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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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하면서 한동안 소원했던 이름 폴 오스터, 나에게 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 폴 오스터, 그의 책을 오랜만에 들었다.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벽돌 같은 책이 꽂혀 있는 걸 발견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집어서 읽었는데 웬걸 이야기들이 술술 풀리더니 3.2에서 머리를 강타하고 3.4 이후에는 4.4로 넘겨서 읽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책 뒤에 헌사나, 광고성 문구들은 전혀 읽지 않고 첫 페이지를 들어가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한 인간의 삶의 4가지 버전이라는 사실을 1.3부터 강하게 느꼈지만, 보통의 순서처럼 읽어도 무방하단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는 4.4 5.4 6.4. 7.4를 먼저 읽으며 약간의 긴 감동의 시간을 갖고 다시 4.1 5.1 6.1. 7.1로 이어지고 4.3은 뭐랄까 3.3에서부터 예견되는 망설이는 독서였음을 부인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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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아치(볼트) 퍼거슨이라는 소년-청년의 청춘의 시기를 가족 구성원과 첫사랑 에이미를 중심으로 하되, 그 주변부 이야기를 조금씩 달리하면서, 50-60년대 삶, 특히 60년대의 혼란스러운 미국 유대인 중산층 사회를 뉴욕, 뉴어크를 중심으로 각각의 삶의 변화를 최대한 세밀하게 잡아내려고 하는 의지의 소산이다.
전부 조금씩 다르지만, 60년대 인종 충돌과 대학가 소요 사태, 정치적 격변, 베트남 전쟁 등이 펼쳐지면 그 자장 아래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정들 여러 대학 선택과 캠퍼스 생활 기숙사 친구들 그리고 중산층 주인공의 삶의 여러 세부들이 펼쳐지면서 퍼거슨이 자아실현을 위해 소년기에는 야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 그 이후로는 글쓰기의 다양한 영역(소설가, 기자, 번역가, 시인)을 탐구하다가 폴 오스터의 자전적인 요소인 프랑스에서의 삶의 부분을 각 퍼거슨이 각기 다른 시기에 공유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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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데이즈드 엔 컨퓨즈드>라는 영화의 톤으로, 역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라는 12년간 주인공이 실시간 성장하는 기록을 담은 그런 특별한 영화적 느낌을 폴 오스터가 텍스트에서 각각 4명의 퍼거슨을 통해 재현했다고 생각된다.
<데이즈드>는 90년대에 만들어진 70년대 대학 초년생들의 하릴없고 평범하지만 아련한 젊음이라면, <보이후드>에서는 아이에서 청년으로 변모하는 삶을 옆에서 기록하듯 담아냈는데, 중산층 가정의 소소한 행복과 위기들을 겪으며 ‘성장’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폴 오스터가 이러한 세계관을 통해 다시 한번 찬란하고 가슴 떨리는 청년의 삶을 여러 방식으로 시도하면서 그 시절을 독자의 손에 쥐어주고 싶은, 또는 자신이 그걸 아직도 염원하고 있음을 표출한다. 작가가 자신의 젊은 시기라고 생각하고 열정적으로 글쓰기를 했을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에 이 또한 감동을 주는 요소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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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특이한 만화책이 있었는데 몇 페이지에서 선택을 하면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고 또 책을 뒤집어서 반대로 읽기도 하면서 각각의 스토리상 중요한 기점에서의 선택에 따라 여러 갈래 이야기로 나눠지는 그런 책이 있었다. 따로 장르의 명칭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책의 방식의 유쾌함이 기억에 남는데,
폴 오스터는 그런 복잡한 방식은 아니지만, 4가지 버전의 소설에서 각기 다른 영역에 초점을 맞추며 퍼거슨의 삶의 총체성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한 듯 보인다. 해서 <4321>은 근래 읽었던 어떤 책들보다 다이내믹한 독서의 습관을 일깨워주었는데, 손목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침대에서 읽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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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는 나에게 <뉴욕 삼부작>으로 시작해서, <달의 궁전>, <우연의 음악>, <리바이어던>, <공중곡예사>, 그리고 <굶기의 예술>, 그리고 대학시절 읽었던 <고독의 발명>(내가 읽은 건 <아버지의 초상>이란 판본)을 끝으로 한동안 소원해진 작가였다.
초기작으로 기억하는 폴 오스터는 쿤데라만큼 철학적이거나 고전적이진 않지만, 언어에 대한 관심을 문학의 서브 장르-특히 탐정 추리물 들을 통해서 개성적인 인물을 던져놓고 그 상황에 집중하는 나름 실험적인 느낌의 소설가로 기억한다. 폴 오스터를 통해 “열린 책들”이란 출판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이 출판사는 “개미”를 팔아서 폴 오스터 같은 작가들 책을 내는구나 하면서…) 하지만 언제인가 하비 키에틀 영화의 원작 <스모크>를 기점으로 그의 책 대신 고전들로 관심이 쏠리면서, 꽤나 긴 공백이 찾아왔다. 예전의 상큼한 느낌보단 진부한 톤이 느껴졌기 때문인데…
이번 <4321> 역시 문체는 굉장히 평이하다. 형식적 실험은 유지하지만 뭐랄까 누구나 알고 겪어온 시대를 최대한 끌어 담으려는 노력이 느껴졌다고 할까, 때문에 부분 부분 실제 정치적-사회적 지평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단 생각들이 들긴 한다. 어찌 보면 소설가라기보다는 역사가-논평가의 느낌이 들었던 부분에서는 한없는 지루함이 생기기 마련.
하지만 <4321>의 제목처럼 4-3-2-1로 소급되면서 한 명의 퍼거슨은 실은 4명의 가능성이 모두 내재된 퍼거슨이란 사실은 나에게는 90년대 폴 오스터를 읽었던 시절의 젊은 나로 되돌아오면서(4-3-2-1-0), 책 읽는 내내 나의 유년과 청년 시절을 더 환기시키게 했다고 할까, 그래서 이 책의 독서의 특별한 점이 독자의 젊은 시절을 더 끌고 와서 소설의 일부로 엮어서 읽는 듯한 착각을 준다는 것이다. 즉 오스터의 퍼거슨과 나의 퍼거슨이 이 책 안 어느 부분에서는 찬란하게 공존하고 있고, 그렇게 각자의 강렬했던 시절의 기억들이 공유되는 독특한 독서 경험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 지점에서 성공적인 느낌이 이 책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소 긍정적으로 여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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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폴 오스터도 늙고, 노장 작가가 되었다. 그의 근작이 <바움가르트너> (정원사?) 발간되었고 이것 역시 곧 번역될 것 같다. 그의 나이 77, 하루키 나이가 75세이니 이들의 책을 읽은 나의 나이도 중년이 되었다. 하루키가 그의 근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자신의 아픈 자식과도 같은 미완성 중편을 다시금 세상에 내보이며 여전히 현실과 또 현실 어딘가의 세계를 가볍지만 진중한 태도로 탐색하고 있다면, 2017년에 쓰인 <4321>은 폴 오스터가 1960년대 젊음에 바치는 찬가와도 같은, 어떤 가능성으로도 찬란하게 빛나는 창조적인 삶, 자체를 찬양하는 그런 책이다. 이들 두 작가의 픽션으로 젊음의 일부를 구성했던 독자에겐 노작가의 투혼(?)과 열정이 감사하게 느껴지게 된다. 그렇게 여전히 삶은 이어지고 우리는 세계를 조금씩 중첩되는 다른 방식의 내러티브를 통해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