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브래드버리, <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시체>
원제가 <pillar of fire> 불기둥이란 뜻인데 이 단편에 등장하는 ‘소각로’를 의미할 듯
어느 날, 400년 전에 죽은 시체 렌트리가 깨어나보니 23XX 년의 시간대이며, 이미 40년 전부터 화성에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발전된 문명을 이룩했는데…
스스로 느끼기에도 분명 살아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하는 렌트리는 발전된 지구의 모습, 이를테면, 공포를 느끼지 않는 아이들, 거짓말할 줄 모르는 어른들, 에드거 앨런 포나, 러브크래프트 같은 고딕 작가들의 책이 모두 소각되어 버린 지구에 엄청난 증오를 느끼고 그 증오를 활용해 몇 백 년 만에 등장할 최초의 살인자-테러리스트가 되고자 한다…라는
너무 뻔뻔해서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는 대책 없는 레이 브래드버리 식 서사가 진행되는데, 증오가 먼저 생기는 죽은 자의 설정이란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야,라고 생각하고 억측으로 전개하는 브래드버리 할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아! 맞아 증오가 필요하지 아무렴 하면서 이야기 흐름에 수긍하게 되는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증오를 가지고 인간을 공격하는 살아있는 시체-좀비의 상투적 이미지를 이때 이미 완성했다고…
다 읽고 난 여운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화씨 451>의 구체적인 세계관이 이 단편에서도 묻어있는 듯해서 일관된 비판적 사고의 출발을 알리는 그런 단편
심플한 설정을 파고들어 자신의 세계관 속 장치들을 활용하고 그것을 통해 어느 정도의 비판적 성찰로 이어가게 하는 구라의 힘을 슬쩍 엿볼 수 있다.
40년대 작품이란 걸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