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치과에서는 일반 진료 이외에 '노인무료의치사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 '노인무료의치사업'은 보건소에서 65세 이상의의료급여(기초생활수급자 등) 어르신을 대상으로 위, 아래 틀니와 *틀니지대치 크라운 (*틀니지대치 크라운 : 부분틀니의 고정 고리가 걸리게 되는 치아를 완전히 싸는 치료. 틀니가 안착될 수 있도록 홈이 파인 형태로 디자인된다.) 6개까지 환자분이 무료로 치료를 받으실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원장님들은 치료가 끝나면 정해진 치료비보다 훨씬 적은 돈을 보건소에서 받게 되지만 그래도 삶이 팍팍하여 치과치료가 힘든 어르신들에게는 꼭 필요하다. 매년 겨울에서 봄 사이에 어르신 댁과 가깝거나 어르신이 지정하신 치과로 두세분씩 배정이 된다.
2년 전, 박 할아버지 역시 노인무료의치사업 대상자로 우리 병원에 처음 오시게 되었다. 옛날 분이시지만 키도 크시고 항상 깔끔한 모습으로 방문하셨다. 귀도 잘 들리시고, 걸음걸이도 꼿꼿하시고, 말도 별로 없으신 데다가 인사만 드려도 수줍게 웃으셨다. 우리들에게 항상 친절하고 예의 있게 대해주셨다. 무난한 환자분들은 치료 역시 무난하게 진행이 되곤 한다. 아무런 문제 없이 치료가 잘 마무리되었다. 박 할아버지 역시 그랬다.
박 할아버지는 틀니 적응 과정도 참 무난하게 지나가셨다. 틀니 완성 후 한두 번만 오시고 내원하지 않으셨다. (보통 완성된 틀니를 착용하시면 여러 번 오셔서 아픈 부분의 틀니 내면을 조금씩 깎아내며 적응하신다.) 우리도 한참 다른 환자분들을 만나며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어? 아버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병원 자동문 앞에 아버님이 서 계셨다. 문이 열리고 인사를 드렸는데도 그날따라 웃음기도 없으시고 한숨만 쉬셨다. 아마도 약주를 한 잔 하신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섣불리 접수해드릴게요, 말씀을 못 드리겠다.
"혹시... 광주사태 알랑가? 알지?"
점잖게 존대하시던 그 모습과는 영 다르게 물어오셨다. 예, 알고 있어요.
"푸우...... 내가.... 광주에서, 내가..... 그런 짓을 하고도... 이렇게 나만... 나만.... 잘 먹고살자고.... 좋은 혜택을 다 보고.... 흐흐 흐흑..."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어가셨다.
"내가... 내가 사람을 그렇게... 죽이고도... 흐흐흑... 내가... 그런 짓을 하고도... 나라에서 나한테.... 잘했다고 틀니도 해주고.... 내가 사람을 수십 명을.... 죽였는데 잘했다고...... 허흐흑... 나는... 스물일곱 살이었어... 그 죄 없는 사람들... 내가 그렇게 하고.... 내가 하루도.... 흐흐 흐흑..."
달력을 보니, 그날은 5월 18일이었다. 그 현장에서 군인으로 계셨던 것 같다. 27살이면 어린 나이 아닌가. 부모가 되어보니 이십대는 어른이 아니다. 몸만 커진 어린애일 뿐. 그런 어린애가 갑자기 나가 사람 죽이라는 명령에 복종해야 했던 것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힘든 시간이었을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리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서만 안타까워할 줄만 알았지, 또 다른 편에서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죄책감에 잠도 편히 잘 수 없었던 청년은 그렇게 나이가 들어 지금 이곳, 시골의 한 치과에서 만난 지 두어 달 밖에 되지 않은 우리들 앞에서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역사가 개인에게 떠넘겨 버린 슬픔, 그 속에서 스물일곱 청년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5월 18일마다 울고 울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새 틀니가 생기고 맛있는 음식들을 드시게 되면서 죄책감이 더욱 무거워졌을 것이다. 그렇게 가슴을 뜯으며 우시다가 순간 정신이 드셨는지 눈물을 닦으며 아, 아이고 미안해요. 내가 주책을 부렸네. 하시며 급히 나가버리셨다.
그 후 박 할아버지는 치과에 오지 않으신다. 전화를 드려도 받지 않으신다. 그날 우리 치과에서 마음의 무게를 1그램이라도 줄이고 가신 거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오늘도 우리는 묵묵히 할 일을 한다.
사진출처 : 언스플래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