로 과거 기록을 보고 제가 얼마나 모자란 놈이었나 그제야 알게 될 때가 많았습니다. 만약 기록 없이 기억에만 의존했다면, 아마 저는 제 자신을 실제보다 나은 모습으로 기억했겠죠. 제가 몇 번 체험한 느낌으로는 사람이 머릿속에서 기억을 끄집어낸다는 건 디스크에 저장된 파일을 불러오는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오래된 창고의 어렴풋한 조각들을 현재 감정으로 치덕치덕 엮어서 뇌라는 캔버스에 재구성하는 과정에 더 가까운 게 아닌가 합니다. 결국 기억이란 '회상하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과거'일 뿐이겠죠.
저희 집만 해도 그렇습니다. 같은 사건에 아버지의 기억이 다르고, 어머니의 기억이 다르고, 저의 기억이 달라요. 사람이 과거를 자기도 모르게 많이 왜곡해서 기억하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과거의 제가 얼마나 미숙했는지 스스로 파악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기억력과 성찰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저에게는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그렇게 오래전에 써 놓은 걸 보면 그땐 괜찮네 싶었는데, 지금 보면 "아니 이런 염병할, 내가 이걸 글이라고 썼단 말인가?" 맨날 이게 돼요. 저는 항상 이런 식입니다. 사실은 그때도 미숙했는데 저만 그걸 몰랐던 거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나중에 3년 후의 저는 지금의 저를 그렇게 느낄 거잖아요?
이게 결국 무슨 말일까요. 저에겐 삶의 매 순간이 미숙함이었고, 지금도 미숙이고, 한 번도 미숙이 아니었던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의 눈엔 자식이 20이든 40이든 60이든 미숙해 보인다는데, 한동안 저는 그게 부모님의 시계가 내가 어렸던 그때로 멈춰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나이가 몇이든 제가 실제로 미숙해서였습니다. 사람은 몇 살이면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평생 늙어 죽을 때까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고, 그 하나를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건 매 순간의 기록 없이 기억에만 의존하면 불가능함을 알게 되고부터였고, 사소한 생각도 하나하나 글로 남기기로 습관을 들인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쓰는 모든 글들은 그 누구도 아닌 미래의 저 자신을 향해 띄우는 글들입니다. 어쩌면 저는 '그땐 최선을 다해 썼는데도 지금 다시 보니 이렇구나' 이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다가 나중에 그 하나를 확인하려고 글쓰기를 하는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저의 글을 기분 좋게 읽어 주시는 분들의 피드백은 제게 무척 고맙고 소중합니다. 계속 쓸 수 있도록 힘을 주니까요. 아무리 좋은 거라도 즐거움 없인 오래 못 해요. 하지만 그게 너무 즐거워서 제가 무엇을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는지마저 잊지는 않고 살겠습니다. 글쓰기에 너무 진심이 되어버려서 제가 무엇을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는지마저 잊지는 않고 살겠습니다.
< 글 - 배가본드 그림 : pixab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