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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Mar 26. 2024

설정과 세계관만 기억나는 아쉬운 소설

올가 라븐, <디 임플로이>

어느 가까운 미래, 인간과 인간형(안드로이드 또는 휴머노이드) 선원들을 태운 <6000호>는 <새로운 발견>에 도착해 “그 물체”를 만나 선내로 들여오고, “그 물체”들과 접촉한 <6000호>의 직원들은 정신적 감정적 변화를 거치게 되는데, 이 소설은 그 직원들의 인터뷰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이른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류의 목소리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 또는 인간형 직원들의 인터뷰들을 읽으며 우리는 거칠게나마 “그 물체”로 인해 인간과 인간형 모두 혼란을 겪으며 파국에 치닫고

그것들을 관리하는 AI 시스템에 의해서 곧 폐기될 예정이며 그 이후에 “그 물체”의 목소리가 에필로그로 삽입되는 형식이다. 맞나??      


여튼 거대 AI의 지배를 받으며 인간과 인간형이 동일한 목적에 종사하는 직원들일 뿐이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인간형이 더 인간적이며, 인간은 인간형에 가까운 점이 엿보이며, 그것들을 관장하는 AI의 역할이란 더없이 차갑게 느껴지면서 흐릿한 빅브라더 향기까지 엿보이는데, “그 물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떡밥처럼 던져진 이후에는 혼란과 실존적 기로의 자각에 선 여러 직원들의 목소리는 때로 중첩되고 때로는 혼란스러워서 쉽게 이해되는 산문으로 읽히지 않는다.      

          

때문에 작금의 사회에서 대체가능한 노동자의 실존에 대한 은유로 충분히 공감대는 불러일으키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파급력이 높진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일단 이 소설이 무대를 연상시키며 연극적인 속성이 높은 만큼, 독자들에게 인간과 인간형을 대표할 수 있는 10명 내외의 화자만 등장시켜 이들을 날짜별로 시간별로 관찰한 형태였다면 뭐랄까 플롯의 효율을 극대화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편의상 실험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보다는 같은 캐릭터를 통해 변화의 폭을 조절하는 게 더 부드럽게 읽히겠단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내용들은 중반부를 지나면서 뭐랄까 그게 그 소리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보다 친절한 방식을 택할 필요가 없었나 싶다.


한편으론 이런 닫힌 시스템에서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내적인 갈등 말고도 외적인 갈등이 더 필요하다. 뭐 SF전문이 아니어서 더 첨언하진 못하겠지만

개별 ‘목소리’ 보단 이야기의 구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진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 책은 그냥 실험극-소설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인간+인간형을 싸잡아 ‘직원’ VS ‘관리자 AI'라는 구도 하에서 둘을 동일시했다면,

관리자 AI라는 항에서 노출 비중을 높여야만 더 나은 이야기로 흐를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나른한 생각이 든다.


설정과 세계관의 참신함이 이야기의 만족스러운 결말과 닿지 못하는 경우 늘 아쉬움이 남는 그런 종류의 소설이다.


그리고 책 표지에 원문의 영역자 이름까지 표시되는 것 또한 새롭다.

세계 유수의 문학상에서 ‘번역자’의 역할과 위상이 갈수록 중요시되고 있다는 그런 반증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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