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지나 휴양지 후르가다로 왔다. 일행들이 지프 타고 사막관광을 간 동안 우리 부부는 후르가다 리조트에서 태양이 빛나는 하늘과 아름다운 바다에서 여유를 즐겼다. 사실 사막 지프 투어를 갈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몇 년 전 하와이 여행의 기억때문에 쉼을 선택했다. 이웃섬과 헬기투어 등으로 돌아다니느라 정작 하와이 해변과 바다를 즐기지 못했다. 귀국하는 날 오전에야 겨우 해변에 누워 반나절 시간을 보냈는데 정말 좋았다. 무척 아쉬웠었다. 바쁘게 다니는 여행도 좋지만 휴양지에서는 쉬어가는 게 정답이라 믿고 리조트에서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환상적인 이집트의 1월
한국은 눈 내리고 강추위로 고생한다는데, 세상 멋진 하늘아래에서 푸른 바다와 망고 주스를 즐기며 책을 읽고 있으니 천국이 여긴가 싶다. 해변을 따라 다양한 방갈로와 썬베드가 펼쳐져 있어서 유럽 투숙객들은 선탠에 푹 빠져있다. 햇빛이 그리운 유럽 관광객들에게 이집트의 태양과 하늘은 정말 최고의 선물인가 보다.
해변을 산책하고 조용한 리조트를 거닐며 흐드러지게 핀 수많은 꽃들의 아름다움과 한가로움을 즐겼다. 뷔페와 음료 무제한이라는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 리조트'의 서비스도 누리고 인생 샷도 남기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게 사는 맛인가 싶다.
남편이 수영을 즐기는 동안, 파란 하늘과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고 사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리조트 스태프들이 액티비티를 소개하며 호객하고 다닌다. K-pop을 좋아한다며 유쾌하게 웃는 친구, 북한과 남한을 비교하며 관심을 보이는 친구, 수줍게 팸플릿을 주며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어린 친구까지. 눈이 마주치는 투숙객에게는 어김없이 말을 걸며 안내하고 다닌다. 참 열심이다.
몇 년 전 남편과 크로아티아에 다녀왔는데 우리 부부가 버스에서 같이 앉아서 대화를 하고, 손을 잡고 다니는 게 신기하다는 분이 계셨다. 돌아와서는 남편이 친구들과 여행 이야기를 했더니, 한 친구가 여행 가서 부부싸움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고 했다. 우리는 '여행 중의 부부싸움은 쇼핑 때문이고 우린 쇼핑을 안 해서 평온한 거다'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이집트는 가는 곳마다 1달러를 외치며 물건을 파는 아이들과 상인들이 정말 많았다. 막상 물건을 구경하면 실제 부르는 가격은 훅 올라가서 물건 가격을 흥정하며 실랑이를 하기 일쑤였다. 한참을 흥정해서 몇 달러짜리 기념품을 싸게 사고 나면 뭔가 이룬 것 같은 뿌듯함에 나름 즐거움도 있었다. 명품 샵을 다니는 게 아니니 그렇게 사는 물건들이 부부 싸움의 이유가 될 리 만무하다.
ENTJ 아내와 IS?? 남편
외향적인 나와 전형적인 I의 내성적인 남편. 투어 하는 동안, 나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겠다고 가이드 바로 뒤에 열심히 붙어 다녔다. 조금 뒤처지면 바로 가이드 뒤로 따라가다 보니 항상 혼자 앞서 가게 된다. 한참 가다가 뒤돌아서 남편이 어디 있는지 찾기 일쑤라서, 투어 중에는 둘이 같이 다닐 일이 많이 없었다. 다른 일행들은 부부나 가족이 항상 같이 다니다 보니 우리가 신기해 보였나 보다. 늘 짝꿍을 어디에 두고 혼자 다니냐고 묻는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불평하거나 핀잔을 주지 않는다. 가이드를 뒤쫓아 열심히 가다가 뒤돌아 보면, 남편은 항상 나를 쳐다보고 있고 언제인지 내 뒤로 와 있었다.
그런 남편이 늘 고맙다.
가끔씩 남편이,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따라가는 내 뒤로 와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걸으면 새삼 가슴이 뛰기도 했다.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이런 거다. 워낙 말이 없는 남편이라 애정 표현은 기대하지 않고 살지만, 이런 사소한 행동에 마냥 행복하다. 말해야 알겠지 싶어서 "당신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걸으니 행복하네"하고 슬쩍 말해본다. 역시나 그냥 웃고 만다.
일출을 보며 다정한 남편을 불러본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일출을 보려고 바닷가로 나갔다. 바다 가까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싶었지만 구름이 끼어서 아쉽게도 해는 보지 못했다. 둘이 사진을 찍으며 붉게 물든 하늘을 감상했다. 생각보다 찬 바람에 숄을 여미며 사진을 찍다가 보니 옆에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에서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다른 부부들은 손잡고 다니며 서로 사진을 남기느라 바쁜데 나만 혼자 셀카를 찍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짜증이 났다. 남편에게 와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이미 많이 찍었는데 똑같은 걸 뭘 또 찍냐" 한다. 자기가 찍어 줄 테니 혼자 찍으란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그리 서운했는지 모르겠다.
후르가다에서 바라본 홍해의 아름다운 아침 일출
붉게 물든 바다가 환하게 밝아올수록 서운함도 커져갔다. 바닷바람이 차가워서 더 그랬다. 화가 난 채로 룸으로 돌아갔고 오전 내내 심드렁하게 있었다. 반잠수함 투어를 하고 돌아올 때까지 서운함이 풀리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좀 다정하게 해 주면 안 되냐" 하니 남편은 자기가 지금 얼마나 나를 위해주고 있는데 이해가 안 된다며 한 마디하고는 입을 다문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천천히 같이 가도 될 것을 혼자 내내 앞서 가고, 굳이 낯선 일행들이나 현지 가이드와 어울리려는 아내가 남편은 이해 안 될 수 있다. 그래도 한 마디 불평 없이 (평생 안 하던) 내 가방을 들고 다니며 항상 뒤에서 지켜주고 있는데, 나의 짜증이 뜬금없기도 하겠다 싶다. 모처럼의 여행을 망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화가 풀렸다. 그게 뭐라고.....
살다 보면 가끔은 다정한 남편이 필요할 때가 있다.
아름다운 이국적인 바다의 일출 앞에서,
눈물 나게 환상적인 하늘과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검붉게 물든 노을이 세상을 뒤덮어 숨죽이는 순간에도.
어깨에 팔을 두르며 다정하게 안아주는 남편이 그냥 세상의 전부이고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모든 것일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