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세월의 흐름이 남겨진 신전

by Giving


필레 신전 기둥에서 엿본 이집트 미술


이시스 여신을 모시던 필레신전은 아스완 댐을 건축하면서 수몰될 위기에 처했으나 약 60개 국가들의 도움으로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원래 신전이 있던 곳에서 위로 이동시킨 신전이다. 역사적으로는 프톨레마이어스 왕조에 건축되어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다. 신전에 도착하여 입구를 지나니 늘어선 기둥들의 풍경이 장관이었다. 그리스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기둥의 기단들의 모양이 내가 알고 있던 그리스 양식의 기단들과는 달랐다.

이집트 양식 (파피루스, 대추야자입, 페르시안 동물) vs. 그리스 양식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필레 신전에 들어서서 보이는 열주들은 이집트 양식 중 대추야자잎 모양의 기단으로 보였다. 재미있는 건 기둥의 모양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었다. 꽃잎 모양이 여러 개 둘러싼 기둥, 하나의 잎이 둘러싼 기둥 등이 있었는데 무엇보다 다른 것은 천장을 받친 기단 맨 위에는 하토르 (Hathor) 여신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가이드가 프톨레마이어스 왕조는 그리스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코린트식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리스식 기둥은 도리아 양식, 이오니아 양식, 코린트 양식이 있다. 뒤로 갈수록 장식이 많아져서 화려하다. 신전 내부의 기둥은 확실히 코린트 양식으로 보이는 기둥들이 늘어서 있었다.

하토르 여신은 보통 황소뿔과 태양의 머리장식을 쓰고 있는 여인으로 묘사되는데 필레신전에서는 출산과 바다의 여신으로서 물고기 귀를 가진 얼굴로 조각되어 있다.


대추야자 잎 모양의 이집트식 기둥 위에 하토르 여신의 얼굴이 보인다. 오른쪽은 신전 내부의 코린트 양식의 기둥들이다


왼쪽의 필레 신전의 내부 기둥과 오른쪽 카르낙 신전의 외부 열주의 기둥 모양을 보니 시대 흐름에 따른 건축양식의 변화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카르낙 신전은 신왕국 시대 (기원전 1550년 ~ 기원전 1077년) 제19왕조 람세스 왕이 건축을 시작하여 프톨레마이어스 왕조까지 오랜 시간 동안 건축된 최대 규모의 신전이다. 카르낙 신전의 열주는 제19왕조 때 건축되어 이집트의 전형적인 파피루스 양식의 기둥으로 세워졌다. 반면 필레 신전은 한참 후인 헬레니즘 시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기원전 332 ~ 기원전 30년)에 건축되어 코린트식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다. 이집트의 유적들은 신과 파라오들의 스토리도 매우 흥미롭지만 고대미술사 관점에서도 공부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왼쪽의 필레 신전의 내부 기둥 사진을 자세히 보면, 절단된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신전을 이전하기 위해 정교하게 기둥을 자른 후 일련번호를 붙여 이동시킨 후 복구한 역사적인 기록이다.


필레신전의 코린트식 기둥 vs. 카르낙 신전의 파피루스식 기둥


신전 내부에는 하토르 여신에게 봉헌하는 파라오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 벽화에는 어린 파라오에게 음식을 먹이는 하토르 여신이 있는데 얼굴이 심하게 손상되어 있다. 사랑과 출산의 여신인 하토로의 얼굴을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손길에 이렇게 손상이 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아부심벨에서 아스완까지 크루즈로 여행하면서 나일강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크루즈들이 줄지어 가면서 한가로이 떠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선상에 있는 수영장과 바 (bar)에서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과 서로 손 흔들며 인사도 나누고 선 베드에 누워 나일강의 바람에 몸을 맡겨두기도 했다. 나일강을 따라 줄지어 이동하는 크루즈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노을이 지는 나일강을 바라보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선상에서 한참을 있었는데 생각보다 바람이 차가워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선실로 내려와야 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하늘과 나일강의 푸른 물결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프랑스 세느강이나 한강보다 크루즈를 타고 여행한 나일강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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