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부자 2

꽃 속으로 찰방찰방 떨어지셨군요.

by 따바라중독자

4. 총체적 문제, 데스크와 진료 시스템까지

대기실은 앉을 자리도 없이 점점 미어터지는 중이었다. 데스크 역시 일을 참 두서없이 하고 있었다.


"사무장님, 환자 차트는 프로그램에 어차피 입력하니까 출력만 하시면 돼요. 수기로 다 쓰실 필요 없어요."

"아, 그게 차트가 휘어져서요."


차트가 휘어져? 그걸 핑계라고. 접히는 것도 아니고 살짝 휘어지는 거, 펴면 되지.


"펴시면 되죠.ㅎㅎ 쉽게 하세요. 힘드시잖아요."

"아, 그렇게 안 해봐가지고."

"제가 차트 출력 설정할게요."

"괜찮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서성거리는 환자분들을 보세요. 사무장님이 괜찮아할 상황이 아니지 않나요? 답답함의 극치구나. 차트에 이름과 주소를 볼펜 잡고 작성할 시간에 환자를 한 분 더 보겠어요. 치과일이 처음이시면 제안을 들어보기라도 하세요. 환자분들은 모르겠지. 큰 규모의 병원이 밀리면 잘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치과는 아니다.


예약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매 환자마다 대기시간이 30분 이상 길어진다면 치과 내 시스템이 잘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환자에 비해 직원과 유니트의 수가 적거나, 예상 밖으로 길어지는 진료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매 환자마다, 올 때마다 두세시간씩 기다린다는 것은 분명 진료회전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내 치료내용에 병원 사람들이 서로 관심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치료는 무엇을 할지 치료진행의 전후상황, 특이사항 등은 그때그때 차트에 최대한 자세히 적어야 어떤 직원이 그 환자를 담당하더라도 진료가 매끄럽게 진행된다. 빨리 해드릴 것은 해드리고, 미리 사진을 찍어둔다든지, 원장님이 굳이 오시지 않아도 되는 상황도 있어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치료와 더불어 환자분의 시간을 아껴드릴 수가 있다.


옆에 서있던 연예인보다 더 예쁜 코디 선생이 속삭이듯 말한다.


"저 되게 답답해요. 실장님 말씀대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저희 일계표(일별 환자와 매출을 적은 표)도 다 손으로 써요. 그러느라 맨날 집에도 늦게 가요. 이런 것도 다 프로그램에 있는 거 아니에요?"

"다 있죠. 선생 참 똑똑하네. 여긴 참 이상해요. 대표원장님부터가 일을 어떻게 하면 힘들게 해 볼까 노력하는 것 같아요."



5. 8일째 되는 날


그날 아침에도 역시 환자가 많았다. 이렇게 환자가 많은 이유는 환자 하나를 1시간 넘게 상담을 하니 정작 원장님의 할일인 진료를 볼 수가 없고, 아무런 명목없이 치료비용을 반으로 후려쳐 버리고 진료는 뒷전인 대표원장님 때문이었다. 차량을 운행하여 시골에서 어르신들을 단체로 모시고 오기도 했다. (그러면 안된다.) 어르신들은 싸면 오니까. 그 속내가 어떤지도 모르고.

사실 대표원장님은 실력이 참......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지인이라면 절대 오지 말라고 할 곳이었다. 원장님의 직업윤리는, 직원으로서 해당 치과에서 일을 이어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여기에 오신 환자분들이 적게 기다리면서 치료를 받고는 가실 수 있게끔 시스템에 기름칠을 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으니, 그날도 숨어있는 직원들을 찾아내고 환자들과 후배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김실장! 지금 뭐 하는 거야!"


뭘 뭐 하는 거예요. 환자들 얼른 진료 보실 수 있게 교통정리 중이잖아요.


"가서 임시치아나 깎아!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임시치아 되게 좋아하신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임시치아를 깎으러 이곳에 온 것이 아니란 말이다. 임시치아를 깎을 사람들은 10명이나 있다. 이 난장판에서 나의 임무는 교통정리와 상담이지, 임시치아 깎기가 아니라고! 후배들 앞에서 망신을 주려는 속셈이다. 환자앞에서 싸우기 싫어 나는 대표원장님을 빤히 쳐다보았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거기에 있던 모든 환자와 직원의 수십개의 눈빛나에게로 모였다. 열등감이 폭발하셨군. 이러면 내가 창피해서 울기라도 할 줄 알고? 지금 여기서 나를 놓치면 크게 후회할 텐데. 아니, 그런 것도 모르시겠구나. 그러니 *치과에서 실장이 어떤 일을 해줘야 하는지도 모르고 저런 행동을 하시지.


(*치과 실장이 하는 일 : 중간관리자로, 주로 환자의 치료 상담이나 진료의 회전율을 높여 매출을 증대시키고, 허비되는 시간 없이 환자를 적절히 배치하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물론 진료실이 바쁠 때는 이것저것 다 해줄 수 있는 깍두기 같은 존재다. 치과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빨리 파악하여 나무보다 숲을 보며 치과 전체의 시스템을 관리한다.)


오전 9시 50분,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대표원장님 옆을 쌔앵 지나 치위생사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치과를 나와버렸다. 답답함을 느끼던 예쁜 코디 선생의 안타까운 눈빛을 뒤로하고 치과를 나서자 바로 전화가 울린다. 경영담당 페이 원장님의 전화다. 받지 않았다. 환자들이 앉을 자리도 없이 기본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는데 직원의 반절이 숨어서 놀고 있는 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바꿔보려는 노력을 '쓸데없는 일'이라 말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둔 지 2주가 흘렀다. 일주일간의 페이는 입금되지 않았다. 오늘 입금하지 않으시면 내일부터는 체불된 임금에 대한 연체이자까지 지불하셔야 하니 입금하시라고 사무장님에게 문자를 남겼다. 바로 입금이 되었다. 그리고 대표원장님은 김실장이 그런 걸 그렇게 잘 아냐고 포효를 했다고 한다. 또 그로부터 얼마 뒤 경영담당 원장님 역시 결국 그만 두셨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나를 불렀던 똑똑이 동생 역시 그곳을 나왔다.


얼마 후 친구와 동네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다가 냅킨을 가지러 일어났는데 누군가 나를, 어색함이 스며든 반가운 것처럼 가장한 목소리로 부른다. 대표원장님이었다. 평소라면 원장님께 가서 인사드리고 안부라도 묻겠지만 어떤 의도의 미소인지 알겠고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분이었기에 나는 고개만 까딱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원장님은 이미 네펜데스의 찰방거리는 소화액 속에 빠져버리신 것 같아서요.





사진 출처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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