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구직을 하던 과거의 나는 마음에 드는 곳을 찾다가 옆 지역으로까지 눈을 넓히게 되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이제 막 건물을 지어 가게들이 하나둘씩 입점을 하는 신시가지였는데 벌써 이 동네만 세 번째 방문이다. 아직은 임대한다는 표지가 붙은 곳이 많았지만 젊은 개원치과들은 막 생기는 중이었다.
이번엔 여자 원장님이었다. 골목이 비슷하여 헤매던 나는 조금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나보다 어린 원장님은 당차고 씩씩해 보였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듯한 모습이었다.
원장님은 본인이 어떻게 이곳에서 개원하게 되었는지, 언제쯤 인테리어가 끝나고 어떤 식으로 치과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는지 계획을 말씀하셨다. 명확하고 똑 부러진 인상 그대로 계획이 다 있는 듯했다. 나는 내가 묻지 않고도 술술 이어가는 이 원장님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보통 실장 면접은 개원 치과 면접이기에 원장님들조차 서툴고 뭘 이야기할지 몰라서 머뭇거리시기도 하여 내가 먼저 병원의 비전이나 시스템에 대해 묻기도 한다. 그런데 이분은 달랐다.
"앞으로 2년 안에 매출을 **% 달성하고 직원은 *명 더 채용할 계획이에요. 근처 아파트 젊은 아기 엄마들 위주로 홍보할 거고요. 그리고 5년 후에는 병원을 좀 더 확장할 거예요."
비전이 확실한 원장님을 도와 이 치과를 잘 이끌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질문이 훅 들어왔다.
"이력서 보니까 청구를 잘하실 것 같은데, 청구 문제 몇개 내봐도 될까요? *초진이고 타의원에서 임플란트를 심으신 분이 *픽스처가 깨져서 왔는데 이걸 제거하고 *소파할 거예요. 어떻게 청구하시겠어요?"
"동요도가 없다면 *트레핀 버를 사용하실 것이니, *임플란트 제거술 복잡으로 청구하겠습니다."
"틀렸어요. 다른 부가적인 설명 없이 제거하고 소파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답이 나오죠? 그리고 소파까지 하면 *조직유도재생술하고 *임플란트제거술도 해야죠."
* 초진 : 우리 병원에 처음 방문하신 환자분
* 픽스처 : 임플란트 구조 중 뼈에 심어지는 부분
* 소파 : 염증이나 기타 조직물을 긁어냄
* 트레핀 버 : 픽스처를 통째로 뽑아내는 작은 기구
* 조직유도재생술 : 치아를 뽑기 전 치주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예후를 기대해볼 수 있는 잇몸에 치유를 유도하는 시술. 보통 여러번의 잇몸치료 (전처치) 후에 시행된다.
* 임플란트 제거술 : 기존 임플란트를 치아를 뽑듯 제거하는 수술. 일반기구로 뽑히면 '간단', 트레핀 버를 이용하면 '복잡'으로 구분한다.
초진환자를 같은 날 치아가 없는 부위에 전처치도 없이 치주 항목인 조직유도재생술을 하다니? 아.. 이 분 위험한 분이다. 오만이랄까, 자신감과 불법을 혼동하고 계시다. 저런 식으로 직원을 대하고, 저 정도의 지식으로 과잉청구를 일삼는다면 나중에 벌금을 어떻게 내시려고? 내 의식의 흐름이 한번에 와장창 깨졌다. 더는 이 원장님과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이미 자기주장이 강해 보여(이런 사람들은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다.) 나는 틀리다 맞다 이야기 없이 듣기만 하다가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청구 문제에서 통과를 못했으니(?) 나는 탈락이었을 것이고, 행여 오라는 연락이 와도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2일 후 연락이 왔다. 전혀 아쉽지가 않은 거절의 문자였다.
'원장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이 면접에서 가장 소름 돋고 감명 깊었던 명장면은 마음에 없는 소리를 너무나 잘 해낸 내 모습이었다.
사진 출처 : 언스플래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