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치과에서 근무하던 때이다. 5일장이 서는 날은 밖이 시끌시끌하다. 그날도 바깥 공기와 대조되는 따분한 치과 안에서, 틀니의 수리를 기다리는 대기실의 할머니와 서로의 코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밖이 더욱 어수선하다. 메가폰을 든 사람이 무슨 국민이 어쩌고 하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창밖을 열어 보니 누가 온 것 같은데 에이, 보이지도 않는다.
할 일이나 하자.
진료실 안에서 차트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환자가 온 것 같아 데스크로 갔다. 누군가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오죽 급했나 보네, 하고 다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하던 일을 했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화장실에 갔는데 변기 옆에 핸드폰이 하나 있었다. 아까 그 사람이 놓고 갔나 보네. 여기로 찾으러 오라고 해야겠다. 미안해요, 잠깐 폰을 열어볼께요.
한*규
KBS PD 김**
이순* 선생님
SBS PD 유**
뮤지컬 남**....
'아니 이게 뭐야? 와.. 누구길래 연예인들을 다 알아? 대단한 사람인가 보네. PD들도 알고.'
누가 왔다 갔었는지 궁금해졌다. 잠깐, 대기실에 계신 할머니는 보셨을 것이다.
"어머니, 혹시 조금 전에 화장실 왔다간 사람 누구였는지 보셨어요?"
"몰러. 어떤 남자가 왔었어."
남자라... 누구?
아직 밖이 시끌시끌하다. 누군지는 몰라도 가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그분의 핸드폰을 돌려주기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치과 계단을 내려갔다.
치과 앞에는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로 비집고 가려했지만 이내 제지당했다.
"그쪽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이, 이것만 전해주면 되는데 누구 것인지 모르겠어요."
"아! 전해드리겠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그들에게 맡기고 다시 치과로 올라왔다. 대체 누구길래. 에휴, 알게 뭐야. 틀니는 대체 언제 와.
시간은 평소와 같이 흘러 틀니수리를 맡기셨던 할머니도 가시고 해도 점점 땅을 향해 사라지며 바깥의 소리도 잠잠해지고 있었다. 누군가 천천히 문을 연다. 멋진 버버리 코트를 입은 어떤 남자.
"안녕하십니까. 아까는 신세를 좀 졌습니다. 전화기까지 돌려주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나무위키에서 가져옴. 사진이 실물을 담지 못하네요.
눈앞에 영화배우 문성근 아저씨가 나타났다!
어린 시절 '우리들의 천국'에서 검도 사나이로 나와 목검을 휘두르던 멋진 아저씨. 그 기억으로 나는 후에 나의 두 아이에게 검도를 가르치게 되었다.
예수님 그림처럼 문성근 아저씨 뒤로 광채가 나오는 것 같았다. 배우는 역시 다르구나. 흔한 버버리 코트 툭 걸친 모습일 뿐인데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이 시골장터에서 대배우를, 내 직장에서 만나 얘기도 해보다니!
그러고 보니 가끔 평범한 일상에서 이벤트가 생기곤 했다. 역 앞에서 명계남 배우를 보거나, 화장실에 간 아들을 기다리다가 손 씻고 나오는 백종원 아저씨를 코 앞에서 본 적이 있었다. 여긴 서울 경기 지역도 아닌 작은 지방도시라서, 저 앞에 서있는 조인성 배우와 내 옆을 지나쳐 뛰어가는 손예진 배우를 직관할 때도 그때마다 참 신기했었다. 이 기분에 콘서트도 가고 공연도 보러 다니나보다.
지루한 시골 치과에 작은 심쿵함을 선물하신 문성근 배우님과 잠깐이지만 같은 공간에 있었던 나를 모르는 유명인들 모두 꾸준하게 활동 하시길 바란다. 또한 우리 치과 환자들도 원장님과 아는 직원들이 그 자리를 꾸준히 지켜주길 바라지 않을지 잠시 생각해본다.
사진출처 : 나무위키, 언스플래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