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1987년였던 것 같다.
우리 집에 자가용이 없었던 시절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었고,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서 처음부터 앉아서 갈 수 없었다.
가는 동안 서서 아빠와 가위바위보도 하고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도 하며 놀았던 기억도 어렴풋하다.
방학때 부산 서면 할아버지 댁에 잠시 머물렀었다.
할아버지 집 대문에는 ㅇㅇ철학관이라는 작은 간판의 붙어있었다.
할아버지는 볼이 움푹 패어있고 옆으로 긴 눈 앙다문 입 웃음기 없는 얼굴에 머리엔 기름이 반질반질 빗자국대로 나란히 빗어져 있다.그리고 늘 진지하고 엄하시다. 할머니는 동글동글 하얀 파마머리에 주름진 얼굴 처진 입술을 하시고 낮에 신발공장에 일을 하러 가셨다. 그 처진 입술은 처음부터 처지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닌 그리고 항상 기름 재워서 김을 구워 두셨다. 할머니 김에는 요즘처럼 맛소금이 아닌 꽃소금 정도의 사이즈가 있어서 가끔 씹히는 맛이 있었고 그때는 몰랐지만, 생각해 보니 꼽꼽한 쩐내의향기도 나는 것 같다.
때로 낮엔 할아버지의 바둑 친구가 놀러 오셨는데,
마침 그날의 일이었다.
한참. 오빠와 나는 물구나무서기에 빠져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필 바둑을 두고 있던 주위에서 우리는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었고 대여섯 댄 여자아이가 잘 설 턱도 없을 것이다. 오빠가 다리를 잡아주고 베개를 받치고. 우리 두 남매는 깔깔거리며 물구나무를 서보겠다고 난리 법석을 치던 중
맙 소 사 퍽!”내 다리가 가서는 안될 곳으로 가버려 바둑판을 엎어버린 것이다.
“이노무 소상들이!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참 뒤 …해가 늬엇늬엇 지고 있었고…
동네 마루에 동네 사람 몇몇과 할아버지 오빠 나 몇몇이 앉아 있었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있었고 할머니는 아직 퇴근하기 전이였다. 넘어짐과 동시에 내 팔도같이 빠졌었는데, 한 손으로 빠진 팔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팔은 움직여지질 않았고 난 아프다고 아프다고 할아버지가 건드리기만 하면 난 침을 질질 흘리며 더 크게 울었다.
”만지지 마 만지지 마 “할아버지는 억센 손으로 내 팔을 잡고 막무가내로 어깨 위로 들어 올려 버렸다.
두둑 !
순간 신기하게 팔이 하나도 안 아픈 것이었다.
여섯 살짜리가 할아버지가 마법을 부리는 순간을 경험했다
”할배 이제 안 아프다“
순간 할아버지도 우쭐한 듯 스윽웃음기가 느껴진다.
나오던 눈물도 쏙 들어갔다.
우리 할배는 실로 대단한 사람이다 아직도 정정하시다.
더 늦기 전에 한번 찾아뵈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할배와 나도 국제시장에 갔던 기억이 있는데
아주 오래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