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포세, <샤이닝>
욘 포세의 <샤이닝>을 읽었다.
완전한 시간 낭비!
한 남자가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차를 몰고 아무 곳이나 운전하다가 결국 오도 가도 못하는 숲 속의 질척거리는 막다른 곳에 도착하게 된다.
후진할 수도 더 나아갈 수도 없는 곳에서 그는 한동안 차 안에서 엔진을 끄고 눈이 오는 것을 보고 있다가 결국 나가기로 마음먹는데, 오솔길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나와 눈 길을 걷다가 순백색의 존재와 마주하게 되고, 자신이 전혀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 빨리 이 길을 벗어나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윽고 그는 계속 가다가 바위 위에 걸터앉는데 이제 검은 양복을 입은 존재가 그 앞에 서고 그 옆에 어디엔가 순백색 형체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존재가 내민 손을 잡고 얼굴이 있을 부분에 텅 빈 공간이 있는 그를 따라나서자 순백색 형체가 그의 어깨를 사로잡음을 느끼고 곧 검은 양복을 입은 존재를 따라 허공 속으로 들어가는데 거기에 아버지-어머니가 있는 장소인 것도 같고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무의미 속으로 사라진다…
이 짧은 장편의 줄거리는 대략, 한 남자가 문득 삶으로부터 도피를 해서 막다른 숲에서 벗어나 눈 속을 걸어가다가 매우 피곤해짐을 느끼고 마침내 바위에 앉아서 서서히 체온이 떨어져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한 것처럼 보인다.
그게 다다.
줄거리를 요약하면서도 뭔가 속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고 그렇게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자의 환상이-희미한 상상과 공상의 과정이 그의 과거의 것들에서 아주 쬐금 연관된 것들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 외엔 아무런 환기력이 없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말이 너무 많고,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며 상황을 굉장히 과장하는 쪽으로 가고자 한다. 이 작가의 특징이자 스타일인데, 뭐랄까 굉장히 근본 없어 보이고, 효과도 미진해 보이고, 수사학적으로도 엄청나게 낭비적인 느낌인데, 욘 포세는 이런 진술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그 반복적인 스타일을 유지한다. 그게 무슨 작가적 숙명인것처럼... 해서 사태가 급박하게 진행되고 뭔가 엄청나게 심오한 얘기를 하는 것 같고, 그래서 그 사건들이 정말 큰 의미가 있을 것처럼 보여주기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 되짚어 보면 이러한 말들의 경제 따윈 무시한 체 떠벌리고 떠벌리는 소란스러움, 끝도없는 자기 의혹과 수다스러움이, 그 시끄러운 내적 데시벨의 크기가 심오한 인간의 존재적 의미와는 엄청나게 동떨어져 있음을 재확인할 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의 압축과 반복이 장기인 수사학적 소란스러움과 그가 이 수사학을 통해 이르고자 하는 '침묵', '사이'의 의미망이 도무지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건지 절대 모르겠다.
하물며 깊은 수준의 ‘의식의 흐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불확실하지만 뭔가 쓰고 있다는 성실한 노동의 흔적만을 나열하며 보여주기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어떤 사실적인 묘사나 장면을 정확히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는 없이, 주인공-화자의 극적인 심리상태만을 강하게 보여주며 나머지 부분의 해석은 독자들에게 툭 던져놓는 형태의 글이다.
그냥 얼어 죽게 놔두자. 이런 책들을 읽기 위해서 우리가 시간을 낭비할 순 없다.
기법적으로도 모자라고, 실존적 의미도 부족한 개인을 내세워서 뭔가 중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꾸미고 있다는게 좀 한심한 책.
얼어 죽기 전 보이는 세계 따위는 아주 일부만 봐도 그만이고 사건이 다 끝난 뒤에 요약해서 듣기에도 지루한 이야기다.
폰세의 장광설은 적어도 나에겐 관심 없는 묘사 방식이며, 너무 낡고 얕은 수법 같다.
같은 주제라도 더 치열하게 전통적인 구조에 생생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를 원하기 때문이다.
별 5개 중 1개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