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니의 행방

세 개의 틀니 이야기

by 따바라중독자

* 내용 중 비위가 약하시거나 더러움에 취약하신 분들은 노란 글씨로 표시하였으니 그냥 넘기시길 당부드립니다.



1


정 할머니는 갑자기 오신다. 우리 치과는 예약진료인데,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시간 약속도 잘 지키신다. 혹시 잊으실까 봐 따로 큰 글씨로 적어서 드리기도 한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마음 가는 대로 오시는 어르신들이 있다.

정 할머니는 규 할아버지와 부부이시다. 규 할아버지는 처음 우리 치과가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오셨던 차트 번호 두 자리의 환자분인데, 우리들을 참 좋아해 주셨다. 여기서 틀니도 하시고, 원장님을 박사님이라 부르셨다. 똑똑하다고 칭찬해주시고, 커피를 타다 드리면 편하게 누워 드시기도 하였다. (환자 어르신께 커피를 타드리는 건 별게 아니다. 바쁘면 못하지만 여유가 있을 때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본다. 사람 사는 곳이니까.)


규 할아버지는 그렇게 정 할머니를 데리고 오셨고, 정 할머니는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채 우리 병원에 오셨다. 그도 그럴 것이, 정 할머니 댁은 우리 병원에서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90이 다 되어 가는 노인께서 버스 타고 걸어서 와야 하는데, 거의 한 시간은 걸리신다고 한다.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나를 여기까정 끌고 와가지고. 나는 지금 있는 틀니도 20년째 잘만 쓰고 있고마는. 다시 안 해도 된다니까는 여 먼데까정 나를 끌고 왔어. 내 말은 듣지도 않어."

"아, 내가 해줄 테니 그냥 혀."

"오기도 힘들고 먼디 내가 어떻게 여까지 와요. 가깐디서 하믄 되는디 꼭 여기서 해얀다고 말도 안 들어."

"그냥 혀. 여 박사님이 잘하니께."


불만 가득 정 할머니께서는 결국 규 할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틀니를 하셨다. 전에 쓰시던 *틀니는 20년 동안 닳고 닳아 정말 새 틀니가 필요해 보였다. 무면허로 제작한 틀니인데도 적응을 잘하셨는지, 불편도 모른 채 서서히 닳아간 틀니에 맞춰 얼굴 형태도 바뀌신 것 같았다.


(* 틀니는 사용기한을 보통 7년 정도로 본다. 틀니에 심어진 인공치아가 음식을 씹는 동안 서서히 닳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응을 잘하신 경우에는 7년 이상을 쓰시는 경우가 흔하고, 7년이 안되어도 잇몸 형태 변화나 남은 치아 상태, 부적응 등의 이유로 여러 번 다시 하시기도 한다.)


겨우겨우 새 틀니를 완성하신 정 할머니는 새 틀니에 적응을 못하셨다. 틀니의 인공치아들은 반질반질하게 편평해져 있었는데, 그것을 20년이나 쓰셨으니 적절하지 않은 그 상태에 적응할대로 적응해 버린 것이다. 잇몸이 점점 줄어들어 이전에 비해 틀니는 더욱 커지고 틀니 인공치아 형태도 원래의 치아 형태대로 산과 골짜기가 울룩불룩 살아있는 상황을 많이 힘들어하셨다. 적응기간 동안 다른 분들보다 훨씬 많이 내원하셨다.


이틀에 한 번꼴로 오시던 정 할머니는 한참을 안 오시고 전화만 여러 번 주셨다. 새 틀니가 불편해서 예전 틀니로 쓰고 있다고. 어느 겨울에는 갑자기 한 번씩 오셔서

"예전 틀니하고 똑같이 만들어줘요."

"예전 틀니랑 달라서 틀니를 그냥 놓고 갈라고 왔어요."

"계속 아프면 다른 치과 가볼라고 해요."

"다시 해줬으면 좋겠어요."


