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후 얼마 되지 않아 신환이 밀려오고, 계속된 상담으로 주로 예진실과 상담실만 왔다 갔다 할 때이다. 우리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환자분들에게도 보였는지 고맙게도 소개환자가 많았다. 치과에서는 소개환자가 많을수록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기에 열심히 치료 상담을 이어갔다.
야간진료가 있던 날이었다. 급하게 저녁식사를 몰아넣고 신환을 만나러 예진실로 갔다. 지난번 오셔서 치료받고 가셨던 아주머님이 새언니를 데리고 왔다며 인사를 건네셨다. 일본에서 오셨다고 한다.
"지난번 치료받은 곳은 괜찮으세요?"
"잘해줘서 잘 쓰고 있어요. 우리 새언니인데, 일본인이야. 한국말은 잘해서 다음부터는 내가 같이 안 와도 될 거예요."
충치 3개와 임플란트 하나. 상담실에서 두 분께 치료 상담을 드렸다. 정말 한국말을 참 잘하셨다. 어쩜 다른 나라말을 저렇게 끊김 없이 하실까. 중간중간 일본식의 발음이 있긴 했지만 말하거나 듣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아노, 내가 시간우 자루 내지는 못해요. 오느처럼 저녁에 오르 수 있어요."
"괜찮습니다. 오늘처럼만 오셔도 임플란트 수술 충분히 가능해요."
"아노오, 구러모 비용이노 오또케 합니까?"
차분하신 일본인 아주머님, 아노, 아노, 습관이신가 보다. 상담이 끝나갈 무렵 궁금한 것이 있다고 하신다.
"아노, 궁금한 것이 있어요. 가르시움 먹고 있눈데 수수루하는고 관계있어요?"
"...? 죄송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어떤 것 드시고 계신다고..?"
"가르시움, 가르시움."
가르시움? 가르시움... 가르시움이 뭐지?
"아... 그 '가, 가르시움'이라는 것을 드시는 거에요?"
"네네. 가르시움 계속 먹고 있눈데, 수수루해도 갠찮아요?"
순간 시간 속을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수십 개의 단어가 휘몰아쳤다. 시간은 압축되거나 말랑말랑한 것이 확실하다.
'가르시움... 가르시니아? 가르...가루? 가라오케? 아니 아니지... 가랑코에?... 에이... 가르.. 가르시... 갈시움... 갈슘... 칼슘? 칼슘!!'
"혹시 칼슘제 드시는 거예요?"
"네네, 맞스니다. 가르시움 상과노 없어요?"
"예~ 상관없습니다~^^"
오오!! 빠른 깨달음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보이지 않게 내뱉었다. 자기만족에 광대가 하늘로 치솟았다.
"아노, 센세님이 자루 웃우셔서 마음이 놓이무니다."
"아~ 그러셨어요? 다행이에요! 저희가 임플란트 수술 경험이 많습니다. 마음 놓으시고 걱정 안 하시도록 열심히 수술하겠습니다!"
'아노상' 아주머님의 수술은 무리 없이 끝났고, 치료도 잘 마무리되었다. 나 스스로 말귀를 알아듣는 눈치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날 이후로 자신감이 생겼다. 우연히 만난 아노상 아주머님이 내게 이런 자신감을 심어주실 줄이야. 인생은 참 다이내믹하다. 누군가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의외의 곳에서 자신감을 얻을 수도 있다니.
그때의 아노상처럼 갱년기에 들어선 나도 이제 칼슘제를 먹고 있다. 만약 지금이라면 당장 알아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종류이든 경험이 쌓이는 것은 인생을 넓게 이해하게 하는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더욱 넓어지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는 것은 진정 가치 있는 일이다.
사진출처 : 언스플래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