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조무사 박사님

치과 어디에나 있지만 흔치 않은

by 따바라중독자


학교 졸업 전, 나는 교수님의 추천으로 운좋게도 면허 취득과 동시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치과 냄새, 병원의 분위기는 내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자격을 부여받은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릴새라, 가만히 눈을 돌려 병원 전체를 관찰했다.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아, 대기실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서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 좁은 곳이 마치 대학병원처럼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 왔는데요."


뽀얀 얼굴, 동그란 안경을 쓰고 쌍꺼풀이 진했다. 그분은 단단히 팔짱을 낀 손을 풀더니 이력서를 달라는 듯 아무런 말도 없이 손바닥을 보이며 허공에 탁탁 흔들고 있었다. 내 이력서는 사납게 흔들리던 그분의 손에 얌전히 올려졌다. 그분이 이력서를 꺼내며 무표정으로 안경너머의 나를 흘끗 보았다. 가운데 손가락으로 안경을 슬쩍 들어 올리더니 이력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


초면에 반말까지? 그래도 나는 사회초년생이니까,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시키는대로 했다. 진료실을 지나 원장님 방을 향해 갔다. 설거지를 하시던 선배님이 갑자기 돌아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짙은 밤색 문을 열고 들어간 원장님의 방은 숨이 막히게 좁았다. 출입문 바로 앞에 소파가 놓여져있고, 건너편에는 낡은 원목책상이 있었다. 책상 앞 책장에는 책들이 두서없이 가득 꽂혀 곧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책상 앞에 앉아계시던 잘생기고 자상한 얼굴의 원장님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저기 안경 쓴 애드너스는 이번 달까지 하고 그만둘 거야. 그러니까 안심해요. 나머지는 모두 같은 학교 출신 선배님이야. 언제부터 일할 수 있을까?"


데스크에 있는 애드너스? 간호조무사였다. 간호학원 1년 다닌 간호조무사는 데스크에서 맘대로 내 이력서를 보고, 대학 3년 전공한 치과위생사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어린 객기에 내가 무엇이나 된 줄 알았건만, 눈앞의 현실에 실망이 적잖이 컸다. 그만둘것이니 안심하라는 말도 마음에 걸렸다. 이번 달까지는 어쨌거나 안심하지 못할 거라는 뜻이 아닌가. 그래도 나는 출근하기로 했다. 이번 달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참아보자는 마음과 날보며 방긋 웃어주던 선배의 순수한 미소에 반했던 것이다.


출근 첫날,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쏟아지는 환자를 보며 어정쩡하게 내가 할일을 찾고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이 애드너스님이 나를 갑자기 기공실로 불렀다. 야, 이리 와 봐. 이런. "야."라니. 껌만 안 씹고 있었다 뿐이지, 이것은 누가 봐도 기싸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젊었다. 짧은 속눈썹이지만 꼼꼼히 바른 마스카라상태도 오늘 마음에 들거니와 심지어 아이라이너도 했단 말이다.


"왜요?"

"그냥 오라면 와!"


조금이라도 빨리 진료실을 파악해야할 때 기공실로 나를 부른 이유는 인상체에 석고를 부어보라는 것이었다. (*인상체 : 환자가 치아 보철 치료를 할 때 아를 본뜬 모형. 인상체에 석고를 부어 굳히면 환자의 치아형태가 복사되어 환자 없이도 보철물을 제작할 수 있다.) 지금은 기술이 좋아져 치아 본을 뜰 때 스캔을 하거나 변형이 없는 재료를 사용하니 치과에서 석고를 부을 일이 많이 없다. 그러나 22년 전, 그 당시만 해도 알지네이트를 주로 사용했다. (*알지네이트 : 변형 위험이 있어 빨리 석고를 부어놓아야만 하는 인상 재료)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 나는 기분이 매우 나빠졌고, 싫은데요. 내가 왜 언니 앞에서 석고를 부어요? 라며 거부했다. 그리곤 기공실을 나와버렸다. 내 뒤통수에 대고 다양한 억양과 종류의 말을 했던 것 같으나 기억은 안 난다. 그 뒤로도 사사건건 나를 불러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입바른 소리를 해댔더랬다. 선배들은 너무 착한 사람들이었다. 이분의 기싸움과 거짓말을 매일 겪고 있었지만 그러려니 지내는 터였다. 그런데 쪼끄만게 들어와서 적에 맞서 싸우니, 은근히 나를 지지해 주었다.


흔치 않지만 종종 발견된다는 조무사 박사님이 여기 계셨다. 치과에 간식이 들어오면 아무런 양해도 없이 자기 물건 찾아가듯 혼자서 모조리 다 챙겨가기 일쑤였다. 선배들은 하루이틀이 아니라는 식의 포기로 대응했다. 나는 그런 모습이 너무 얄미워서, 가져가지 못하도록 받는 즉시 케이크나 과일을 죄다 자르고 분해하여 원장님과 기공실에 나눠주었다. 치과위생사들은 다 일하고 있는데, 본인은 대선배 실장이나 되는 듯 데스크에 주로 있었다. 자기 일도 마치지 않은 채 젠체하며 수납과 설명을 했다. 환자들에게 틀린 정보를 제공하며.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이번달의 끝에 다다렀다. 그분이 퇴직 후 나는 선배 언니들과 내 뒤에 들어온 신입 동기와 함께 다시없을 재미난 직장생활을 했다. 제 시간에 끝나는 날이 없고 환자도 많아 신체적으로는 많이 힘들었지만 우리는 매일 웃었다. 서로의 농담코드가 찰떡같이 잘 맞았다. 매일같이 맛있는 것도 같이 나눠먹었다. 점심마다 어깨동무하고 산책을 나갔다. 몇 달 후 들은 소문으로는 퇴직한 조무사 박사님이 선배 언니의 이름과 면허를 사칭하고 다닌다고 했다. 언니는 지겨운 듯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다.


간호조무사라는 직종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으며, 모든 간호조무사가 그런 것도 더더욱 아니다. 그 후 만났던 많은 간호조무사들은 곧 등장할 '부라리'만 제외하고는 다 성실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저런 이상한 사람이 하필 간호조무사였던 것일 뿐. 그리고 내가 처음 만난 간호조무사가 하필 저런 사람이었다.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나를 깨닫게 하는 인생의 선배처럼 생각되는 동생들도 있었다.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은 어느 직종이나 있기 마련이다.


분은 내게 사회생활 실습 무료 강의를 몸소 실감 나게 해 주고 떠났다. 좀처럼 없어 보이는 행동들을 몸소 알려주고 가신 간호조무사 박사님, 사칭따위 하지 말고 잘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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