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원장님은 50세의 나이에도 큰 키에 배우 같은 얼굴과 잘 관리된 신체를 갖고 계셨다. 까만 얼굴에 넓은 어깨, 허스키한 목소리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대기실이 꽉 차도록 환자가 많았던 이유에는 원장님의 외모가 꽤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다. (특히 중년의 아주머님들이 많았다.) 살아계셨다면 지금쯤 은퇴하시고 골프를 치러 다니시거나, 손주를 봐주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외모도 인상적이었지만 환자에게도 참 친절하셨다. 환자를 대할 때에는 모든 환자마다 개별적으로 접근했다. 시대를 앞서 나가, 요즘 말하는 1:1 응대, 곧 ‘감동을 주는 응대‘가 몸에 베인 분이었다.
어르신들이 오시면 아무래도 겉모습으로 계층이 짐작되곤 했는데, 낡고 냄새나는 옷을 입고 시장에서 채소를 파시던 어르신에게도 Q원장님은 절대로 차별하거나 막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어깨를 잠깐 짚는 등의 가벼운 스킨십과 함께 ‘큰아들 집이라 생각하고 언제든지 오세요.’라고 부드럽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 잠깐의 소통이 어르신들에게는 안정감을 주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학생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처럼, 중년에게는 깍듯하고 신사적으로 대했다.
1년 차 망나니였던 나에게는 철없이 구는 직원을 아량으로 넘겨주시는 원장님이 되어주시기도 했다. 치과에서 티슈를 많이 쓰네, 하며 마트에 전화해서 티슈만 20만 원어치를 사다 창고에 쟁여놓질 않나, 차를 종류별로 7~8가지를 구매해 메이크업실에 꽂아놓질 않나, 잡곡 먹어야 한다고 잡곡만 5가지를 병원에 사놓고, 야간진료도 없는데 매일 저녁 오버타임으로 화난다며 동태탕을 시켜먹질 않나, 수시로 요구르트네, 밤빵이네 이것저것 사 먹고, 시끌시끌 환자랑 떠들고, 대기실도 내 맘대로 꾸며놓고, 주무시는 원장님 깨워서 월급 달라고 하고......
이런 모든 나의 어린 행동에 대해 원장님은 한마디도 안 하셨다. 오히려
"티슈가 넉넉해서 좋네."
"잡곡 먹으니 건강해지겠어."
"대기실이 환해져서 좋네."
"대추차도 있고 생강차도 있고 율무차도 있고 맛있는 것만 잘 사다 놨네."
하시며 건치를 드러내며 웃으셨다. 점심식사 외에 매일같이 사 먹는 것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도 안 하셨다. 다 그런 건 줄 알았다. 그저 환자가 너무 많아 힘들었다는 것, 철없던 나는 그것에만 관심이 있었고 방법을 몰랐다. 힘들다고 진료시간을 줄여달라거나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솔직하게 말씀드렸다면 다 들어주셨을 분인데, 그때는 너무 어렸다.
회식 때에도 지역에서 비싸다고 하는 곳만 데리고 가셨다.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갔을 때는 비싼 음식인데 양이 너무 적자,
"이거 먹고는 양도 안 차지? 맛있게 하는 국숫집 있는데 국수도 먹고, 맛있는 거 더 먹으러 가지."
하시는 소탈한 면도 있으셨다.
원장님께서 서둘러 가신지 벌써 17년이다. 힘들다고 그곳을 그만두고 여러 달 후 치과에 놀러 갔을 때 환하게 반겨주시고 갈때는 용돈을 쥐어주시던 원장님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원장님은 이제 없다는 것을. 내가 연차를 몇 년이라도 채우고 세상을 조금 경험해본 뒤 Q원장님을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원장님과 정말 재미있게 지냈을 텐데. 그럴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날카로운 칼날로 시간을 그어 일부러 장면을 엇갈리게 만들어놓은 것 같은. 50세에 만났던 원장님은 52세에 먼저 가셨다. 나의 서툰 1년은 Q원장님이 시간의 끝에 닿기 2년 전의 시간이었다. 반짝이는 칼날은 장면을 흩뿌리고 결국 각자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너무 빠른 죽음이라는 것을. 원장님의 아이들은 중학생이었다. 그때는 그냥 아, 돌아가셨구나, 정도였다. 어릴 땐 그렇게 모르고,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나이를 먹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먹어야 할 약들은 자꾸 늘어나지만 약의 개수만큼 삶의 이해도와 공감은 계속 깊어지기 때문이다.
기일은 모르겠다. 추운 겨울, 기차를 타고 가다 들은 소식이었다.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마신 생강차는 아직도 어렴풋이 Q원장님이 한잔 타드시며 "맛있는 것만 사다 놨네." 하시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약을 100개씩 먹더라도 오래 살고 싶다. 살만큼 충분히 살다가 가고 싶다. 주변 사람들을 감상에 젖게 하는 추억으로 남고 싶지 않다. 내 장례식장에서는 슬퍼하는 사람보다 살만큼 살다 가셨다고, 호상이라고 밥이나 먹고, 오랜만에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어 웃음소리만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 언스플래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