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버리고 ‘유연함’을 얻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과거에는 '이것이 정답'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지금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자신만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있나요?"
이 질문은 단순히 '생각의 변화'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내가 틀릴 수 있었음을 인정하고, 기꺼이 자신을 수정해나가는 '성숙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에게는 이런 것들이 너무 많아서 글로 정리하자면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저를 가장 크게 성장시켰던 하나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성공 방정식'이 만든, 위험한 확신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전히 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꽤나 꽉 막힌 고지식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 안에는 스스로 세운 수없이 많은 기준들이 있었고, 그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해서 바라보곤 했죠. 한번 기준을 세우면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정답'이라고 믿는, 조금은 답답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잘못된 확신은 아이러니하게도 저의 '성공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세운 수많은 기준들을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들이밀었고, 실제로 그 기준들을 상당 부분 충족시켜왔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강하게 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죠.
이 방식은 제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비슷하게 적용됐습니다. 교육심리학의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교육자가 학생의 가능성을 굳게 믿어주면 정말 그 학생이 성과를 낸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너는 무조건 할 수 있다"고 독려하며 될 때까지 밀어붙였을 때, 점수 향상이라는 객관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경험은 저의 잘못된 확신을 키우는 데 한몫 단단히 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가혹했던 이유
하지만 이 성공 방정식은,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영역인 '연애'에서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친구이거나 동료일 때는 굳이 상대를 바꿀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끔 보고, 할 일이 정해져 있고, 적당히 웃고 떠들면 되는 사이니까요. 하지만 연애는 달랐습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언젠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는 사람', '내 아이의 엄마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저는 저도 모르게 저의 단단한 기준을 상대에게 들이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20년 넘게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통해 자라온 완벽히 독립적인 존재임에도,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와 같은 가치 판단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 겁니다. 제가 그리는 미래에 상대가 적합한지를 기준으로 재단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끊임없이 지적하고 수정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문제는 고치려고 달려든 것 뿐만 아니라, 고치고자 하는 내용이 정량적인 수치가 있거나 모두에게 통용되는 공식적 개념이 있는 공부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고 누구나 가 본 길이라 그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결론을 내놓을 수 있어서 끌어당기고 내 의견을 피력한게 아닌 그저 내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사고를 강요했기에 피그말리온 효과 같은걸 들이밀어서도 안되는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던 거죠.
'어떻게'가 '무엇을'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물론 고치려고 했던 부분이 지금 와서 보니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저는 여전히 약속 당일에 명확한 이유 없이 취소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저는 그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이 완전히 틀렸었습니다.
(과거의 나): 연인이 약속 2시간 전에 "오늘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갈 것 같아"라고 한다면, 노발대발하며 "약속 깨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무슨 일인데?"라고 다그치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인연을 끊어냈을 겁니다.
(현재의 나): 이제는 "혹시 무슨 일 있어? 걱정되네. 괜찮으면 마무리되고 나서 무슨 일이었는지 알려줘"라고 먼저 상대의 상황을 묻고 염려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음부터는 이유를 같이 알려주면 좋겠어.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정말 걱정했거든. 나에게 당신과의 약속은 그만큼 중요해"라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차분히 설명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습관을 바꾸고 싶어질까요? 당연히 두 번째 반응일 겁니다. 과거의 저는,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그리고 내 인생에 상대를 꽉 끼워 맞추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심에,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참 모진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맞는 사람'에서 '함께 맞춰가는 사람'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한참을 혼자 사색하며, 저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상대가 아닌 나 자신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상대가 스스로 바뀌고 싶게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쩌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라'는 조언은, 누군가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온 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든 생각은 다릅니다. '잘 맞는 사람'이란, 처음부터 모든 기준이 일치해서 바꿀 것 없이 편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모 형제와도 싸우는 판국에, 100% 맞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그런 기적을 기대할수록 관계는 망가집니다.
진짜 '잘 맞는 사람'이란, 내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바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상대, 그리고 나로 인해 본인 스스로를 돌아보고 고칠 준비가 되어있는 상대가 아닐까요? '맞는 사람'을 찾는 것보다, '함께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것이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크게 바뀐 가치관입니다.
진정한 대화는,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용기
결론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도, 모두 맞다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바로 대화입니다.
이 글은, 아무 근거 없이 상대를 존중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단지, 진짜 대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해보고, 그 사고 과정을 파악한 뒤에, '왜' 내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하는지 나를 이해시키는 화법을 활용하자는 겁니다.
단, 그 과정에서 상대의 근거나 이유가 명확하고 나를 설득시킨다면, 그 부분에 있어서는 과감히 나의 생각을 수정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 그것이 진짜 '성장하는 대화'입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정답'이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진 경험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계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여러분의 소중한 성장통을 공유해주세요. 그 성장통이 여러분을 얼마나 멋진 사람으로 성장시켰는지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