우선은 아플 때 전화 주시고 오시라고 했다. 시간을 잡고 오셔야 새로 만들든, 천천히 얘기도 들어보고 손을 봐드리든 하니. 정 할머니는 또 한참을 안 오시더니 어느 날은 틀니를 잃어버리셨단다. 있는 틀니를 다 가져오시라고 했다. 그 사이 정 할머니는 또 무면허업자에게 틀니를 새로 하셨고 그것도 안 맞았다며 틀니 세 개를 가져오셨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드리기를 권유했으나 정 할머니는 거부하셨다. 다시 세 개의 틀니를 싸드렸다.


또 한참 뒤에 아드님이 오셨다. 어머님이 틀니가 치과에 있다고 찾아오라고 했다며. 하지만 저번에 고이 싸드린 기억과 차팅 기록이 있었기에 잘 찾아보시라고 했다. 며칠 뒤에 찾았다며 가져오신 틀니는 온갖 부패된 음식과 곰팡이가 가득해 청소조차 힘든 상태로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정도였다. 우리는 틀니를 다시 재작해드리려고 하였으나 미안해서 그냥 가시겠다며 그 후로 오지 않으신다.




2



한 따님은 타 지역에 살다 보니, 아침에 출발하면 점심이 지나서야 어머님을 모시고 치과에 올 수 있었다. 효녀셨다. 틀니를 해드리기 위해 편의점 하나 없는 시골 산속에 사시는 치매 노인을 모시고 여러 번 내원을 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여기 어디여?"

"김** 접수해주세요. 엄마, 여기 치과 왔어. 치과."

"치과? 왜? 나 이빨 안 아퍼."

"에휴...... 엄마 이빨 없어서 틀니하고 있잖아."


치과에 방문하실 때마다 반복되는 대화. 그래도 김 할머니는 우리를 보면 방긋 웃으신다. "안녕하셔유?" 하시며, 인사는 하시는데 따님에게는 여기 어디냐고 또 묻고, 또 묻고.


따님의 효심으로 김 할머니는 겨우겨우 틀니를 완성하셨다. 이가 하나도 없으셔서 분명히 잇몸이 많이 아프실 텐데 어쩐지 연락이 없다. 전화를 드려도 받지 않으시고, 따님도 타지에 계시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2~3주 정도 흘렀을까, 따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치매 때문에 뭘 자꾸 숨겨요. 혈압약도 어디다가 숨겨놓고 몇 주를 안 먹고, 틀니도 어디다가 숨겼는지 기억을 못 하고...... 휴..... 정말 폭폭해서 전화드렸어요. 죄송해요. 틀니를 다시 하게 되면 혹시 비용이 어떻게 들어갈까요?"

"하신지 얼마 되지 않으셔서 할인을 해드릴 수는 있겠지만 또 반복되시지 않을까요. 그게 좀 걱정이에요. 따님도 다니시기 쉽지 않으시잖아요."

"그렇죠. 아휴......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답답해서 말씀드려봤어요. 밥도 못 드시는데 대체 틀니를 어디다가 놓은 건지 찾을 수가 없어요. 예전에 했던 틀니들도 어디다가 여러 번 숨겨놔서 이번엔 진짜 약속하고 다시 한 건데......"


치매는 참으로 잔인한 질병이다. 겉보기엔 멀쩡하신데. 너무나 해맑고 귀여우신 웃음을 갖고 계신 어르신인데.

따님과 그 가족분들은 결국 어머님의 틀니를 새로 해드리는 일을 포기했다.




3



수줍음이 많으신 어르신이었다. 더우시죠? 예, 예. 시원한 물 한 잔 드릴까요? 아뇨, 아뇨. 괜찮어유. 조금 기다려 주세요. 예, 예.


따님은 아버님과 함께 치과에 방문하셨다. 막내 따님이라고 한다. 방사선 사진을 찍기 위해 어르신의 틀니를 받아 들었는데, 죄송하지만 속이 메스꺼워졌다.


