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다. 나는 눈물이 많지도 적지도 않다. 나는 가끔 울 때도 있다. 하지만 아무 데서나 울지 않으려고 하니, 어쩌다 그럴 때는 항상 '아무도 몰래 혼자서'이다.
우는 이유는 그때그때 다르다. 분해서 울 때도 있고, 미안해서 울 때도 있고, 지난날을 후회해서 울 때도 있고, 나 자신이 한심해서 울 때도 있다. 남의 글에 감정 이입해서 울 때도 있고, 나 자신이 글 쓰면서 울 때도 있다. 심지어 게임의 엔딩을 보며 너무 슬퍼서 울었던 적도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든 한번 눈물이 터지면 그때부터는 이유가 뭐였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순전히 울고 있는 상황을 계속 끌고가기에 좋은 기억들을 밑도 끝도 없이 소환해서는 앞뒤 하나도 안 맞게 줄줄이 갖다 붙이며 내면에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여러 이유로 울어 봤지만, 딱 하나를 못 해봤다. 너무 좋아서 우는 거. 어릴 때는 이런 종류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상한 사람이다! 너무 좋으면 웃어야지, 왜 울어?" 이랬다. 그냥 자기가 겪어 본 세상 말곤 없던 거지. 지금은? 부럽다. 울어도 그렇게 울어 보고 싶다. 한 번은 꼭 해 보고 싶다.
"남자는 평생에 딱 세 번 우는 거다!" (태어났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을 때, 어머니를 여의었을 때)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이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산다. '울면 꼬추가 떨어진다'라는 말도 따라붙는다(명백히 뻥이다. 내 꼬추는 여전히 무사하다). 낡은 성역할 관념에서 강요된 남자다움으로 슬픔이나 분함을 표현할 통로 자체를 원천 봉쇄당한다. 그렇게 훈련되고, 그렇게 어른이 된다.
이미 수많은 연구결과에 의해 눈물을 억지로 참는 것은 의학적으로 대단히 해롭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우울, 불안, 스트레스 등에 노출되면 체내에 유해물질(카테콜아민)이 급증하고, 우는 것은 그걸 배출하는 행위이다. 울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도 실은 독성 물질을 몸 밖으로 버리고 느끼는 편안함이다.
남성이 우는 평균 횟수는 여성의 1/5 정도라 한다. 하지만 카테콜아민 생성 속도는 남자나 여자나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남성 쪽은 술, 담배, 약물 등 환각적인 것들에 더욱 유혹받고, 성인병과 정신질환에도 더 취약해지며, 남성의 평균수명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데에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결국, '남자는 일생에 세 번만 우는 거야!'라는 말은 몸과 마음에 해로운 뭔가를 강제한다는 면에서 "술도 못 먹는 새끼가 남자냐!"라는 말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여기에 내 의견을 조금 붙이면, 남성 울음이 여성의 1/5밖에 되지 않는 건 남성이 여성보다 다섯 배가 강해서가 아니라, '울면=약함' 이 항등식을 줄곧 주입받다가 성인이 되어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울어도 되는 상황에서마저 좀처럼 울지 못하는 감정마비 상태가 된 것에 훨씬 더 가깝다.
치유의 눈물, 정화의 눈물.
배운 적은 없어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그러니 한번 울면 자기도 모르게 일부러 더 울려고 한다. 눈물이 나오려고 하면 숨을 곳부터 찾는 건 누가 보는 게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래야 자기가 원하는 만큼 울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하면, 일생을 바쳐서 뭔가를 이뤄내도 울어선 안 된다. 평생 하나만 바라보고 노력하다가 응당 받아야 할 결과를 말도 안 되는 부조리로 강탈당했을 때도 울어선 안 된다. 자기 목숨보다 사랑했던 그녀를 잃고도 울어서는 안 된다. 영화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를 보고도, <더 미션(The Mission)>을 보고도 울어서는 안 된다. 왜? 남자니까!
남자도 여자만큼 울 수 있게 해 달라고까진 안 하겠지만, 세 번은 너무하잖아? 아기가 태어날 때만 우나? 아기는 그냥 밤낮없이 울어대지 않나? 그럼 아기 입을 양말로 틀어막나? 만약 목숨 걸고 했던 사랑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가정하면, 나는 그녀 앞에서 눈물을 보이진 못하겠지만 돌아서서는 한없이 울 건데? 또 만약 어떤 이유로든 너무 좋아서 우는 상황을 가정하면, 오히려 그건 내 버킷리스트이고 나는 누가 보든 말든 울 건데?
"남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 번만 우는 거야." 누가 만든 말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궁금하다. 그 사람은 평생 진짜로 세 번만 울었을까? 나는 누군가가 자기도 못하는 걸 남들 보고 여봐라 외치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행성파괴급으로 표리부동한 그 사람이 누군지 진심으로 알고 싶다. 알면 꼭 전하고 싶다. "예끼 여보쇼, 남자가 진정 흘려선 안 되는 건 눈물이 아니라 소변이오, 소변!"
< 글: 배가본드 / 그림: pixabay.com >
"슬픔을 느끼는 거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숨어 있는 보석이야." <어린왕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