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치과는 *인수 치과(*인수 치과 : 개원하려는 치과의사가 기존에 존재하는 치과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모든 기구와 직원, 환자 등을 그대로 인수받아 진료하는 것)였다. 시골 면내에 위치한 이곳은 실장을 새로 구하는 중이었다. 인수 치과에서 실장을 왜 새로 구할까? 약간 의심스러운 마음은 있었지만, 시내와 가까운 시골이라서 차로 출퇴근하기에 힘들지는 않을 정도의 거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야간 진료가 없어서 나는 면접을 보기로 했다.
들어서자마자 대기실 한가운데 기둥이 떡 하니 가로막고 있는 특이한 구조의 치과였다. 들어서자마자 답답함이 밀려왔다. 시골병원과는 어울리지 않게 1층은 대기실, 2층 계단으로 올라가면 진료실이 있는 구조였다. 한 발 딛기도 힘든 어르신이 많은 동네임을 고려하지 않은 동선이었다.
원장님은 '공부만' 잘하게 생긴 학생 같은 외모였다. 나이는 나와 같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과도 같은 해에 같은 학교를 졸업한, 이름과 얼굴 정도만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오지라퍼에 인싸인 남편과 안 친했던 사람이었다면 그때 나의 의심에 대한 확신을 가졌어야 했다.) 면접은 수월하게 진행되었고, 바로 출근하기로 했다.
나는 직업을 잘못 선택한 건지 가는 곳마다 청소가 시급했다. 이렇게 청소하고 다닐 거면 치과위생사가 아닌 청소 이모가 되었어야 했다. 출근하여 치위생사실을 가기 위해 대기실 뒤편으로 가보니, 수년 전부터 쌓아놓은 환자의 *접수증(*접수증 : 병원에 처음 온 환자가 인적사항을 적는 종이. 받아서 접수 후 바로 폐기해야 한다.)들이 박스에 담겨, '어서 와라. 청소이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하는 듯 먼지를 쓰고 있었고, 반대편에는 원장님이 쌓아놓은 온갖 병원 물품부터 인수 때 받아서 대충 쑤셔 박아 놓은 온갖 서류와 물건들이 쌓여 곧 끝나가는 위태위태한 테트리스를 보는 듯했다.
출근.
D+2
환자가 없을 때마다 청소와 정리를 했다. 한겨울에 창문을 활짝 열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테트리스를 제대로 맞추었다. 방 하나가 새로 생겼다. 접수증과 옷 가지가 쌓여있던 곳에서는 세면대와 거울이 나왔다. 유물을 발굴하는 분들은 이런 기분일까?
D+3
원장님은 새 사람이 왔으니 회식을 하자며 장소를 알아봐 달라고 하셨다. 우리는 기존 직원의 친구가 한다는 횟집을 회식장소로 정하기로 했다. 원장님께 말씀드렸다. **횟집 어떠세요?
"예, 뭐. 알겠습니다."
D+4
내 생일이다. 친해지기도 전에 갑자기 케이크를 사 와서 원장님이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러준다. 상품권도 건네신다. 고맙긴 한데 부... 부담스러웠다.
D+6
병원이 춥다며 플리스를 주셨다. 원장님은 직원들이 추운 게 싫다며 겨울에는 꼭 따뜻하게 있으라고 하신다. 직원 복지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고. 자상... 한 건가? 직원들 표정을 보니, 뭔가 영 찜찜하다.
D+7
아침 9:10, 실장님 잠깐 보죠.
그 횟집 어디죠? 왜 거기로 결정했죠?
**동 **가게 옆입니다. 알아서 하라고 하셔서 그랬습니다. 다른 곳으로 변경할까요?
아뇨. 근데 실장님이 결정했어요?
네, **선생님 친구가 사장님이래요. 그래서 가보기로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오전 10:20, 실장님 잠깐 올라오죠.
횟집 장소 말인데요. 실장님이 결정했다고요?
네. 왜...? 다른 장소로 할까요?
아뇨. 근데 거기를 가기로 하는 결정을 실장님이 하는 게 맞나요?
?? 원장님께서 장소를 찾아보라고 말씀하셨어요.
네. 근데 결정하는 일을 실장님이 했잖아요.
?? 그래서 원장님께 그 장소 어떠시냐 여쭤봤습니다.
알겠어요.
??
오전 11:36, 실장님 잠깐.
회식 장소 같은 모든 결정을 실장님이 하시나요?
아까 말씀드렸는데요.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장소를 찾아보겠습니다.
그 말을 왜 그때 했죠?
???
환자있을 때 말했잖아요.
환자있을 때 물어보셨어요.
장소를 거기로 한 이유가 뭐죠?
??? **선생 친구가 그 가게 오픈했데요. 팔아주면 좋잖아요.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오전 12:40, 실장님 올라오세요.
내가 지금 너무 화가 나는데,
왜 화가 나셨어요?
그 횟집을 그렇게 결정하고 말하면 내가 너무... 지금 참고는 있어요.
????
거기로 가자고 하니까 가긴 하는데 그러지 마세요.
???? 어떤 부분을...?
나가세요.
선생들, 원장님 왜 화난 거예요?
원래 저래요. 왜 삐진 건지 아무도 몰라요. 맨날 저래요.
심지어 데스크에 마침 나와계시던 사모님도 모르시겠단다.
오후 2:45, 실장님 잠깐.
내가 이해하기로 하고 회식 장소는 거기로 하도록 하세요.
?????... 네.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 예약해놓겠습니다.
처음 경험해보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본인이 사장님인데 결정을 내가 했다고 생각해서 화가 난 건가? 회를 화가 날 정도로 싫어하나? 겨우 회식 장소 하나 가지고 하루 종일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사장님이라... 다른 건 안 봐도 뻔하다. 탈락.
D+23
실장님 올라오세요. 보험 청구하실 때 중복분 제거를 하시는데...
제가 (원장님이 너무 속이 좁아 나의 참을성이) 부족한 것 같으니 그만두겠습니다. 다음 주까지 하고 나가겠습니다.
원장님의 표정은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는 듯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얼굴이 하얗게 상기되고 어버버 말을 잇지 못하고 계셨다. 그러게 왜 그랬어요, 어색하게 생일 케이크 노래하고 겨울에 플리스 사 입힌다고 복지가 아니라구요, 직원들 표정을 좀 봐요, 라는 말은 차마 못 했다.
결국 나는 청소만 해주고 한 달 만에 그곳을 나와버렸다.
수많은 원장님들은 착각하신다. 직원들이 본인의 치과가 아니면 일할 곳이 없을 거라고, 열심히 하는 직원은 그만두지 않을 거라고, 자신이 직원을 뽑는 거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편의점보다 많다는 개인 치과에서 출근 개시 후에 이곳에 마음을 붙이고 다닐지 말지는 직원의 일이다. 면접에서도 원장님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닌, 고용하고 싶고 일하고 싶다는 의지가 서로 일치해야만 이 계약이 성사된다는 것을 쉽게 잊으시는 듯하다.
P치과는 지금도 몇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구인란에 올라온다. 이 정도면 구인 신문 정기결제를 하실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이다. '상식이 적당한 선'에서 이해할 것은 이해하고, 배려할 것은 배려하며, 참아줄 것은 참아주면 좋겠다. 사장님이든 직원님이든 그 선을 넘으면 가차 없는 세상이다.
사진 출처 : 언스플래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