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때문에 그만 두겠습니다.

번아웃

by 따바라중독자

L 치과는 참으로 멋진 곳이었다. 통유리창에 럭셔리함을 갖추고 숲 속 유리의 성처럼 한적한 동네속에 숨어 있었다. 내가 처음 상담실장으로 근무했고, 힘들어서 번아웃이 되어 나와버린 그 곳은 애증의 치과였다.


나는 멋진 옷을 입고, 슬리퍼가 아닌 구두를 신고, 무전기를 귀에 꼽았다. 내 스스로가 그렇게 멋져 보였던 적은 없었다. 딱 내가 그리던 모습이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고가의 커피머신과 카페로도 손색이 없는 대기실, 감각적인 작품이 걸린 갤러리같은 진료실, '어이'나 '아가씨'가 아닌 '실장님'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보안창에 지문을 찍으며 하는 아침의 출근, 나만 쓰는 방과 컴퓨터, 초빙된 개그맨이 사회를 보고, 핑거푸드를 먹으며 치과 한켠에 마련된 무대에서 가수의 공연을 관람하던 오픈식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1년 동안 그곳에서 나는, 바쁘고 신나고 속상했다. 재미있었고 많이 배웠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겪으며 사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나는 결국 그곳을 퇴사하고 말았는데 세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점심시간도 없이 2시까지 일해야 했던 평범한 토요일이었다. 예약표를 가득 채운 환자를 마치고 나니 2시가 넘었고, 우리는 병원에서 치킨을 시켜먹기로 했다. 한창 에너지가 넘칠 20대 후배 3명과 30대 2명은 치킨 3마리를 시켰다.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나는 원장실로 불려갔다. 원장님은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 '5인의 식사로 치킨을 3마리나' 시켜먹은게 죄였다. 뒤이어 노무사가 내려와 한 끼 식사는 6천원으로 제한하라고 했다. 그당시 백반을 먹어도 7천원이었다.


한번은 후배들이 쉴 때 과자를 먹고 있었는데 원장님이 갑자기 문을 열더니 하는 말, 내 돈으로 쓰레기를 먹고 있네, 한 적도 있었다. 그 때의 모멸감이란...... 나는 가끔 직원들에게 사비로 간식이나 커피를 사곤 하는데 바로 이 '실장님 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한 계기였다. 치사했다. 힘들게 일하는 직원들 식사로 치킨 몇 조각 넉넉히 들어가는게 그렇게도 꼴보기 싫을 일인가.


원 아웃이다.




2


병원의 유니폼은 치마유니폼이었다. 진료 시 다리를 오므린 다소곳한 상태로만 유지할 수가 없는 치과위생사가 치마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적당하지 않았으나, 그곳은 효율적인 동선이나 합리적인 디자인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곳이었다. 일의 동선도 모조리 무시되고, 사람도 공간도 그저 예쁘고 보기에 좋으면 그만이었다. 그 짧은 치마를 입고 스켈링하려고 앉으면 속옷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지나다니며 후배들 다리에 담요를 덮어주기 바빴다. 심지어 재질도 별로였는지 유니폼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옷을 1년 가까이 입었더니 유니폼이 헤지기 시작했고, 작업복으로 입기에는 치마가 짧아 속이 다 보이는 불편한 점도 있어 유니폼을 사달라고 했다. 나는 상황에 비해 넘치는 거절을 당했다. 직원을 사람으로 생각은 하는 것인가. 우리는 인형인가.


투 아웃이다.





3



첫째아이는 병원 바로 옆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가까워서 퇴근하고 데리고 가기가 좋았다. 어느 날 저녁 퇴근하고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애한테서 심상치 않은 냄새가 났다. 집에 데리고 가 확인을 하고선 나는 아이를 씻기며 울어버렸다.


팬티를 버야 했다. 정작 순수한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에 나는 너무나, 너무나 미안했다. 아이는 겨우 7살이었다. 누구 하나 신경써주는 사람 없이 저녁까지 말도 못하고 얼마나 찝찝했을까.. 나는 나쁜 엄마였다. 정말 미안하고 서러웠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내가 내 아이를 이렇게까지 방치하면서 돈을 버는게 무슨 소용인지 다 의미 없었다.


다음 날 나는 사직서를 냈다. 오만정이 다 떨어지고 병원의 화려한 겉모습에 취했던 내 자신이 한심했다. 몸에 지나치게 딱 맞는 정장은 지금 당장이라도 찢어버리고 싶었고, 반짝이는 구두도 벗어 던져버리고 싶었다.


원장님은 니가 여길 나가서 이만한 월급을 받을 수 있겠냐, 생활을 할 수는 있겠냐며 무시했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높은 연봉도 아니었다.) 누가 뭐라 하든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어제 저녁 내 아이의 모습이 그동안의 이곳생활에 지친 내게 트리거가 되었다. 나는 일에 대한 모든 의욕을 잃었다. 그것은 번아웃이었다.





병원을 그만두고 나서 나는 첫째의 간식도 해주고, 입학식도 가고,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갔다가 그네도 태워주었다. 나는 평화로운 백수가 되었다. 또 부족한 살림이 되겠지만 그래도 낮시간에 아이랑 함께 있을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모른다.


나의 이상은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지금도 같은 동네라 그 치과 앞으로 지나칠 때가 있다. 예전처럼의 그 럭셔리함은 많이 퇴색되어 이제는 일반 치과처럼 보인다. 그것은 건물이 나이들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동안 마음 속 껍데기만 있던 자신감을 남김없이 부수어 없애버렸나보다. 이미 가루로 만들어 깨끗이 털어내 버렸나보다.





사진 출처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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