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브런치를 열고 글 사냥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밤새 피드에 떠 있는 관심작가들의 새 글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브런치 나우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글을 열어 본다. 브런치 홈보다 브런치 나우인 이유는 어쩐지 글 사냥마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맡기고 싶지가 않아서이다.
그렇게 브런치 시작하고 5개월 넘도록, 대부분의 시간을 독자로 존재하고 있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3월 31일. 무서웠지만 첫 글을 올렸고 다른 작가님들의 방문이 있었다. 많이는 아니지만 처음 치곤 많은 작가님들이 다녀가 주셨다(포털이나 브런치홈 노출도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일진이 좋았던 듯하다). 그 작가님들을 하나하나 삑삑 눌러봤다. 그분들이 나중에 또 찾고 싶도록 하고 싶었고, 먼저 자리 잡고 계신 분들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도 궁금했다.
이때만 해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좋은 글을 쓰면 많이 오겠지!’ 이런 수준의 막연한 생각밖에는 없었다. 아니 그런데 누구는 이 생각 안 하나. 이걸로는 누구는 얼마 못 가서 그만두고 누구는 성공적 행보를 이어 나가는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다. 분명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듯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안아 주셨던 그분들한테서 그걸 찾아보고 싶었다.
역시나, 그분들께는 공통점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다들 훌륭한 작가이지만, 독자일 때는 진심으로 독자였다. 글을 쓸 때는 열심히 쓰지만 독자인 상황에서 그분들은 마음껏 독자였고, 한없이 독자였다. 어쩐지 잘 쓰시는 분일수록 더 그런 느낌이 들었고, 나에게는 이 하나의 사실이 아주 크게 다가왔다.
이것을 빨리 알게 되어 참 다행이다. 브런치 작가가 된다는 건 독자였다가 작가로 바뀌는 게 아니라 독자 위에 작가를 살짝 얹는 거구나. 그런데 서로 '작가님, 작가님' 하다가 그걸 자기도 모르게 잊어버리는 거구나. 이 작가라는 말이 처음 시작하는 사람을 묘한 식으로 망칠 수 있구나.
브런치 시작하고 3일도 안 되어 느꼈다. 읽는 사람은 적고 쓰는 사람은 많다는 걸. 그리고 기본적으로 글이 다수에게 노출되기 좋은 구조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브런치 작가는 다른 분의 글을 읽는 독자 역할도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를 위해서도 그게 좋지만, 그런 분들이 많아야 브런치도 오래가지 않을까 싶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아마 시작은 독자였을 것 같다. 시를 읽어 본 적 없는 사람이 "나는 시인이 될 거야." 이게 되진 않고, 작가 되고 싶은 마음의 출발점은 독자로서의 영감이었겠지. 그렇게 모든 작가는 원래 독자고, '독자→작가' 이게 아니라 '독자→독자+작가' 아닐까.
그 누구도 작가로서만 살아갈 수 없다. 작가(브런치 작가든 출간작가든)가 된다고 읽기가 쓰기로 바뀌는 게 아니고, 그 후에도 독자로서의 정체성은 영원히 그 사람을 따라다닌다고 믿는다. 많은 분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입성했다가 대부분 오래가지 못하는 건 어쩌면 그간 바라던 것을 드디어 얻어냈다는 기쁨에 매몰되어 중요한 뭔가를 잊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상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기만 작가인 것도 아닌데...
글 사냥. 이거 마음에 들어오는 글 하나 찾기도 쉽지 않다. 그 하나를 찾기까지 그렇지 않은 글을 수없이 열고 닫아야 한다. 어쩌다 찾으면 내 카톡으로 전송해서 수집하지만, 하루에 하나도 못 찾을 때도 있다.
이렇게 되니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글은 왜 그런지도 알고 싶었다. 감정과잉으로 느끼해서 읽기 힘든 글, 삶에서 얻어지는 교훈 없이 삶만 있는 글, 음식을 소재로 해서 '왔노라, 먹었노라, 맛있었노라' 이게 끝인 글, '이것만 알면~' 자극적 어그로를 끌지만 역시나 뻔한 얘기에 그치는 글, 읽는 사람을 계도와 훈육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글... 저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설명만 못할 뿐 내 본능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런 글만 쓰더라는 점이다. 그렇게 다시 찾지 않게 되는 작가가 하나둘씩 생겼고, 나 또한 글 쓸 때 피하고 싶은 모습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좋은 글이란 어떤 겁니까?
나도 모른다(에라이). 그런데 이걸 누가 알까? 좋은 글은 정의할 수 없고 다만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좋은 글이란 뭘까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런 생각은 고스란히 글 욕심으로 이어지고 쓰기에도 읽기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내가 독자 입장일 때 어떤 글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오지 못하고 겉돌다 튕겼는지를 기억하고 그 기억이 쌓여 갈수록 내 글도 어제보다 0.1%씩 나아지리라는 생각만 갖고 산다.
바라는 게 있다면, 차라리 잘 쓰지 못하는 작가는 되더라도 한 번 찾고 다시 찾지 않는 작가만은 되지 않고 싶다. 내 기준에서 작가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건 글감이 떨어졌을 때가 아니라 다시 찾지 않는 작가가 되었을 때이다. 그렇게 되면 암만 쓸 얘기가 많아도 끝이고, 뭐를 쓸지 어떻게 쓸지 그 고민은 아무리 빨라도 늦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최대한 많은 사람들한테 글이 노출되는 게 아니라, 글을 보고 나중에 다시 오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생기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대부분의 시간을 독자로서 존재하며 만들어진 생각이고, 독자로서 존재하는 90%의 시간이 작가로서 존재하는 10%를 지탱해 준 듯하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 봤는데 나에겐 이게 최적의 황금비율 같다. 어쩌면 그 때문에 내 글을 좀 덜 쓰게 되더라도, 독자로서 존재하는 그 시간이 나에겐 여러 이유로 소중하다.
자, 그럼 나는 또 간다.
얼마 남지 않은 추석 연휴 동안 마음껏 독자가 되러.
※ 글쓰기 전에 읽은 책 -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박민영 지음, 출판 샘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