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롱이

날지 않는 새

by 따바라중독자

※ 치과 내에는 원칙적으로 동물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시골 치과라서 약간의 융통성이 허용되며, 다른 환자분이 한분도 없었다는 점, 새의 방문 후 치과 내 방역을 실시한 점을 미리 밝힙니다.



예약이 비워져 있던 한가한 오후, 한 부부가 치과에 들어섰다. 아주머니는 접수를 하고, 아저씨는 소파로 바로 앉으셨다. 접수증을 받아 접수를 하고 진료 전 전신상태 문진을 하러 다가갔는데 아저씨 어깨 위에 형광 연두색의 조그마한 앵무새가 앉아있었다. 까만 눈에 손바닥보다도 작은 새, 이렇게 작은 앵무새도 있구나.





"어멋~! 아버님 어깨에 새를 데리고 오셨네요~"

"어~ 내 자식이여 허허."

"이렇게 데리고 다니실 수가 있어요? 새인데 안 날아가요?"

"어~ 얘는 안 날어. 새장에 가둔 적도 없는데 내 어깨에만 있어."

뭘 좀 아는 새인가 보다. 순간 동물을 싫어하는 원장님이 뭐라고 하실지 기대가 되었다. 보나 마나 펄쩍펄쩍 뛰며

'나가나가요! 안돼! 새 오면 못 봐!!'

그러시겠지?


"얘는 나한테는 안 와. 아저씨한테만 가지. 이거 봐, 호롱아, 호롱아, 내가 불러도 안 와."

"호롱아, 안녕~"

앵무새에게 말을 건네자 신기하게도 알아듣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보고 도망가지 않는 동물을 가까이서 만나는 것은 기쁘고 설레는 일이다. 그러더니 아저씨 팔을 따라 슬슬 걸어내려간다. 아니, 뭐 새가 걸어 다녀? 하핫.


"아버님, 얘는 걸어 다니네요?"

"어~ 얘는 안 날고 걸어 다녀. 어디 아픈 것 같지도 않은데 이렇게 걸어 다니데."


호롱이는 점점 아저씨 손을 향해 걸어내려가더니 아저씨 다리로 폴짝 내려간다. 도도도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아저씨 바지를 두 발로 움켜잡고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더니 이윽고 대기실 바닥에 안착한다.


"어머 얘 좀 봐. 너 새잖아. 날아가면 되지. 왜 걸어 다녀~"

"아이고, 호롱이 똥 쌌네. 저기 미안해요. 화장지나 물티슈 있어요? 아이고 미안해. 내가 얼른 닦을게."


싸려고 바닥까지 내려온 건가? 정말 똑똑한 새다. 아저씨께 물티슈를 건네고, 우리는 곧 환자로 방문하신 아주머님의 진료를 위해 진료실에 들어갔다. 아저씨가 호롱이의 뒤처리를 하는 동안 호롱이는 다시 아저씨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걸어서.


원장님은 여느 때와 같이 진료를 시작하였다. 아저씨는 슬그머니 아주머님의 치료 내용을 듣기 위해 원장님 근처로 다가서고 있었다. 우리는 원장님이 놀라실까 봐 미리 귀에 대고 속삭였다.


"원장님, 아저씨 어깨 위에 새 있는데 날지는 않는데요."

"뭐어~!!!!! 나가나가요! 안돼! 새 오면 못 봐!!"


예상 적중. 원장님은 아주머님도 진료 안된다며 가시라고 했다. 새 놓고 오라고. 하하핫.


"원장님, 새가 아버님만 따른다는데 아버님 나가 계시라고 할게요. 진료 보셔도 괜찮지 않으세요?"

"안돼!! 새 놓고 와야 돼!! 못 봐!!! 안돼!!!"


딱복을 외치던 우렁찬 목소리로(브런치북 [그 해, 우리 치과에서는] '시고르멤버스' 중) '안돼'를 외치던 원장님은 얼른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저렇게도 싫으실까.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다행히 부부는 원장님의 소란에 언짢아하지 않으시고 웃으시며 알았다고 하셨고, 호롱이는 아저씨 어깨 위에서 니네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갸우뚱거렸다. 부부는 치과를 나서고 우리는 방역활동을 했다.


우리 치과를 방문했던 생물들(대파, 미나리, 깻잎, 열무, 복숭아, 감자, 수박, 딸기, 사과, 배, 샤인 머스캣, 단감, 파리, 벌, 등에, 이름 모를 화분의 벌레) 중 단연 일등의 존재감이었던 호롱이는 아저씨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자유롭게 날 수 있지만 좋아하는 걷는 인간을 위해 스스로 걷기를 선택한 호롱이.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소중한 사람을 위해 나의 일부를 포기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나 남편을 위해, 내 사람들을 위해 내가 행하고 있는 것들이 정말 그들을 위한 희생인 걸까? 걷는 작은 새 한 마리는 내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갔다. 내가 이기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무심코 살아가는 내가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도 모르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살피며 살라고 알려주었다.




사진출처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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