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의 현장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by 따바라중독자

의료관계자는 1년에 한 번씩 여러 가지 의무교육을 들어야만 한다. 그중 아동학대신고의무자교육이 있는데 작은 병원이라서 다들 모여 동영상을 보며 교육을 이행하는 단체사진을 찍고 보건소에 신고하게 된다.

이번에도 역시 연중행사인 '동영상 화면 보며 단체 옆모습 사진 찍기'를 했다. 이번에는 작년과는 달리 중간 부분을 보게 되었는데 영상 속 학대당하는 연기자 아이의 모습이었다. 문득 과거 치과에 왔었던 남매가 생각난다.




환자가 많은 병원이었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이 많았다. 의사 선생님, 교수님부터 바닥에 앉아 상추와 부추를 파시는, 사시사철 때 묻은 주황 패딩점퍼를 걸치고 오시는 어르신까지.

모처럼 환자가 뜸하던 어느 날, 계단 아래에서 시끌시끌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조금 후에 한 젊은 엄마가 오랫동안 씻지 않은 모습으로 남매를 데리고 누구를 계속 혼내면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야!!!! 손잡지 말랬지!!!! 죽인다 진짜!!! 저리 안 가? 확 씨 xxx이 죽일 거야!!!"


엄마보다 더 더러운 아이들. 여자아이는 10살쯤, 남자아이는 5살쯤 되어 보였다. 30대로 보이는 몸집이 큰 젊은 엄마는 아이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과 험한 말들을 내뱉으며 그 작은 남자아이를 마구 때리는 것이다. 얼마나 씻지 않았는지 치과에 들어오면서부터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유, 그러지 마세요, 엄마를 말려본다. 조금은 잠잠해진다. 그나마 병원 말은 들으신다.


엄마가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었다. 아이를 봐줄 곳이 없으니 데리고 왔겠지만 잠시도 아이들에게 소리치지 않는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아이들은 이런 것들이 일상인지, 울지도 않았다. 더욱 놀란 것은, 이런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어린 딸아이가 보호자인양 엄마의 진료 접수를 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치료를 받는 동안 아이들은 쥐죽은 듯 있었다. 미안하지만 숨을 참고 나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작은 아이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안쓰러운 건, 기껏해야 10살이나 되었을 여자아이가 그런 말을 엄마에게 듣고도 지나치게 밝은 목소리로 엄마가 많이 아프다고 했어요, 치료 잘 해주세요, 하며 어른스럽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치료가 끝난 엄마가 나오자 아까 맞았던 작은 아이는 엄마를 부르지만 무서운지 엄마에게 다가가지는 못한다. 돌아오는 건 자기를 부르지 말라는 말과 욕이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받는, 깊고 무조건적인 사랑은 신이 어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저런 엄마라도 해도 아이는 엄마를 사랑하는구나. 화가 났다. 그날은 그렇게 그들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고 또 계단 아래가 시끌시끌하다. 그 엄마가 역시나 아이들에게 소리치며 치과에 올라오고 있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엄마가 남자아이의 뺨을 때리니 작은 아이가 소파로 날아간다.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달려 나가 아이를 안아 올렸다. 계절에 맞지 않는 파란 티셔츠에는 땀과 온갖 얼룩이 떡져 있었고 얼굴은 눈물에 콧물에 때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냄새가 심했지만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어머니! 그만하세요! 왜 아이를 때리세요!"

"아니 얘가 말을 안 들어요. 오라고 해도 안 오고 말을 안 들으니까..."

"애들은 원래 말 안 들어요. 말 안 듣는다고 때려야 하는 건 아니에요!"


엄마의 치료 접수를 하던 딸아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아니, 뭔가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달까. 그렇게 욕 듣고 맞고 사는 일이 여태껏 잘못된 건지도 몰랐다는 듯.


나는 얼굴이 꼬질한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데려가 세수부터 시켰다. 뽀얗고 예쁜 얼굴이 온갖 때 속에 숨어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치료가 끝날 때까지 안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른 환자가 없는 시간이었다. 아이는 잠자코 안겨있었다. 이리 와, 딸아이도 내 옆에 바짝 붙여 앉혔다. 냄새가 심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그냥 안아주고 싶었다.




시간은 흐르고 여러 달이 지나 바쁘게 환자를 보며 지내던 날이었다. 익숙한 소란스러움이 계단 밑에서 들려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자아이의 목소리도 크게 들린다.


"김**이요."

지나치게 밝고 상냥하게 엄마를 걱정하던 그 여자아이는 사뭇 다른 아이처럼 냉정하게 엄마 이름만을 뱉어내고 의자에 앉아버렸다. 풀 죽어있던 남자아이는 어딘가 어수선하다. 젊은 엄마는 역시나 아이들을 향해 욕을 멈추지 않는다. 접수하고 소파에 앉아 아무 말 없던 여자아이가 엄마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 진짜 그만 좀 하라고!!!!! 짜증나진짜 xx!!!"


!!!!


하지만 여자아이가 저런 행동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보살펴야할 사람인 '엄마'가 오히려 아이들을 때리고 욕을 했다. 그 남매의 스트레스를 누가 헤아렸겠으며, 또 누가 그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었겠는가. 지금이야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지만, 19년 전 그 당시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던 것이 아동학대였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볼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었다.




"사진 하나 더 찍어야 돼요. 다들 모니터 보시고, 찰칵!"


우리는 매년 무심히 사진을 찍고 서류를 보낸다. 이런 쓸데없는 걸 귀찮게 왜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아동학대의 현장을 직접 치과 안에서 목격했던 나는, 실제 상황이 생겼을 때 병원에 있는 사람이 법적으로 신고의무자가 되어 정당하게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른다.


김혜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아이는 꽃으로도 때리면 안된다고. 어떻게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할 수가 있는가. 어떻게 아이한테 그런 말을 하는가. 지금은 성인이 되었을 그때의 남매, 너희를 기억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미안해하는 어른도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 기억이 아주 작은 힘이라도 된다면 좋겠다.



작은 힘이라도 된다면.



사진출처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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