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각 속의 너를 오늘 또 꺼내봤어

by 뉴새로미


머리가 크고 그때의 나와 J군을 생각하면 참 순수했구나 싶다. 손 잡는 것만으로 떨리고, 조금만 가까이 붙어 있기만 해도 심장이 덜그럭거리며 요동을 쳤으니까. 그때를 생각하다 보면 학교에 파릇파릇한 잔디, 곳곳에 솟아있는 민들레씨, 저마다 품에 안고 있는 바인더와 텍스트북, 잘 다려진 교복을 입고 다음 수업이 있는 교실로 걸어가는 친구들 이미지가 떠오르며 잠시 눈을 감고 순간적으로 그때 그곳으로 여행을 다녀온다. 다시 설레고 떨렸던, 풋풋한 그 순간으로. 그리고 내 추억의 중심엔 늘 J군이 있다. 머릿속에 학교 풍경이 그려지면서 내 눈이 마지막에 닿는 사람은 늘 J 군이었으니까.


오늘도 잊고 살던 J군과 그 반짝이던 시절의 나를 많이 떠올렸다. 지금 내가 많이 힘들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다시금 꺼내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이제 서른셋이 되었는데, 그 옛날 기억이 가장 행복했다고 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내가 지금 정말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 돼서 옛 기억을 이렇게 붙들고 사나 싶다. 여러 생각이 들면서도, 그때를 생각하고 있으면 그저 웃음이 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매일이 꿈만 같던 그때로. 내가 나였던 그때로.


정말 마지막으로 J군을 본 게, 방학식이 끝나고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피자집이었던 것 같다. 이제 너무 오래돼버려서 그 기억이 맞는지, 그때가 맞는지, 그곳이 맞는 건지 더듬더듬 기억을 꿰매듯 더듬어봐야 다시금 선명해진다. 지나온 시간만큼 또 이만큼 지워져버렸구나 싶어 가슴이 아프다. 기억이라는 게 영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추억이 되어도 내가 다시 그 기억의 조각들을 붙들고 있지 않으면 추억마저 되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마지막에 함께 가고 싶었던 불꽃놀이도 가지 못하고. 특별히 함께 따로 보낸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몇 달 뒤에 다시 만날 것처럼. 마치 다시 돌아올 것처럼 그렇게 헤어졌다. J군은 미국으로 그리고 나는 방학을 맞아 한국을 갔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J군이 없는 매일에 익숙해져 갔다. 첫 달은 학교에서 너무 힘들어서, 그동안 J군과 함께한 추억이 여기저기 학교 건물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어서. 하나씩 무뎌지게 하는 게 너무 슬프고 우울해서 몇 번이고 화장실엥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첫 몇 달은 자주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J군에게서 들리고, 내가 모르는 장소들,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을 해줬는데 점점 공감할 수 있는 게 없어졌다. 그렇게 좋아했는데,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거라는 게 그런 거였을까. 아니, 난 반대였던 것 같다. J군이 미국을 가고 나는 내 마음이 전보다 더 커져서, J군이 나 때문에 얽매여 있는 게 싫었고 또 한편으론 J군이 새로 만나 친구가 될 사람들에게 질투가 나기도 했다. 옆에 있을 수 있는 그 사람들이, J군 특유의 유머스러움에 즐거워할 그 사람들이. 다정한 J군의 앞으로의 시간 속에 함께 있을 그 사람들이 모두 너무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사랑하면 보내주라는 말, 어디 드라마에서나 들을만한 그 대사를 난 그때 이해를 했다.


메신저로도 용기가 안 나고, 전화로는 울다가 끝날 것 같아서. 천천히 이메일에 써 내려갔다. 요즘 말하는 쓰레기들의 이별을 내가 했었다. 이메일로 이별 선고를 하다니.

이메일을 썼다 지웠다를 수십 번 반복했다. 솔직히 말해 대성통곡을 하면서 썼던 기억이 난다. 한 글자 한 글자, 그렇게 꾹꾹 눌러서 무언가를 써 본기억이 이렇게 또렷하게 아직까지 남아있는 걸 보면 정말 내게는 지금까지 썼던 이메일 중 가장 힘든 이메일이 아니었을까.



“ 오빠 안녕. 이렇게 처음으로 오빠라고 적어보는 것 같네.

지금까지 내 남자친구로 지내줘서, 언니 대신에 나를 선택해 줘서. 너무 고마웠어.

내가 이런 성격으로 짜증 내고 괴롭히고 그랬는데도 항상 웃어주고, 좋아해 주고, 다정하게 대해줬던 거 다 말이야.

오빠 때문에 학교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상상도 못 할 거야.

내가 이렇게 이메일을 쓰는 이유는, 오빠가 앞으로 미국에서 정말 행복한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서.

내가 여기 있어서, 누군가를 만나게 됐는데 부담 갖거나, 괴로워하거나…. 그런 모습 보고 싶지 않아서.

나 그래서 이렇게 여기에 편지를 써. 전화로 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을 거 같아 미안해.

잘 지내. 항상 건강해. 그리고 너무 미안해.

너무너무 좋아했어 오빠. 앞으로 좋은 사람, 나보다 예쁘고 성격 좋고 그런 사람 만나길 바랄게.

안녕”



지금 그 내용을 되짚어 보자니, 이불킥을 새벽 내내 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그땐 내 마음을 다 담아서 표현하지 못해서.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붙잡고 늘어지고 싶었지만 멀리서 자주 만나지 못하면 결국엔 힘들게 헤어지게 될 거란걸 알았어서

저렇게 이메일을 보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 편으론, “너보다 좋은 사람 없다” 며 물고 늘어져 주길, 그러면 내가 참고 기다리고 멀리 있어도, 이기적인 여자친구 했었을지도 모르겠다.



목소리나, 말투나, 모든 게 전과 같았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 있다 보니, 우리가 같이 새로 만드는 기억이 없어지니, 공유할 것도 공감할 것도 없이. 서로의 이야기만 하면서 “우리”라는 관계가 희미해졌다.

그렇게 이메일을 보낸 후, 전화가 몇 번 왔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받지 못했었고, 그렇다고 메신저로 “전화 왜 했어”라고 하기에도 좀 그래서…. 그렇게 , 전화도 메신저도 모든 연락이 끊겼다.



그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더라도. “우리” 는 지금과 같았을까.

그 후로 조금이라도 “우리”가 있지 않았을까. 첫사랑은 왜 항상 이런 식일까. 후회만 되는 거 같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얗게 불태워 볼걸. 소심하게 남에게 양보하지 말걸. 함께 할 수 있다고, 믿고 기다리고 그래 볼 걸.

종종 꿈에 나오는 날이면, 그날은 센티해져서 다시 그 추억의 길을 걷는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다시 그때의 설렘을 떠 올리고 싶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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