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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Nov 20. 2023

6 기원과 영석

      

 기원이 아빠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한시도 요령을 피우는 일 없이 무식하리만큼 성실했다. 하라면 하라는대로,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알려주면 적어두었다가 혼자서 계속 되뇌이며 일했다. 정례는 같이 일하며 기원이 아빠의 사정도 알게 되었다. 돌봐줄 사람 없는 기원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채소가게에서 지내게 했다. 아들 영석과 기원은 매일 저녁식사를 같이 먹게 되었다.     


 정례의 채소가게는 점점 바빠졌다. 처음에는 서너명, 나중에는 열명 이상의 직원이 일하는 꽤나 큰 마트로 발전하게 되었다. 기원이 아빠는 성실성과 노력으로 정례네 채소가게의 매니저가 되었다. 나중에는 분점까지 내게 되었는데, 분점을 기원이 아빠가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기원이 아빠는 노력했다. 실수가 많아 남들보다 10배, 100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할머니가 기원이를 굶기지 말라고 했으니까 기원이 아빠는 열심히 일했다. 남들은 한 번 듣고 이해할 일도 일일이 메모해가며 열 번이고 백번이고 공부했다. 그런 기원이 아빠를 정례는 이해하고 기다려주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다 좋을 수는 없었다. 일도 구하고, 기원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정례가 많이 도와주고 있었지만, 정례의 아들 영석이 문제였다. 영석은 버릇이 없었다. 정례네 가게가 분점을 내기 전, 기원이 아빠가 일을 하고 있으면 영석이 나와서 엉덩이를 걷어찬다거나 팔을 세게 꼬집고 도망을 갔다.      

 그러나 기원이 아빠는 화낼 줄도 모르고 아파하며 배시시 웃곤 했다. 기원은 바보같은 자신의 아빠가 당하기만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어느 날은 기원이 아빠가 열무박스를 들고 있는데 영석이 기원이 아빠의 머리를 세게 잡아당겨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아주 크게 다칠뻔했다. 그 장면을 본 기원이가 순간 영석을 밀쳐 영석이 그만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아, 씨, 아프잖아! 엄마!! 엄마!! 으허헝!!”

 “뭐여, 왜! 바빠 죽겄고만 왜 불러싸!”

 “엄마, 기원이가 때렸다고!”

 “니가 또 아저씨 괴롭혔지? 이놈이 왜 자꾸 말썽질이여? 방에 가서 얌전히 좀 있어!”

 “엄마, 나 아프다고!”

 “이노무새끼가 엄마 바쁘다고 했냐, 안했냐. 일로 와, 이 새끼야!”

 “으아앙! 엄마는 왜 나랑 안 놀아주냐고오!”

 “시끄러! 이 자식아!”     


 정례는 영석의 조그만 등짝을 후려친다. 영석은 기원에게 밀쳐져서 아픈데 엄마가 달래주지 않고 오히려 더 때리자 억울해진다. 넘어져 앉은 채로,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이 불타듯 기원이 아빠와 기원을 번갈아 째려보고 있다.      

 “사, 사장님. 기, 기원이가 때린 거 마, 맞아요. 죄송해요. 제가 기원이 호, 혼낼께요. 기원이 이리 와.”

 “영석이가 먼저 아빠 괴롭혔어요. 아줌마, 영석이가 맨날 아빠 괴롭혀요.”

 “기, 기원이 누가 어른한테 그렇게 사, 사납게 말해. 그러면 못써. 빨리 여, 영석이한테 미안하다고 사, 사과해. 얼른.”

 “싫어. 왜 맨날 아빠는 영석이가 괴롭히는데 가만히 있어?”

 “기, 기원아. 니가 여, 영석이 밀친건 맞잖아. 사, 사람 때리면 안되는거야. 얼른 사과해.”

 “......”

 “아유, 됐어. 나 혜지네식당 다녀올테니까 이거 정리해 놓고. 영석이 너는 엄마 갖다와서 이따 저녁에 봐. 아주 혼나야돼 너는.”     


 영석은 엄마조차 자신의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르자, 어린 마음이 찢기는 것 같았다. 영석은 끝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기, 기원아, 오, 오늘은 저녁밥 사서 아, 아빠랑 먹자. 미, 미안해.”

 “아빠는 바보야? 왜 맨날 미안하데?”

 “그냥 미안. 우, 울지마 아가. 아, 아빠 괜찮아. 영석이랑 친하게 지, 지내.”     


 기원은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빠가 불쌍했다. 기원은 아빠를 닮은 작고 뽀얀 손으로 아빠를 꼭 안아주었다. 아까 넘어지면서 아빠의 머리카락에 붙은 마른 무청을 얇은 손가락으로 떼어주었다. 나중에 커서 돈을 많이 벌어 꼭 아빠를 놀게 하고 싶었다.     


 방문틈 사이로 영석의 칼같은 작은 눈이 그들을 보고 있었다. 영석은 세상에 혼자 버려진 기분이었다.          


        




 25살, 기원이 아빠가 이곳에 왔던 나이가 된 영석과 기원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기원은 아빠와 둘이 20평 작은 아파트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엄마는 없었지만, 기원의 깔끔하고 꼼꼼한 성격은 살림을 맡아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남자 둘이 사는 집이었지만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기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게일을 배워볼 생각이었지만, 아빠의 고집에 못이겨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대단한 학교는 아니었지만, 장학금을 노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등록금과 용돈을 벌어볼 요량으로 꾸준히 아르바이트도 하며, 가게일도 도우면서 아빠에게 물려받은 성실함으로 인생을 채우고 있었다.     


 영석은 대학에 가지 않았다. 중, 고등학교 때도 학교에 가는 날은 며칠 되지 않았다. 정례의 노력으로 그나마 고등학교는 겨우 졸업했지만 하는 일 없이 집에서 기원이 아빠를 괴롭히는게 일이라면 일이었다.


 “야.”

 “어, 그래, 여, 영석아.”

 “야. 복숭아 좀 갖고 와.”

 “어, 그래. 아저씨 이것만 하, 하고.”

 “아이씨. 모자란게 말을 안 들어.”

 “......”     


 정례는 한쪽에서 통화를 하다가 끊고 소리를 지른다.     


 “야! 이 새끼가, 아저씨한테 자꾸 반말 할래? 싸가지 없는 놈!”

 “아, 뭐어!”

 “아저씨한테 존댓말 쓰라고 했지! 니가 양아치 새끼냐? 나이쳐먹고 아직도 그런 짓을 하고 앉았냐!”

 “아, 됐다고. 씨발.”     


 영석은 팩하고 일어나 금고에서 오만원짜리 몇 장을 꺼내 대충 슬리퍼를 신고 나가버린다.      


 “야! 너 어디가! 놀거면 일이나 도우라고 이 새끼야! 아이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네. 저 자식을 어떡하면 좋아.”

 “아줌마, 이거 어디에 놓을까요?”

 “어, 기원아. 영석이가 너만 하면 얼마나 좋으까나. 아줌마가 속이 터진다, 터져. 저기 옆에다 놔줘.”

 “네.”     


 정례는 영석과 비교되는 모습의 기원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나, 장사는 잘 되는데 자식농사는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원은 오늘도 아빠와 다정히 이야기를 나눈다. 아르바이트 다녀와서 어딜 같이 가자고 말하는 것 같다. 저런 다정함은 어디서 나올까. 나는 아들에게 저렇게 대해준 적이 있었나. 바쁘다고 애한테 신경을 못 써서 그런가, 하지만 나도 힘들었다고.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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