"아... 아버지가 틀니를 하신지 오래되셨는데 그동안 한 번도 *틀니를 안 빼셨데요... 많이 더럽죠? 죄송해요."

"아... 아닙니다. 괜찮아요."


(*틀니를 안 빼시면 안 된다. 매 식사 후 제거하여 칫솔과 물로 세척해야 한다. 청소가 안된 틀니는 온갖 부패된 음식물과 물때가 달라붙어 매우 불량한 위생상태가 되어 사용이 힘든 상대가 된다. 저녁에는 찬물에 담가 두고 아침에 다시 장착한다. 잇몸도 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년 치과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겨우 속을 진정시켰다. 사진을 찍고 틀니를 세척하는데 이미 돌처럼 굳어버린 이물질들이 틀니 안쪽에 가득하여 세척 자체가 불가능했다. 돌 같은 세균덩어리들로 인해 잇몸은 죄다 빨개진 채로 남은 한 개의 치아마저 금방 뽑힐 것처럼 흔들흔들했다.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 저희 아버지 잘 부탁드려요. 집에서는 말씀을 잘하시는데 병원에서는 잘 말씀을 안 하시려고 해서요."


조 할아버님은 약속시간을 한 번도 지키지 않으셨다. 시간에 오지 않으셔서 전화를 드려도 한 번도 받지 않으셨다. 그래도, 오시기만 하면 다행이었다.


"아버님, 1주일 후에 10시에, 10시! 그때 꼭 오셔야 해요. 적어드릴게요. 이거 보고 오세요~"

"네, 네."

"잊으시면 안 돼요. 전화도 잘 받아주시고요~!"

"이, 이."


당부가 무색하게도 다른 분들 3주면 넉넉히 끝날 전체틀니인데 2달째 마무리를 못하고 있었다. 따님에게 여러 번 통화를 시도하고, 아드님에게도 전화하고 거듭된 당부로 마지막 틀니가 완성이 되어 조 할아버님만 치과에 오시면 되는 상황이었다.



애타게 주인을 기다리는 조 할아버님의 새 틀니


"안녕하세요, 치과예요. 아버님 말씀해보셨어요?"

"답답해 죽겠어요. 틀니를 안 하겠다고 자꾸 고집을 부려요."

"이제 다 되셔서 찾아가기만 하시면 되는데요.ㅠ"

"그러게요. 대체 왜 안 가시겠다는 건지 말을 안 해요. 지금 있는 틀니로 먹겠다고."

"지금 갖고 계신 건 임시틀니라서 불편하실텐데요."

결국 따님은 설득에 실패하셨는지 아버님은 오지 않으신다.





내 치아가 있다면 최고다. 어쩌다 이를 하나씩 잃게 되었다면 그다음은 임플란트다. 심한 당뇨나 오랜기간 골다공증 주사를 맞으시는 등 여러 가지 사정상 그게 안된다면 그다음이 틀니이다. 적응을 잘 하시는 어르신도 계시지만 틀니는 참 불편하다. 씹는 힘이 자연 치아의 10분의 1 밖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분홍의 플라스틱이 입안 점막을 덮어 음식 맛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불편한 틀니라도 없다면 드시질 못하니 힘도 없고 말라가신다.


그나마 치료에 대해 이해하시고 연락도 잘 되는 경우는 치료진행이 수월하다. 위 어르신들처럼 틀니의 행방을 모르거나, 방치하거나, 틀니를 두고 자신의 행방을 감춰버리는 경우는 도와드릴 방법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항상 생각하지만 우리 어르신들,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제만 있으시길 바라본다. 대기실에서 진료실까지의 몇걸음에 10분씩 걸리셔도, 왜 자꾸 아프냐 핀잔하셔도 좋으니 불편이 있으실 때 잘 와주셨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 언스플래쉬

keyword
이전 09화호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