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온 오후 오프다. 이런 시간만큼은 허투루 보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집안일을 하거나 병원에 가고 싶지도 않다. 어떻게 하면 내게 주어진 자유의 5시간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을까.
30년 지기 친구가 생각난다. 일 년도 넘게 연락을 못하고 지냈다. 그 사이 친구 뱃속에서 만났던 둘째가 세상에 나와 걸어 다니는 동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만나야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친구는 결혼 전에는 퇴근 후엔 도서관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책을 많이 읽으니 지식도 상식도 어휘도 풍부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지난 행동에 대한 깊은 반성과 고민을 많이 했다. 흙집을 짓는 것이 꿈이며, 상대의 이야기를 여유 있게 경청하고 솔직하되 항상 예의 바르고 편하게 대하는, 닮고 싶은 멋진 친구다.
나는 친구를 만나러 시동을 걸었다. 마지막 만났을 때는 아파트였는데 웬 시골마을의 주소를 찍어준다.
있는 것은 들판과 자연, 그리고 귀농인들이 머무는 집뿐이었다. 친구다웠다. 결혼 전에도 주말농장에서 직접 기른 무를 뽑아줘서 생채와 깍두기(실패했다.)를 담았던 기억이 났다. 옛 기억에 빠져있는데 저쪽에서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친구의 집 앞 저 나무는 이파리가 다 떨어져 단출해질 때 이 나무는 여전히 풍성한 색깔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내 아이들은 커서 이제 난 단출하게 널 보러 오고, 넌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마음이 더욱 풍성해졌겠구나. 저 나무들처럼 우리 모습도 변화가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나란히 서 있다.
푸짐한 돌솥밥을 더욱 맛있게 하고 바나나 온실 속 함께하는 커피 한 잔을 그윽하게 하는 것은 바로 너이다. 나의 5시간은 너로 인해 어느 때보다 반짝거리고 있다.
마음과 마음, 인생과 반성, 깨달음과 해소, 그리고 직접 기르고 재배한 수세미, 땅콩, 쌀. 비닐봉지 가득 채워진 수확물은 너의 정성과 기쁨이 그대로 들어있다. 나는 오늘 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소중한 너의 노력과 기쁨을 선물 받았다. 이렇게 또 너는 오늘도 나를 채워 주었다.
아침 약 잘 챙겨 먹고
100살까지 내 곁에 있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