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이란 일 년에 딱 한번 있는 날로
근사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지난 결혼 생활을 돌아보고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며
행복한 미래를 다짐하는 로맨틱한 하루
라고 누가 그래...?
돌이켜보면 결혼생활 초반에는 생일만큼이나 기대가 되고 설렜던 것 같다. 그런데 왜 난 지금 그 설렘이 두려움으로 바뀐 것일까? 언제부턴가 특별하진 않아도 평범한 하루를 바랐다.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었을까?
누가 봐도 다정하고 따듯한 사람.
처음 보는 이들도 오래 본 이들도 입모아 말한다.
그런 사람 없다고. 너를 보는 눈빛에 아직도 하트가 뿅뿅한다나? 둘이 어찌나 닮았는지 사랑하면 닮는다는 게 맞나 보다. 남매 아니냐 등등...
누구보다 주변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 나에겐 어쩌면 주변의 그런 말들이 일종의 가스라이팅 역할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강도는 약하지만 켜켜이 쌓여 눅진 때처럼 아무리 지워도 희미한 흔적만큼은 그대로였다.
그렇게 다정한 사람은 가장으로선 무능했다.
조카를 사랑하는 모습에 반해 누구보다 가정적일 것이라고 확신에 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땐 콩깍지가 씌워서 그의 경제적인 부분들 비전이나 미래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 약속시간 1분도 지각하지 않는 그의 행동은 그의 성실함을 대변하는 듯했기에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요식업 점장으로 누군가에게 지시하고 관리하는 그의 리더십에 새삼 존경과 믿음이 가기도 했다.
만년 직원의 입장에서 상사의 지시만을 따르던 내게 그의 관리자로서의 면모는 높은 점수를 받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런 그이기에 결혼을 하고 더욱 책임감 있는 모습을 기대했다. 사실 크게 바란 것도 없었다. 그저 둘이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집도 커지고 가족도 늘고 행복도 배가 되고 그냥 그렇게 평범한 행복을 빌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그는 자주 방황 했다.
물론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일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디 하나 정착하지 못했다. 요식업이란 업종의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아까운 시간과 돈만 줄줄 새어나갔다.
누구보다 착했지만 무능한 사람. 처음에는 계속 일이 안 풀리자 그 원인을 바깥으로 돌리고 세상 탓만 한채 혼자 어둠 속에 숨었다. 분명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밥 먹고 말했는데 그가 사는 세계는 따로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라도 나를 보기 부끄럽고 창피했기에 어느 날부턴가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고 처음이 어려웠던 거짓말은 어느새 TV속 연기자처럼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옛날 우리 아버지들이 직장을 잃고 집에 들어올 수 없어 하루종일 공원에서 허송 시간을 보낸 것처럼.
그들은 돈이라도 아꼈지 그는 없는 돈도 빌려가며 자신의 거짓된 하루를 메워갔다. 그 하루가 계속 쌓이다 보니 어느덧 월급날은 다가오고 월급을 주지 못하니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렇게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 거짓말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내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 그런 것이라는데 다 핑계다. 지금 잠깐의 불편함을 마주하기 두려웠던 그의 도피처가 바로 거짓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늘 일이 터지고야 아는 사건의 전말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금씩 쌓이더니 내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일을 해도 불안하고 안 해도 불안하다. 아이가 있지만 아직도 청소년기의 방황을 하는 듯한 그를 보면서 매일이 한숨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저 성실히 살아온 지난날이 철저히 외면받는 것 같았다. 그저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무능한 것 빼고는 다정한 남편 다정한 아빠였기에 가족이라는 프레임만은 지키고 싶었다.
돈은 내가 벌면 되잖아...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계속 자기도 모르게 일을 빨리 구해야겠다는 압박이 두려움을 낳고 끝내 적응하지 못한 채 또 다른 곳을 찾고 반복하다 보니 어떻게든 이유를 알아야 했다.
집안일은 곧잘 하는 사람이었기에 전업 주부처럼 집안일과 아이케어를 도맡았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
이미 나이도 많고 허투루 보낸 시간도 많은데 서둘러 일하지 않고 뭐 하냐라고 볼 수도 있지만 지금 그에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억울했다.
하지만 원망과 억울함은 우릴 뒤로 잡아 끌뿐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괜찮다가도 분노 버튼이 한번 열리기 시작하면 지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고 닮아 보이고 사이좋아 보이는 부부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곪고 곪아 서로의 상처조차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야겠다 싶었다.
내가 지난 일을 원망하고 악으로 가득 찬 마음 주머니를 가지고 내 아이를 행복하게 기를 수는 없었다.
억지로 기억을 지우기 보다 조금씩 최면을 걸었다.
심리 치료사는 아니지만 남편이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는 대체 왜 그랬을까?
원망을 애잔함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누구보다 다정한 그가 얼마나 일이 안 풀리고 답답했으면 스스로를 거짓의 함정에 가두었을까? 매일을 거짓이 탄로 날까 두려워 잠도 못 든 채 시뻘건 눈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말로는 가장 가장 하면서 실제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하는 심정은 또 어땠을까?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하루에 한 번씩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거짓말하는 순간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결국 오랜 대화 끝에 알게 된 그의 두려움은 쌓이는 빚도 진실도 아니라 그런 그에게 실망해 나와 아이가 자신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 실타래가 어떻게 엉켜있든 내가 주목한 건 우리가 떠날까 봐 두려운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가 마음과 정신이 아프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비난보다 이해를 하려고 노력했고 우리가 꼭 평범한 가정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오래 달리기 위해 숨을 고르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아직 남은 날들을 가기 위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어느덧 결혼 8주년이다.
이제 막 두려움을 깨고 나온 그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한계와 트라우마를 깨고 다시 잘 시작했으면 하고 묵묵히 바랄 뿐이다.
퇴근 후 책상을 보니 분홍색 편지 봉투가 보인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오랜만에 내게 편지를 쓴 것이다.
썩 훌륭한 필체는 아니었지만 조금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은 채 글씨를 꾹꾹 눌러 담았다.
그의 편지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아닌 지난날의 회고와 반성이 주된 내용인 반성문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 내용이 무엇이든 진심을 다하는 것 그거 하나면 되었다.
30의 나는 결혼이 늦을까 두려워 마음을 졸였는데
40의 나는 결혼이 힘들어 마음을 비우다니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만큼 더 성장했겠거니 하며 나는 오늘도 마음을 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