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짝임을 더욱 빛나게 해 준 사람
해가 지나고 봄학기가 되고 따뜻해진 날씨 덕에 학교에서 여행을 갔다. 거의 이쯤에는 이별여행으로 생각했다.
봄이 지나고 여름학기를 끝으로 J군은 미국행이 정해져 있었으니까. 우리 둘은 노란색 스쿨버스에 나란히 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J군도 마지막 여행이었음을 알고 있어서인지 한껏 더 오버해서 웃긴 이야기들을 해댔다. 여행 내내 즐거웠지만, 고작 하루 만에 다녀온 여행이라 아쉽고 또 아쉬웠다.
새벽 6시에 학교 앞에 모여서 스쿨버스를 타고 2~3시간 걸리는 위치의 강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저으며 노는 액티비티였는데, 저녁이 돼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축축하게 젖은 머리와 옷 때문인지 몸이 무겁고 나른했다. 깜빡 졸고 일어났는데 많이 피곤했는지 J군도 곯아떨어져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보고 있었다. 그러다 J군이 눈을 뜨더니
" 어 뭐야 변태!" 하는 거다.
맨날 쳐다보면 변태 소리 자주 하긴 한다.
하지만 이때는 자고 있는 사람을 뚫어지게 보니 약간 그런 감이 없지 않긴 해서 멋쩍게 웃으면서
"코 골길래 본 거거든?" 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학교 주차장에 도착하고 하나 둘 버스에서 내리고,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학이 되기 전 늘 학교에서 이런 여행 같은 걸 갔어서 그런지, 괜히 이상하게 떠난다는 느낌이 확 들어서 살짝 울컥했다. 괜히 갑자기 울면 뻘쭘해질까 봐 급하게 나 먼저 버스에서 내려 미리 내린 언니들과 친구들 사이에 섞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버스를 등지고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J군 목소리가 들렸다. 다정하게 부르길래 돌아봤는데
진짜 짓궂은 미소를 띠고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 뭐 해! 일루 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고. 다른 친구들은 라이드 기다린다고 우리 주위에서 북적이고 있는데, 너무 울어버리면 창피할 거란 생각도 들었지만 멈추고 싶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성큼성큼 J군에게 다가가서 엉엉 울어버렸다.
J군 윗옷이 다 젖을 만큼 펑펑 울고 J군이 " 괜찮아, 진짜 우리 괜찮을 거야. 연락 자주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불안해해"라는 말에 한참을 더 울다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돌아섰다. 눈물로 희뿌옇게 보이는 시야에는 친구들과 언니가 나를 안쓰러운 듯 보고 있었고, 그 모습에 다시 한번 눈물이 터져 한쪽 팔로 눈을 가려버렸다.
주차장에 아빠의 차가 들어서고, 언니와 나는 바로 차에 올라탔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흐끅대는 내게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언니는 아빠에게 눈짓으로 상황을 알렸다. 아빠의 한숨이 차를 꽉 메우고 집에 도착해 씻고 자기 전까지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치며 J군의 부모님이 마음을 바꾸셔서 J군이 캐나다에서 졸업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또 빌었다.
아침에 퉁퉁 불은 눈을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더니 엄마가 한소리 했다 "어휴 눈 좀 봐라. 앞이 보이긴 하냐? 엄마랑 걔랑 물에 빠지면 누구 구할 거야!"
"엄마 수영 잘하지 않아? 아빠 완전 물개잖아, 아빠가 구해주겠지"
"새끼 키워봐야 소용없어..... 가서 얼른 씻어!! 눈곱 좀 떼고"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샤워를 하는데, 어제 다 흘렸다고 생각한 눈물이 또 나오는 거다. 홀딱 벗고 샤워기에서 흐르는 물을 그대로 맞으며 한참을 울었다. 결국 이 날은 학교를 못 갈 정도로 눈이 부어서 부모님이 학교 가지 말고 집에서 실컷 울고 내일은 눈 부어서 학교 못 가는 일 없게 하라고 하셔서 정말 원 없이 하루 종일 울었다. 스물이 되고 대학을 들어가고 중간에 방학이 돼서 엄마랑 시간을 많이 보내던 때에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그때의 나 어땠느냐고, 한심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었다. 그때 엄마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딱 할 수 있는 최고의 연애를 한 거잖아. 그거 보물이야 니 보물"
엄마 말이 맞았다. 그때의 나는 현재의 내게 보물이 되었다. 그 보물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했었더라면 이렇게 희미해져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참을 더듬어보지 않아도 알 텐데. 점점 희미해져 가는 내 보물 같은 기억들을 끝까지 잡고 놓지 않으려 자주 생각을 한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나도 대학을 가긴 가야 했기에, 입시 준비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뭔가 나도 대단한 사람이 돼서 더 좋은 여자 친구,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캐나다 밴쿠버에는 유명한 미대인 에밀리 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보다는 좀 더 큰 곳으로 가고 싶어서 목표를 미국에 있는 미대로 정했다. 미대라고 그림만 잘 그리면 들어가는 시대는 사라진 지 오래이기에 성적을 올리는데 집중해야만 해서 봄, 여름 내내 그림만 그리고 공부하는데 집중했다. 그렇게 우리의 매일이 특별한 일들 없이 흘러만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기 위해 열심히 한 거였는데 결국 이렇게 돼버릴 거였다면 그때 다른 결정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여름학기가 끝나갈 무렵, J군이 떠나기 3주 전 J군이 불꽃놀이를 보러 가자고 했다. 밤 10시쯤 잉글리시 베이에 도착해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불꽃놀이를 보러 가자는 거였다. 집에서 차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그런 곳이어서, 아빠의 라이드 도움 없이는 힘들었다. 지금이야 우버 타면 그만이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없었고 부모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럴 때라 더더욱. J군과 함께 보는 마지막 불꽃놀이가 될 거란 생각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가기로 약속을 잡아둔 상태였다. 분명 우리 부모님은 오픈마인드 이시니까 보내주시리라 믿었는데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위험해서.
일주일 뒤에 있을 불꽃놀이를 가겠다고 벌써 J군에게 말해둔 상태인데 부모님의 반대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안 보내주면 공부 안 하겠다, 밥을 안 먹겠다, 반항도 하고 울어도 봤지만 웬일인지 절대 안 된다고 난리를 쳐서 결국 일주일 내내 방에 처박혀서 나가지 않고 울기만 하다가 일주일을 보냈다. 불꽃놀이에 못 간다고 전화를 하는데 실망하는 J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 미안해서 목이 탁 막혔다.
"정말... 못가? 한 번만... 진짜 마지막인데... 준비한 것도 있는데"
지금도 생생한 그 목소리에 왠지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아 마음이 울렁인다.
"정말 미안해.. 부모님이 허락을 안 해주셔. 라이드 없이 못 나가잖아.... 진짜 미안해"
그날, 불꽃놀이에서 갔다면 우리 뭔가 달라졌을까? 그때 준비한 게 뭔지 지금도 궁금하다.
왠지 그때 불꽃놀이에 갔다면 각자의 길을 걷다 다시 그 끝은 우리가 만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본다.
결국 가지 못한 그 불꽃놀이를 마지막으로 우리의 마지막 여름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