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이 원장님

물가에 내놓은 아기 닥터

by 따바라중독자

하루 종일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온 치과에 가득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매일 같은 CCM이 흘러나왔고 대표원장님은 항상 건치를 훤하게 뽐내시며 웃으셨다. 아이를 키워야 해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곳인데 나의 사정을 다 봐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난 종교가 없지만 교회 노래쯤이야, 같이 부르면서 일하면 되지 뭐가 문제겠는가. 반야심경이 플레이되었어도 ASMR이라 생각하면 될 것인데.



대표원장님은 아이들도 참 잘 키워내셨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페이닥터를 두 명이나 고용하셨다. 대표원장님은 주 3일 정도만 근무를 하셨던 것 같다. 대신 공백은 페이닥터들이 그 병원을 책임지고 있었다. 주 3일 근무라... 워킹맘의 입장에서, 대표원장님이 살짝 부러웠다.


두 명의 페이닥터는 성격이 서로 달랐다. 한분은 할 말도 하시고 약간 불만도 있는(?) 분이었는데, 다른 분은 키도 크고 잘생긴 외모에 말도 없고 순했다. 나이가 들어 이제 웬만한 페이닥터들은 나보다 어리다. 이분들도 나보다 어린 분들이었는데, 이십 대의 순둥한 페이 원장님은 물가에 내놓은 자식 같은 느낌마저 들 지경이었다.


어느 날은 검진 환자가 내원을 했다. 나는 순둥이 원장님의 어시스트를 맡게 되었다.


"어... 어...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 진짜요? 조금 검은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아니, 다시 봐봐요. 환자도 검다잖아요. 이럴 땐 다시 보는 척이라도 해서 뭐라도 발견해봐요! 그냥 봐도 충치가 대여섯 개는 보이는데! 최소 300만 원인데! 잘생긴 얼굴로 아무 말이라도 하라구요!

환자 앞이라 말은 못 하겠고 어떻게 말해야 눈치껏 알아들으실까 머리를 굴렸다.

"저..기 원장님, 검진 다 하신 건가요? '다시' 안 보셔도 될까요?"

"넹."


콧구멍까지 내려간 안경을 쓱 올리며 맹하게 대답하신다. 하... 여기서 수련하고 개원하신다면서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시나 걱정이 되었다.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를 제공하고 매출도 올리셔야 할 텐데. 어쩔라그래.


"원장님, 혹시 환자분 파노라마(치아 전체가 나오는 방사선 사진) 찍어볼까요?"

"아녀. 저 다 봤는데여......"



아...... 눈치 되게 없어...... 잘생겼으니 봐줄게요. 환자와 매출,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셨다. 주님의 자비로 대표원장님이 이 사실을 모르게 하소서. 가만, 종교 없는 사람의 기도도 들어주시나?



어김없이 주님을 다시 만나겠다는 의지가 힘차게 울려 퍼지는 한가한 오후였다. 진료실 안 휴게실 같은 기구 세척실에 모여 앉아 다이어트 얘기, 피부관리샵 얘기, 자식들 얘기들로 여자들의 공기가 가득했다. 이렇게 잠깐씩 환자가 없는 시간에는 수다는 수다대로, 손은 손대로 할 일을 한다. 멸균할 거즈를 정리하거나, 바늘에 실을 꿰어 놓거나(요즘은 보통 일체형을 사용하니 이런 작업을 할 필요가 없지만, 예전 방법을 고수하시는 곳에서는 병원용 실과 바늘을 따로 구매하여 일일이 꿰어놓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알코올 솜을 만들어 두거나 한다.


한참 떠들고 있는데 문 앞에 슬그머니 누군가의 안경이 반짝거린다.

"뭐... 하세영? 저도 할까여?"

"원장님 심심하세요? 해보시고 싶으시면 하셔도 되죠~"


순둥이 원장님은 우리들 옆에 끼어 다소곳이 앉아 큰 손으로 조그만 바늘을 잡고 실을 꿰었다. 혼자만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치위생사들과 나란히 잡일을 하고 있는 착한 원장님. 아들이 이렇게 순하면 어머님은 세상에 아이를 내보내기 걱정되실 것 같았다. 거센 환자들도 많을 텐데. 잘 이겨내셔야 할 텐데. 같이 잡일을 하며 알게 되었는데 다행히 아내분이 야무지고 조금 무서우시다고.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나 보다.




점심식사 시간, 두 분의 원장님이 식사를 하러 나가신다.

"원장님, 오늘 뭐 드세요?"

"김치찌개여."

"오왕 맛있으시겠다. 오실 때 맛있는 거 사 오실 거죠?"


외치자, 한분은 쌩 나가버리시고 순둥이 원장님은 넹~ 하며 가볍게 인사하고 가신다. 저런 말은 직원 입장에서 의미 없이 숨 쉬듯 내뱉는 말이라 말하는 사람도 큰 기대를 안 하며, 듣는 원장님도 신경 쓰지 않는 말이다. 물론 커피라도 한 잔 사다주신다면 감사하지만 아니어도 서로 별 것이 아닌.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들어오신 순둥이 원장님의 손에는 큰 상자가 하나 들려있다. 이 병원에 1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예쁘고 아기자기한 파이가 들어있었다. 괜히 미안했다. 그 파이집은 차를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빵곰언니와 호두파이공장


잘생기고 순수한 원장님은 페이 생활을 마치면 대전으로 가서 개원하신다고 했다. 지금은 이름조차 생각이 나질 않지만 아들 가진 엄마 마음으로 병원이 잘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진출처 : 언스플래쉬, 빵곰언니와 호두파이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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