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처음으로 망고를 먹인 날

원장님의 별장

by 따바라중독자

아이와 함께 잠시 백수로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전에 일하던 H치과의 원장님이 별장을 사게 되셨다. 예전부터 원장님께서 꿈꾸던 별장 생활이 드디어 시작되셨다고,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으셨던 분이 별장을 꾸미러 진료시간을 단축시키실 정도로 엄청 좋아하셨다고 한다. 감사하게도, 그만둔 지 오래된 나를 함께 그곳에 초대해주셨다.


나는 4살 된 첫째를 데리고 H치과로 가서 직원들과 함께 원장님 차로 이동을 했다. 오랜만에 갔더니 원장님 차도 바뀌어 있었다. 약 10년 전인데 그 당시 자율주행이 되던 차였다. 신기함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뒷좌석 시트에도 냉방과 온열이 되는가 하면, 뒤로도 한껏 젖혀지는 시트였다. 비싼 차는 다르구나.




별장은 대문부터 드라마에나 나올 듯한 모습이었다. 아치형의 문 틀에는 키위 넝쿨이 멋스럽게 휘감겨 있고, 고급스러운 대문을 여니, 마당 한가운데에 벤치 그네가 있었다. 담벼락 주변에는 꽤나 고가로 보이는 소나무들이 팔을 이리저리 뻗어 넓은 마당과 하늘을 향해 발레를 하고 있었고, 알록달록한 갖가지 꽃들이 참으로 정갈하게도 피어있었다.


마당 한쪽에는 한참 친구들과 놀 나이인 이십대 아들을 위해 나무집 같은 아지트도 만들어 두시고, 그 아래엔 바비큐를 구우며 파티를 열 수 있도록 간단한 수도시설과 테이블이 잘 꾸며져 있었다. 뒷마당에는 상추라도 자라고 있겠지, 했는데 또 다른 귀여운 꽃들이 오밀조밀 자리 잡고 있었다. 원장님 부부는 원예 전문가였다.

드디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인테리어용 가구가 정갈하게 놓여 집에 품격을 뽐내고 은은한 향기는 세련미를 올려주었다. 현관을 지나니 층고가 높은 복층의 거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좋은 집이었다. 집은 자신의 멋짐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다.


식사시간이 되어 부엌에 갔다. 나뭇결이 살아있는 식탁은 10인용은 되어 보였다. 식탁에는 사모님께서 정성껏 차리신 온갖 음식이 놓여 있었다. 오색빛깔의 아보카도 샐러드(그때 처음으로 아보카도라는 것을 보았다.), 노랗고 예쁘게도 데코 된 망고, 소고기 특수부위와 싱그러운 채소, 과일들,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반찬과 밥.. 이걸 다 사모님 혼자 차리셨다니. 사모님은 살림을 위해 태어나신 분 같았다.


아들은 이 날 처음으로 망고도 먹고, 아보카도도 먹었다. 값비싸고 신선한 소고기 특수부위도 배불리 먹었다. 저렇게 크고 길고 질 좋은 커튼도 처음 보았고, 온통 편백나무로 꾸며진 욕실도 구경하였다. 거실 중앙 벽에는 달을 볼 수 있게 위쪽이 통창으로 되어 있었고, 그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복층 로비 한가운데에 있는 그네의자에 앉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곳에 앉으니 정말 달을 보며 온전히 감상에 빠질 수 있었다. 노란 달, 아들이 태어나 오늘 이곳에서 처음으로 먹었던 노란 망고와 연두 아보카도, 기다리지 않아도 언제든지 탈 수 있는 마당의 그네, 아이가 친구들과 그들만의 공간에서 밤새 파자마 파티를 할 수 있는 오두막, 마당에서 즐기는 바비큐 파티, 아이가 마음껏 뛰며 상상할 수 있는 넓은 마당과 꽃나무들, 오로지 달을 감상하기 위한 이 공간 그리고

결혼 후 채워진 적이 없었던 나의 마이너스 통장.





양껏 배를 채운 아들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꽃구경도 하고, 그네도 탔다. 아이가 탄 그네를 밀어주면서도 나는 감탄사를 연발해야 했다. 정말 좋은 마당과 집이니까. 자신이 바라던 공간을 이루어내고, 이렇게 정갈하고 깔끔하게 가꾸신 원장님 부부는 부지런하고 대단하시니까. 나라도 당연히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말했다.


"엄마, 망고 또 사줘."


갑자기 눈물이 났다. 질투가 나거나 한 건 분명 아닌데. 진심으로 축하드리는 마음으로 간 건데. 이러면 내가 너무 못난이 같잖아. 그럼, 또 사줄게. 눈물 맺힌 내 눈은 창밖을 향했다. 어둑해진 동네에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이 점점 커지다가 흐려진다. 누가 볼까 봐 얼른 눈을 훔치니 다시 가로등이 작아졌다.





사진 출처 : 언스플래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