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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Mar 23. 2024

30페이지 읽고 던져버린 책

앨리스 벡델, <당신 엄마 맞아?>

앨리스 벡델의 그래픽 노블 <당신 엄마 맞아?>를 읽다가 30페이지 정도 읽고 던져버렸다


이 책은 뭐랄까? 원래 작가의 스타일이 분석적이며 상호 텍스트성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으며, 그녀가 독자로 상정하는 부류들은 익히 그녀의 스타일에 친숙해져 있다는 가정하에 천천히 이루어져야 하는 그런 독서로 생각된다. 만화라고 하지만 압도적인 텍스트량과 맥락 속에서 이걸 소설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포스트모던 레즈비언의 애절한 자기 분석을 문학과 정신분석 텍스트 그 외 자신의 연인과 엄마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는데,


일단, 무척이나 지루하다는 것이고,

사건이란 시작조차 못하게 된다는 것이고,

자기혐오와 연민 또는 이성적인 척하면서도 자신의 과거의 경험과 기억들에 과하게 의존하면서 현재 자신을 형상화하려는 시도가, 뭐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에겐 쥐뿔도 관심 없을 수 있다는 것에 작가 역시 쥐뿔도 관심 없기에 이렇게 쓰인 게 아닌가 싶은 것.


글쎄 자기 자신을 효과적으로 전시하는 것은 퍼포먼스를 넘어서서 공감과 비약과 도약을 통해서 결국 자기 치료의 효과를 보여주며 그것이 충분히 납득되면 감동과 정서적인 환기력을 유지하게 되는데,


쓰고자 한 책을 결국 써 내려가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없고,

그녀가 제시하는 텍스트들이 적절한 효과를 거두고 있단 생각도 없고,

(도대체 인용한 작가를 질투하는 것인지, 그 작가들이 한 말들이 뼈여 사무치는 교훈인지 헷갈리게만 하는데, 전자의 경우라면 지면 낭비이고, 후자인 경우라면 다른 사건들의 전개를 암시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학술적‘인 엄격함을 담지하고 있지도 않고 오히려 문맥을 흐트러뜨리기만 하는 역효과를 낳고,

그래서 아 이런 이야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겠지, 나는 아니네, 하고 외면하게 만드는 그런 몽매한 접근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예술은 결국 하나의 인생의 경험과 상처를 하나씩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나열해 가면서 스토리 자체의 얼개를 구상하게 되는 하나의 수단이다.


자신의 삶과 문제 혹은 공부의 나열이 곧장 예술이 될 수도 없고, 예술은 그렇게 완성되지도 않는다.


하나의 작업이 삶 자체에 가지는 의미도 여전히 한정적이다.

하나의 방법론으로 닿은 세계가 있고, 그 방법론이 수단으로 고착화 되면 절대 닿을 수 없는 세계도 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편견을 갖게끔 만드는데, 일단 가족이라는 카테고리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괜한 의심을 사게 만들어, 현재의 형성된 자아에게 자꾸 과거의 어떤 기억이나 사건을 억측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회고와 재평가의 덫이 너무 많이 깔려 있다.


그런 것들 없이도 우리는 삶을 영위해 가는데, 자칫 그런 물음들을 던져보지 않은 사람들이 마치 잘못된 것인 양 쓸데없는 의문들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어떤 책이 지루하고 공감가지 않는다면 과감히 던져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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