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자세 : 두 눈을 부라리기
백수 시절 돈이 떨어져갈 때쯤 나는 아이를 키우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매일 아침 구인란을 헤매던 평범했던 날, 근무 시간이 짧아 직원이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다는 전설의 C치과가 구인을 하고 있었다. 월화수 6시간 근무, 목금토 오전 2시간 근무였다. 아이를 키우며 다니기엔 딱이었다. 망설이는 시간도 아까워 나는 바로 전화번호를 눌렀다. 조금 전에 올라온 것 같아서 누가 가로챌까 조마조마했다. 이곳은 내 자리다!
원장님은 오늘내일 곧 은퇴하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연배였다. 원장님방 벽에는 누런 담배그을음이 원장님 나이만큼 역사가 깊어 보였다. 서너마디 대충 상투적인 질문을 하셨다. 나는 다음날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사실 그 곳에는 10년 전부터 동기가 일을 하고 있던 터였다. 과탑을 놓치지 않으며 얌전하고 말이 없던, 내가 참 좋아하던 친구였다. 광주로 시집을 간다고 했다. 머리도 좋고 똑똑했지만 출세욕심이 없어 이곳이 매우 잘 맞았던 것 같았다. 학교 시절 내 말을 경청해주던 친구는 자신의 자리 역시 내게 내어주었다.
말과 행동이 느리고 무던하신 원장님은 하루종일 방 안에서 줄담배를 피우셨다. 원장님 방 텔레비전에서는 하루종일 바둑프로가 나왔다. 10시에 출근하시면 바로 다시 나와 따뜻한 메밀차를 한 잔 타드셨다. 12시가 되면 식사하러 댁에 가셨다가 2시에 돌아오셔서 라떼믹스커피를 드셨다. 당뇨때문에 달콤한 간식은 못 드셨다. 나는 아침마다 걸레질을 하며 도로를 향해 난 창문을 활짝 열었다. 꽃화분에 물을 주고,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잊을만하면 오시는 환자분들 서너명의 진료에 참여했다. 한가로이 읽던 책을 읽다가 간단히 청소를 하고 나면 하루일과가 끝이었다. 평화로웠다.
딱 하나만 빼면.
이 곳에는 복병이 있었다. 친구가 그만두기 전부터 같이 일하고 있던 간호조무사가 있었는데, 신기할 정도로 항상 두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눈이 아픈 사람인가? 갑상선기능항진증이 있나? 그러나 병적인 모양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저렇게 하루종일 힘을 주면 눈에 근육이 생기지 않을까? 근육질의 눈꺼풀이라.. 상상력이 부족하다. 날씬한 그녀는 마치 온 몸의 열량을 눈근육에서 다 쓰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눈이 *우사미 같았다.
이 '부라리'는 인사를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원장님이 출근을 해도, 환자가 와도, 그저 두 눈을 부라릴 뿐 인사는 커녕 아는 기척조차 하지 않는 애였다. 나만 보이는 귀신인가?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는 걸 보니 귀신은 아닌 것 같다. 센척인가? 세보이기를 잘못 이해한 것 같다. 중2병이 늦게 왔나? 중2는 어리기라도 하지. 30을 넘긴 나이에 인사가 인간사의 기본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텐데.
인사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만나본 사람 중 예의없기로는 일등이었다. 말 한마디를 해도 톡 쏘고 항상 화가 나 있었다. 저런 사람들은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저럴까하고 매일 생각했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해도 할 수가 없는 정도였으니. 직원이 둘 뿐인 병원에서 걸레 한번, 청소기 한번 드는 적이 없었다. 아침마다 그놈의 마스카라를 하느라 눈을 뒤집어 까대는 바람에 아침마다 흠칫 놀랐다.
부라리와 함께 한달이 지났다. 역시 답이 없었다. 결국 나도 인사하는 일을 포기했다. 세상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사람도 있었다. 나는 불편했지만 입을 꾹 닫고 참았다. 그리고 '부라리 내쫓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인사할 줄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와 계속 함께 생활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나는 인사할 줄도 알고 꽃에 물도 줄줄 알며, 옆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환자도 없고 아무도 관심이 없던 치과환경부터 정비했다. 치과를 들어서기 전, 건물에는 큰 복도가 있었는데 청소를 언제한건지 모를 먼지가 겹겹이 쌓여 굳은 상태였다. 나는 아침마다 대걸레질을 했다. 첫날에는 바닥과 물걸레가 서로 대면대면하여 온 복도에 물을 뿌려놓고 빡빡 문지르기 시작했다. 비로소 때밀리듯 먼지가 돌돌 말려나왔다. 환자도 잘 없겠다, 작정하고 바닥의 때를 밀었다. 환자가 드나드는 치과 문 앞 근처만 제외하고는 적어도 10년 이상 아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 같았다.
아침에 출근하고 원장님이 오실 때쯤 나는 복도에서 대걸레질을 했다. 이 복도는 원래 검은회색이 아니었다. 흰색에 가까운 회색이었다. 복도는 날이 갈수록 제 색깔을 찾았고, 나의 이마에는 아침마다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원장님께 '초밥집 이랏샤이마세'를 능가하는 큰소리로 아침인사를 하곤 했다. 원장님이 치과문을 열 때 슬쩍 보면 부라리는 역시 마스카라를 위해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역시 부라리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밖에서 걸레질하고 인사하고 시끌시끌하면 본인도 가만히 앉아있기가 좀 민망하지 않았을까. 차라리 잘 됐다. 버릇없는게 눈치도 없고. 명을 재촉하는구나. 제발 본인의 태도를 알아차리지 않길 바란다. 마스카라를 멈추지 않길 바란다. 원장님과 환자들에게 계속 인사하지 않길 바란다. 걸레 따위 들지 않길 바란다. 나는 내 할 일을 더 '열심히' 할테니.
부라리는 '없음'에 있어 여러모로 다 갖춘 사람이었다. 예의없음, 성실없음, 생각없음. 이렇게나 근무시간이 적은 곳에서 꼭 한 달에 한 번씩은 아프다며 아침에 갑자기 결근하기 일쑤였다. 전에 있었던 내 동기가 워낙에 무던하고 잘 참는 성격이라 알고도 다 속아줬겠지만 나는 속아주기 싫었다. 진짜 아픈게 아닌 것이 분명했다. 니가 여태까지는 편하게 살았는지 몰라도 속내가 뻔히 보이고 평소 행동거지도 맘에 안 드는데 아량을 베풀 수는 없지.
나는 그 당시 속상한 마음에 과거 같이 근무하던 실장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병원이 근처여서 근무를 일찍 마치시는 날이면 한번씩 찾아가 징징거렸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그 병원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배가 부라리를 안다는 것이다! 잘 아는 건 아니고 인스타 친구라며 사진을 보여 주었다. 야외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사진속의 날짜는 아프다며 병원을 빠졌던 날들이었다. 확실한 증거가 여기에 딱 남겨져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원장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아프다고 한 날 밖에서 신나게 놀며 찍었던 사진들을 보았다고. 부라리를 내보내주세요. 차라리 나 혼자 일하는게 나을 것 같아요.
원장님은 말씀하셨다.
"안 그래도 환자들이 와서 쟤보고 기분나쁘다고 많이들 그런다. 근데 어린 것이 먹고 살자고 와서 일하는데 어떻게 내쫓겄냐."
(부라리 2 에서 계속)
사진 출처 : 언스플래쉬, 네이버 검색 [개그만화보기 좋은 날] 캡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